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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백수 Jul 23. 2019

아홉 번째 슛: 녀석은 지는 건 못 참아

가장 중요한 재능, 승부욕


 아버지와 앉아서 예전에 방영했던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을 보고 있었다. 천재 바둑기사 ‘최택’역을 맡아 연기하는 박보검 씨를 보다가 문득 아버지는 말씀하셨다. 


“너 아직도 바둑 둘 줄 아냐?”

“아니요. 못 둘걸요.”

“어릴 때 바둑 배우러 다닌 건 기억 나고?”

“당연하죠. 그게 몇 년인데. 근데 바둑은 하나도 기억 안나요. 근데 나 왜 그렇게 기원에 오랫동안 보내셨어요?”

“나도 너를 바둑기사로 키우고 싶었거든.”


 어려서부터 우리 엄마는 내 공부에 욕심이 많았다. 요즘 강남 아이들처럼 나는 유치원 때부터 학습지와 학원에 치여 지냈다. 그 바쁜 와중에도 아버지의 고집으로 나는 동네 기원의 바둑교실에 다녔다. 유치원 때부터 초등학교 때까지, 생각해보면 짧지 않은 시간이었다. 아버지는 지능개발이니 예의와 인성 함양 같은 이유를 대셨지만 사실 그건 아버지의 욕심이었다. 당신의 아들도 어려서부터 수련을 하면 어린 나이에 세계 바둑계를 제패한 이창호 기사 같은 ‘기신(바둑의 신)’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굳이 왜 바둑을 배워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던 엄마와 나를 설득했던 것이다. 


 나는 바둑학원에서 칭찬을 많이 받았다. 정석을 배우고 다음 수를 추리하는 퀴즈 같은 걸 곧잘 풀곤 했다. 새로운 패턴을 배우면 또 그게 신기해서 혼자서 몇 번이고 기보를 보며 복습을 했고, 그런 모습을 사범님은 참 기특해했다. 그런데 나는 희한하게도 대국만 하면 졌다. 나보다 늦게 배운 아이들, 나보다 바둑을 모르고 정석을 모르는 아이들에게도 졌다. 이기지 못한다면 수업시간에 우등생인 것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사범님도 아버지의 꿈을 아셨기에 여러모로 난감하셨을 것이다. 실전 필패의 비밀을 풀기 위해 내가 친구들과 대국을 할 때마다 사범님은 옆에 서서 유심히 나의 바둑을 보셨다. 그러다 어느 날, 사범님이 외쳤다.


 “야, 알겠다. 네가 왜 지는지!”


 사범님은 바둑판의 한 귀퉁이를 가리키셨다.


 “너, 저거 오늘 배운거지?”

 “네.”

 “저거 써먹고 엄청 기분 좋았지?”

 “네.”

 “그쪽에 신경쓰는 동안 중앙을 다 뺏겼잖아. 알아?”

 “네. 알아요.”

 “그런데 기분이 좋아? 졌는데?”


 나는 어쩐지 사범님이 나를 야단치는 것 같아 쭈뼛대고 있었다. 그런데 사범님은 웃으셨다. 


 “문제는 그거였네. 너는 승부욕이 없어. 지면 분해야 하는데, 너는 네가 써먹고 싶은 것만 써먹고 나면 이기고 지는 건 관심이 없으니까 말이야.”


 정말 그랬던 것 같다. 나는 바둑을 두다가 지고 화가 나 본 적이 없었다. 바둑은 승부라기 보다 모래성을 쌓거나 그림을 그리는 일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그냥 하얀 돌과 까만 돌로 내가 만들고 싶은 모양을 만들면 그것으로 충분히 만족할 수 있었던 것이다. 사범님은 내게 바둑을 가르칠 수는 있지만 없던 승부욕을 주입할 수는 없었을 거다. 결국 나는 중학교 공부를 준비하게 되어 바둑을 그만 둘 때까지 나는 그냥 그렇게 맨날 지는 아이로 남았다. 당연히 아버지의 꿈은 이내 잊혀졌고, 세월이 흘러 나는 문학을 하겠다고 국문과에 들어갔다.


 “프로와 아마추어의 차이가 뭔 지 알아요? 일급의 문장을 만났을 때 아마추어들은 그 문장에 매혹되죠. 하지만 프로는 질투합니다. 훔치고 싶어 하죠. 그런 게 없다면 프로가 되기는 어려울 겁니다.”


 어느 날 교수님께서 수업시간에 해 주신 말씀이다. 도무지 바둑판 앞에서 승부욕이 들지 않았다는 건 내가 그만큼 재능이 없었다는 증거가 아니었을까. 어쩌면 승부욕은 다른 모든 자질보다 먼저 갖추어야 할 자질인지도 모르겠다. 그것이 결여되어 있다면 다른 어떤 재능도 다 소용없는 일일테니 말이다. 


슬램덩크 완전판 4권, 이노우에 다케히코, 대원


 능남과의 연습경기. 머리털 나고 처음 시합에 출전한 백호는 타고난 신장과 스피드 때문에 능남의 에이스 윤대협을 마크하게 된다. 그러나 도에서 1,2위를 다투고 전국에서도 손꼽히는 천재 플레이어인 윤대협은 손쉽게 백호의 수비를 뚫어버린다. 그때 팀의 주장인 채치수가 백호에게 다가와 이야기한다. “진지하게 덤벼드는 저 녀석을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전국에도 몇 명 되지 않아. 네가 지금 돌파를 허용한 녀석은 그런 엄청난 녀석이다. 네 잘못이 아냐. 윤대협은 내가 맡는다.” 그러나 백호는 돌아서는 치수의 어깨를 붙잡고 고개를 가로젓고, 멀리서 바라보던 백호의 가장 친한 친구 호열은 나지막이 말한다. “녀석은 지는 건 못참아.” 이제 갓 농구를 시작한 풋내기 주제에 백호는 분해 죽겠다는 표정으로 외친다. “윤대협은 내가 쓰러뜨리겠어!”


  그 무모한 승부욕이야말로 신장이나 스피드, 점프력 같은 신체적 능력 못지않은 백호의 재능이었을 것이다. 시합 때마다 새로운 상대를 만나고, 그때마다 승부욕을 느끼고, 분해하던 경험이 그의 열정에 불을 지폈고, 그로 인해 백호는 불과 몇 개월 만에 전국대회에서도 눈에 띌 만 한 선수가 될 수 있었다. 


 글을 쓰고 노래를 짓는 일을 직업으로 하는 지금, 때때로 나 자신의 재능에 화가 나는 날이 있다. 나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실력자를 볼 때, 살면서 만난 수많은 걸작들에 비하면 조악하기 짝이 없는 나의 창작물들을 마주 할 때, 아니면 모니터 하얀 화면 위에 깜빡이는 커서를 앞에 두고 무엇을 써야 할지 도무지 생각해내지 못할 때. 내가 그런 순간들마다 오히려 안도할 수 있다면 좋겠다. 가슴에서 분한 기분이 든다는 것은 오히려 이 일에서만큼은 내가 갖추어야 할 최소한의 자질인 승부욕을 갖추었다는 증거일 테니까. 적어도 내가 바둑보다는 창작에 더 재능이 있다는 이야기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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