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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우리는 모두 중2병 환자였다 (매거진 W)

by 강백수

2005년, 우리는 모두 중2병 환자였다.

-응답하라 2000년대, 싸이월드에 대한 소회

강백수(시인, 싱어송라이터)


아아, 지난 밤 술이 또 과했나보다. 아침에 일어나 켜져있는 컴퓨터 앞에 앉았더니 익숙한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다. 불안한 마음과 함께 화면보호기가 걷히고, 화면에는 낯 뜨거운 사진들이 떠올라 있었다. 나는 지난 밤 또다시 금단의 즐겨찾기를 클릭했나보다. 바로 20대 초반 내가 내 피부보다 머릿결보다 애지중지하며 가꾸었던 나의 미.니.홈.피.


바야흐로 SNS의 시대다.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텀블러 등, 온갖 애플리케이션들이 홍수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온갖 아이돌 그룹들이 판치는 지금이 있기 전에 서태지와 아이들이 독보적이었던 시절이 있었듯 이 SNS 시대의 이전에는 독보적인 강자였던 싸이월드가 있었다.


싸이월드가 이끌어낸 생활의 변화는 여전히 우리 생활을 지배하고 있다. ‘페북’에 올려야 한다며 식전에 감사기도 대신 사진 촬영을 하는 한국의 전통 식사예절, 그 시작에는 싸이월드가 있었다. 지금이야 아이폰 카메라로도 고품질의 사진촬영이 가능하지만, 그때 당시에는 화소수가 떨어지는 휴대폰 카메라를 대체하기 위해 누구나가 다 디지털 카메라를 들고 다녔다. 여자친구와 패밀리 레스토랑에 갔을 때, 사진을 찍기 전에 스테이크에 나이프가 닿으면 그녀는 나를 미개인 취급했던 기억이 난다.


지금도 밤이면 일명 ‘감성 페북’을 쓰는 사람들이 있다. 그 시작도 싸이월드였다. 싸이월드는 전국민의 ‘중2병화’를 이끌었다. 페이스북이야 스마트폰으로 하니까 낮에도 올라오고 밤에도 올라오지만, 싸이월드는 PC로 사용해야 했기 때문에 하루 일과가 끝난 심야에야 업로드를 할 수 있었다. 사진첩도 사진첩이지만, 심야에 쓰는 다이어리는 우리의 뼛속 깊숙이 잠재되어있었던 감수성마저 끌어내어 모두가 마치 라디오헤드의 톰 요크가 된 듯 시도 아니고 일기도 아닌 우울하고 추상적인 글을 쓰게 만들었다.


스무 살이었던 2005년의 나의 경우 그 내용은 주로 연애에 관한 것이었는데, ‘누군가가 읽을 수 있는 일기’에는 다분히 ‘누군가가 읽었으면 하는’의도가 담기게 된다. 그녀만 알 수 있는 내용을 문학적 용어로 하면 ‘낯설게 하기’기법을 사용하여 쓰게 되는 것이다. 그래, 우리는 싸이월드로 연애를 했다. 온갖 친구들의 미니홈피를 ‘파도타기’해서 그녀의 싸이월드를 찾아내고, 밤새 스토킹하다가 행여나 ‘이벤트’에 걸려 내가 방문했다는 사실을 들킬까봐 조마조마하기도 했다. BGM 하나를 깔아도 그녀에게 어떠한 메시지를 전달하려 했는데, 하다못해 내가 어필하고 싶은 이미지를 전달하기 위해서라도 BGM의 선택은 신중할 수 밖에 없었다.


싸이월드 BGM은 음악시장에서 어떤 뮤지션이 얼마나 잘 나가느냐의 척도가 되기도 하였다. 메인에 걸었던 문구와 더불어 BGM은 ‘나는 이런 사람이오’라는 것을 어필하는 강력한 수단이었다. 여성의 경우에 더욱 까다롭게 선곡했던 것 같은데, 일단 너무 시끄럽지 않아야 하고, 적당히 키치하면서도 너무 매니악해서도 안되며 잔잔한 감성을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정도가 기준이었다. 그래서 각광받았던 것이 소위 말하는 요조, 타루 등의 홍대여신들과, 브로콜리 너마저나 소규모 아카시아밴드 같은 감성적인 인디 뮤지션들이었다. 어쿠스틱 기타를 들고 노래를 부르고 있는 지금의 내모습이 형성되는 데에 분명히 이러한 풍조가 기여했으리라 생각한다.


어쨌거나, 전날 술에 취했던 덕분에 오랜만에 스무 살 나의 흔적들을 만났다. 지운다고 지웠는데 아직까지 남아있던 옛 여자친구와의 사진이라던가, 그녀를 향했던 중2 감성 넘치는 다이어리라던가, 2005년을 강타했던 말도 안되는 패션이라던가 하는 것들이 나의 손가락 발가락을 무참히도 우그러뜨리지만, 그래도 싸이월드에는 금세 휘발되어 버리는 페이스북이나 트위터와는 다른 아날로그적인 감성이 있었다. 아, 당시에는 첨단이었던, 디지털의 상징이었던, 국문과 선배들이 그렇게 비인간적이라 욕하던 싸이월드가 지금에 와서는 촌스러운 아날로그적 기표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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