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민 구
잘 나가긴 지랄 전기세도 못 냈다
전기세를 못 내도 양주는 먹어야지
출판된 모든 책이 읽히는 건 아니다
신간 코너를 지나 인기 도서 매대에 오른다면
약간의 생명 연장이 이루어질 수 있겠으나
저 뒤 편 서가 한 구석에 꽂히게 되는 날부터
모든 이들의 기억으로부터 이별하게 되는 것
오냐 잘 나간다 그래서 양주를 먹는다
전기세는 못내더라도 양주는 먹어야지
나는 십중팔구 곧바로 서가에 꽂힐 인간
신간 코너에 있을 때 후배들 목구멍에 그래도
독주 한 잔씩 부어 줘야지
양주는 영광
훗날 오늘의 양주를 내 청춘의 가장 빛나는 날로 추억하게 되는
가엾은 사태가 벌어질 것이다
저 뒤 편 서가 한 구석에 꽂히게 되는 날부터
거기서 만날 우리들은 내가 씨발 이천 십 사년도엔 말야
하며 영광! 양주의 영광!을 부르짖을테지
영광영광 할렐루야다 이 새끼들아
사 줄 때 먹어라 누가 우릴 읽겠냐
학산문학
2015 가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