억지로라도 감사하다
2019년 가을, 학교 빛의 열매 축제 중 계단에서 오른 발목이 심하게 접질렸다. 악기를 들고 연주하러 가던 길이어서 악기를 보호하느라 넘어지며 바닥을 짚을 수 없었고, 내 오른 발목은 나의 무게를 그대로 흡수하며 꺾였다. 바로 무대에 올라 오른발목이 부어오르는 것을 실시간으로 느끼며 무슨 연주를 했는지 정신없이 겨우 연주를 마치고 내려왔다. 이미 발목은 빵처럼 부어올랐고 인대가 끊어져 수술하게 되었다. 당시 통증이 극심했고, 수술 자리가 아무는 동안에도 통증이 있는 데다 오른 발목이어서 한 달 동안 운전도 못했다. 하지만 하루가 다르게 회복됨을 느낄 수 있었고, 심적으로도 금방 나으리라는 희망이 있어서 통증을 견디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난 지금, 정형외과에서 수술을 했고(물론 이번에는 3차 병원이었지만), 전신 마취를 했고, 절개하여 수술하고 봉하는 등 과거의 수술과 비슷한 부분이 많았지만 회복을 기다리는 마음은 사뭇 달랐다.
신경 다발을 누르고 있던 혹을 제거하며 나타난 신경통증은 팔과 손이 전기 고문을 계속 당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나아지는 느낌을 받아야 통증이 있어도 희망을 품고 참을 수 있는데, 시간이 지나도 변화가 전혀 없으니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너무 힘들어 우선 수술 전에 먹던 약한 마약성 진통제를 먹었지만. 전혀 나아지지 않아 2배의 두려움이 엄습했다.
그날 주치의 선생님으로부터 떼어낸 종양 검사 결과를 알려주기 위한 전화가 왔다. 종양이 양성이어서 문제가 없다는 희망적인 메시지도 전혀 희망적으로 들리지 않았다. 나에게는 이 통증이 일반적인 상황인지, 평균적으로 얼마나 오래 지속되는지 물어보는 것이 더 중요했다.
주치의 선생님은 신경을 누르고 있던 혹을 제거해도 신경이 원래대로 기능하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고, 일반적으로 3개월 정도 통증이 지속된다고 했다. 이 상황이 일반적이라는 사실에 약간의 안심이 되었지만 이 고통을 3개월이나 참아야 하는 것은 두려운 일이었다. 그래서 수술 후 소독을 받고 있던 재활의학과 선생님께 상황을 말씀드리고 더욱 센 마약성 진통제와 신경통약을 처방받아먹기 시작했다. 손바닥과 2,3,4번 손가락이 무척 저리기는 하지만 팔이 끊어질 것 같은 전기고문은 그래도 살짝 가라앉았다.
겨드랑이 혹을 제거했는데 손바닥이 아프다니... 신경조직의 세계는 참 오묘하고 예측이 안된다. 성분으로는 하나도 위험하지 않다는 양성 혹이 어디에 위치하느냐에 따라 한순간에 이렇게 큰 고통과 두려움을 줄 수 있는 존재가 된다니... 신경 하나에도 삶에 대한 의욕을 잃어버릴 수 있는 나는 참 약한 존재이다. 그래도 신경 통증으로 겸손 한 스푼을 내 마음에 채우는 시간을 갖고 있다. 그래서 억지로라도 조금 감사한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