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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백수 Sep 20. 2020

우리 안의 인종차별

<경북매일>연재, '2030, 우리가 만난 세상'

강백수

: 2008년 계간 <시와 세계>로 등단한 시인이자 2010년 데뷔한 싱어송라이터. 시집 <그러거나 말거나 키스를> 등 다수의 책을 냈고, 두 장의 정규앨범을 내며 활발히 창작활동을 해 나가고 있다.


 요즘 미국에서는 프로농구 리그인 NBA 플레이오프 경기가 한창이다. 그런데 경기에 출전해 저마다의 기량을 뽐내는 선수들의 유니폼 등판에 이름과 백넘버가 아닌 구호들이 적혀있는 것이 이색적이다. 적혀있는 글들은 ‘Black lives matter (흑인의 목숨도 소중하다)’, ‘Equality (평등)’, ‘Vote(투표하라)’등으로, 모두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구호들이다. 선수들 대다수가 흑인이거나 흑인 혼혈로 구성된 NBA 리그이기에 선수들이 직접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움직임의 발단은 올해 5월에 발생한 조지 플로이드 사건이었다. 편의점에서 20달러짜리 위조지폐를 사용했다는 혐의로 백인 경찰관은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를 체포하려 하였다. 플로이드가 저항을 하자 경찰관은 그를 바닥에 눕히고 무릎으로 목을 짓눌렀다. 목이 졸린 플로이드는 숨을 쉴 수 없다며 고통을 호소했지만 경찰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결국 그는 현장에서 의식을 잃었고 그날 밤 병원에서 사망했다. 경찰의 과잉진압 과정은 현장을 지나가던 행인에 의해 고스란히 촬영되었고 플로이드가 격렬한 저항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영상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일파만파 퍼져나갔다.


 이러한 사건은 미국 전역에서 불평등을 경험하고 있었던 흑인들의 전국적 시위의 방아쇠가 되었다. 시위에 참여한 이들은 해당 경찰관에 대한 처벌 뿐 만 아니라 미국 사회에 만연해 있던 흑인에 대한 차별을 근본적으로 해소할 것을 요구하였다. NBA선수들은 이러한 시위에 대한 지지의 의미로 시위대의 구호를 유니폼에 새긴 것이다.


 이러한 인종차별 이슈는 단일민족국가라는 환상에 젖어있는 대한민국 국민들에게는 먼 나라 이야기처럼 느껴지곤 한다. 우리나라가 정말 단일민족국가인가는 논의가 필요한 이야기이지만 그렇다 치고, 그로 인해 인종차별 이슈가 적을 수밖에 없는 국가이기에 그것에 대한 심각성을 잘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무지로 인해 최근 필리핀 누리꾼 사이에서는 #CancelKorea(한국을 취소하라) 라는 해시태그를 다는 움직임이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한국에 대한 반감을 드러내기 위한 구호인데, 이것은 필리핀계 미국인 스타인 벨라 포치가 올린 한 영상이 발단이 되었다. 그가 공유한 영상 속 그의 팔에는 욱일기를 연상하는 문양이 새겨져 있었고, 한국인들은 댓글을 통해 그 문양이 역사적으로 어떠한 의미를 지니는지에 대해 설명했다. 이에 포치는 한국인들을 향해 사과문을 올렸다. 사과문의 내용은 “한국인들에게 6개월전에 새긴 붉은 태양과 16개의 광선 문신에 대해 사과한다. 그때는 내가 역사에 대해 무지했다. 그러나 내가 깨닫자마자 즉시 나는 이것을 가렸고, 이것을 제거하기 위한 일정을 잡았다. 나의 행동에 대해 부끄러움을 느끼며 진심으로 사과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충분한 사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누리꾼들은 해서는 안 될 이야기를 쏟아내고 말았다. 포치의 출신 국가인 필리핀에 대해 “못 배워먹고 키 작은 사람들”, “가난한 나라”, “못생긴 민족”이라는 식의 인종차별적 발언을 쏟아내고 만 것이다. 이에 항의하기 위해 필리핀 누리꾼들이 #CancelKorea(한국을 취소하라) #ApologizeToFilipinos(필리핀 사람들에게 사과하라) #Apologizekorea(한국은 사과하라)와 같은 해시태그를 달고 있는 것이다. 포치 역시 “나를 공격하는 것은 괜찮지만 필리핀에 대한 공격과 비난은 참을 수 없다”며 항의의 뜻을 내비쳤다. 이에 뒤늦게 일부 네티즌들이 #SorryToFilipinos (필리핀 분들에게 사과한다) 라는 해시태그를 달며 수습을 하고 있지만 한국인들은 이미 국제사회에 부끄러운 민낯을 드러내고 말았다.


