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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백수 Sep 27. 2020

우승 하지 못해도 괜찮아, 롯데 자이언츠

<쿨투라> 2020.10



강백수(시인, 싱어송라이터)


 이 글을 쓰기 시작한 일요일 오후 4시 30분 경, 롯데자이언츠는 경남지역 라이벌 팀인 NC다이노스에게 7 대 0으로 지고 있다. 인근 지역을 연고지로 사용하고 있어서 라이벌이라 하지만 NC다이노스 입장에서는 라이벌이라는 말이 억울할 수도 있겠다. NC다이노스는 2020년 9월 20일 현재 10개 구단 중 1위를 달리고 있고, 롯데자이언츠는 겨우 7위에 머물러 있으니 말이다. 희한한 일은 누가 봐도 패색이 짙은 이 경기를 내가 기어이 끝까지 보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이 팀이 무엇이 좋아서 아직도 TV 앞에 앉아 있는 것일까. 

 비밀번호 88885777이라는 말이 있다. 2001년부터 2008년까지, 8개 구단 체제였던 한국 프로야구 리그에서 롯데가 거두었던 순위들이다. 작년에는 10개 구단 체제에서 기어이 10등을 해내고 말았다. again 1992. 1992년에 마지막으로 우승을 경험한 팀이라는 뜻이다. 현존하는 프로 스포츠 구단 중에 우승을 경험한 지 가장 오래된 팀이다. 1992년이면 서태지가 데뷔한 해이며 노태우 전 대통령이 재임했었던 시절이며. 삐삐조차 보급이 거의 되어있지 않았던 그때로부터 스마트폰으로 야구중계를 보고 있는 지금까지 우승을 하지 못했다는 이야기이다. 그해 태어난 아이가 대학을 졸업하고 회사에 취업해 대리 직함을 달았대도 무리가 없을 기간이고, 미취학 아동이었던 아이가 삼십대 중반이 되어 1992년 당시 자신과 나이가 같은 아들딸을 데리고 야구장에 가서 “아빠, 롯데는 왜 맨날 져?”와 같은 질문을 받았대도 믿을 만 한 기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구단 하면 대부분 롯데자이언츠를 꼽는다. 구단 인기순위 조사를 하면 기아타이거즈와 더불어 1,2위를 다투는 불가사의한 팀이 롯데자이언츠다. 심지어 구도 부산(球都釜山)이라는 말까지 있다. 부산을 일컬어 야구의 도읍이라 명명하는 말이다. 어째서 우리는 롯데자이언츠를 이토록 사랑하는 것일까.

 처음 내가 롯데자이언츠라는 팀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10여 년 전의 일이다. 당시 나는 서울의 잠실야구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경기 전에는 선수들의 훈련을 돕고 경기중에는 외야에 높다란 의자 위에 앉아서 관중이 경기장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통제하고, 날아오는 홈런볼로 인한 소란을 방지하는 역할이었다. 나는 항상 우익수 뒤편에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기에 각 구단 우익수들의 플레이를 아주 가까이서 볼 수 있었다. 어느 날 내 눈에 원정팀 롯데자이언츠의 우익수가 눈에 들어왔다. 그의 이름은 ‘가르시아’. 멕시코에서 온 용병 선수였다. 자신에게 날아오는 플라이볼을 잡을때마다 보여주는 특유의 세리모니와, 3루에서 홈으로 향하는 주자를 잡기위해 던지는 레이져 빔 같은 강력한 송구에 매료되었다. 특히 가르시아는 타석에서 플라이볼을 칠 때마다 배트를 부러뜨려 분한 마음을 표현했는데, 그런 쇼맨십은 단숨에 나를 그의 열렬한 팬으로 만들었다.

 가르시아에 대한 팬심이 롯데자이언츠에 대한 것으로 본격적으로 바뀌게 된 계기는 그 해 여름 방문했던 사직구장의 열기였다. 부산에 공연을 간 김에 가르시아의 플레이를 홈 구장에서 한 번 보고싶어서 사직구장을 찾았다. 구도 부산에 대한 이야기는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경험한 그 뜨거움은 상상하던 것 이상이었다. 영화에서 봤던 로마의 콜로세움이 그만큼 뜨거웠을까. 그날도 경기는 크게 지고 있었지만 사람들은 승패에 별로 관심이 없어보였다. 관중석 곳곳에서는 술판이 벌어졌다. 잠실 야구장에서도 맥주에 치킨이나 떡볶이를 먹는 사람은 많이 봤는데, 사직구장에서는 어디서 싸 왔는지 검은 비닐 봉지에서 물회 한 그릇을 꺼내더니 근처에 앉은 사람들과 소주를 마시는 사람도 있었다. 경기야 이기건 말건 춤을 추며 선수들의 응원가를 부르고, 신문지를 찢어 응원했다. 1루에 견제구를 던지는 상대팀 투수에게 ‘마!’를 외치고, 파울볼이 뜨면 공을 아이에게 양보하라는 의미로 ‘아주라!’를 외쳤다. 경기가 후반으로 접어들 무렵 누군가가 나누어 준 주황색 비닐봉지에 바람을 넣어 머리에 달고 ‘부산갈매기’를 불렀던 그때, 부산에 아는 이도 한 명 없었던 나는 이미 부산사람이 다 된 기분이 들었다. 경기가 끝나고 난 뒤 사람들의 표정은 팀의 대패에 화가 난 얼굴들이 아니었고, 후련하게 잘 놀았다는 표정들이었다. 

 부산이 구도가 된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이야기가 있다. 해방 이전부터 일본인들이 많아 야구팀들이 존재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있고, 프로야구 출범 전부터 경남고등학교와 부산고등학교 등의 학교가 전국대회에서 우승을 거머쥐며 부산 시민들의 자부심을 드높였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그리고 한국시리즈 4승이라는 말도 안되는 투구를 보여준 최동원이 있었던 84년도 우승과, 자신의 팔과 팀의 우승을 맞바꾼 염종석이 있었던 92년도 우승이라는 드라마도 한 몫 했을 것이다. 88885777 시기의 유일한 희망이었던 손민한, 그리고 프로야구 사상 전무후무한 7관왕 타자 이대호 등 이후 세대에서도 꾸준히 슈퍼스타가 출현한 것도 부산 시민들이 롯데자이언츠에 열광하게 만드는 이유일 것이다. 그러나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부산사람들 특유의 흥, 화끈하게 놀 줄 아는 기질이야말로 롯데자이언츠의 진정한 인기 비결이 아닐까 생각한다. 롯데의 승리도, 패배도 그들에게는 흥겹게 놀기 위한 하나의 판이나 다름 없는 것이다.

 부산사람들이 롯데자이언츠를 응원하게 되는 것은 부산사람이라면 필연적으로 직면하는 운명이라고 한다. 그들의 롯데자이언츠에 대한 사랑은 가족에 대한 사랑처럼 맹목적이다. 공부 못한다고 자식을 미워할 부모가 없고, 재벌 아니라고 부모를 미워할 자식이 없듯이 롯데가 또다시 5등 안에 들지 못해 가을 야구를 할 수 없게 되더라도 그들은 롯데를 미워하지 않을 것이다. 매년 시즌이 끝날 때마다 “에이, 내년에는 야구 안 본다!”고 선언하는 나도 마찬가지의 마음이다. 물론 언젠가 한 번쯤 자이언츠의 우승을 보고 싶은 마음이야 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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