 이러한 인종차별적인 시각은 앞으로 더 큰 문제들을 야기할 수 있다. 대한민국 사회는 더 이상 ‘한민족’이라 불리는 단일민족만이 존재하는 사회가 아니다. 이미 수많은 외국인 노동자들과 이주결혼여성들이 우리 곁에서 생계를 꾸리며 살아가고 있다. 다문화 가정의 아이의 이야기를 다룬 ‘완득이’라는 소설이 나온 것이 벌써 12년 전이다. 수많은 완득이들이 이미 대한민국의 사회구성원이 되어 우리 주변에 살아가고 있다. 우리가 인종차별적 시각을 거두지 않는다면 언젠가 대한민국에서도 인종차별 문제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오르고, 미국과 마찬가지로 대규모 행동을 마주하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우리 안의 인종차별의 씨앗은 아주 사소한 태도로부터 싹트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것은 다른 국가 출신의 사람이나 다른 인종의 사람을 만났을 때 개인으로서의 그 사람보다 그의 국가와 인종에 먼저 집중하는 습관이다.


 학부시절 교양수업을 같이 듣던 한 친구가 내게 물었다. “저한테 궁금한 게 중국 얘기 밖에 없어요?” 그는 중국에서 온 유학생이었다. 나는 술자리에서 한참동안 그와 대화를 나눴는데, 대화의 대부분이 “중국은 어때?” “중국사람들도 그래?”같은 식이었다. 그는 내게 고민을 토로했다. 사실 그는 중국인이기 이전에 스물 한 살, 내 또래의 여자애였고,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연애나 진로에 대한 고민들을 가지고 있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우리는 그런 고민들을 나누며 다양한 이야기들을 하는데, 사람들이 자신에게만은 오로지 중국 이야기만 묻는 것이 불만이라고 했다. 자기는 중국 국가대표로 여기에 온 것이 아니고, 그냥 나와 같은 학교 학생일 뿐이라고. 그 이야기를 듣고 나니 부끄러운 마음에 얼굴이 붉어졌다. 그때 느꼈던 그 부끄러움은 외국에서 온 친구들을 대할 때 나의 태도의 기준점이 되었다.


 지금 내게는 두 명의 절친한 외국인 친구가 있다. 한 명은 우크라이나에서 왔고, 한 명은 영국 맨체스터에서 왔다. 그 둘 모두 내게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우크라이나에서 온 친구는 그놈의 ‘김태희가 밭 가는 나라’라거나 ‘장모님의 나라’와 같은 이야기를(이 얼마나 부끄러운 차별 발언인가), 영국에서 온 친구는 ‘두유 노우 박지성?’을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어왔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나와 친해질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 내가 그들의 나라에 대해 묻기보다 그들 자신을 궁금해 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하며 다가왔다는 이야기를 한다. 내게 그들은 ‘어디서 온 누구’가 아니고, 그저 ‘내 친구’일 뿐이다. 외국인 친구와 마음 터놓고 지내는 비결은 다름 아닌 그들이 외국인임을 잊는 것이다. 그들과 나의 피부 색이나, 성장 배경 같은 차이에 집중하기 보다는 인간 대 인간으로서 느끼는 동질감에 집중하는 것이다. 차별은 차이에 집중하는 태도로부터 출발한다. 차이에 집중하지 않으면 차별을 할 수 없다는 이야기이다. 


 우리가 받아온 차별을 생각해보자. 일제강점기 내내 ‘조센징’이라는 이유로 억압받고, 아직도 못 배워 먹은 일부 서양인들은 우리를 향해 눈을 양쪽으로 찢은 액션을 보이며 조롱한다. 그것이 잘못되었다고 느낀다면 우리부터 우리와 다른 피부색의 사람들, 우리와 이 넓은 지구를 나눠쓰고 있는 이들에 대한 차별적인 시선을 거두어야 할 것이다. 아울러 이 글을 통해 한국전쟁 당시 우리와 함께 싸워준 국가 필리핀 국민들에게 #SorryToFilipinos 라는 해시태그를 통해 사과의 미음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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