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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라도 되는 것, 알아야 하는 것 (대학내일)

by 강백수

옛날에 입시학원의 언어영역 강사로 일할 때, 한 학생이 물었다. “선생님, 책을 꼭 읽어야 돼요?” 그 질문이 나는 어려웠다. “그럼, 읽어야지.”라고 얘기는 했지만, 녀석이 “모르고 살면 속 편하고 좋잖아요.” 라고 말했을 때 나는 쉽사리 반박할 말을 찾지 못했다. 사실 모르고 살면 속 편하고 좋은 건 맞다. 그런데 또 모르고 살면 안 되는 일들도 있는 것 같다.


사람이 많이 알아서 나쁠 건 없다. 그런데 그 모든 지식들이 우리가 아등바등해야 할 정도로 필수적이지는 않다. 그렇다고 해서 앎을 포기하자니, 내가 놓치고 있는 필수적인 지식이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어 두려울 때가 있다. 내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바로 그런 것이다. 몰라도 되는 것과 알아야 하는 것에 대한 재미없는 이야기 말이다.


1.


직업상의 이유로 어떤 음악을 즐겨 듣냐, 혹은 어떤 시를 즐겨 읽냐는 질문을 종종 듣는다. 그럴 때면 나는 “즐겨 듣지(읽지) 않습니다.”라고 대답하는 경우가 많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의 경우 좋아하는 일이 직업이 되던 순간부터 그것을 ‘온전히 즐기는’것이 어려워졌다. 좋은 글이나 음악을 마주하면 공부가 되고 질투가 난다. 자꾸 그것이 좋은 이유를 규명하려 들게 되었고, 흉내 내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힌다. 좋지 못한 글이나 음악을 마주하면 그것이 좋지 않은 이유를 규명하여 반면교사로 삼게 되거나 아니면 그 자체의 조악함에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글과 음악은 내게 ‘즐기는’ 대상이 아니라 ‘탐구하는’대상이 된 것이다.


반드시 직업인 경우에만 이러한 현상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어린 시절에는 영화관에서 보면 모든 영화가 다 재미있었다. 그런데 영화 잡지도 읽고, 대학에서 어설프게나마 예술과 철학에 대한 이론을 귀동냥하면서 나도 모르게 재미있는 것과 별개로 좋고 나쁜 것을 구분하는 습관이 생겼다. 카메라를 팔아버린 이유도 취미가 지나치게 그로 인한 불필요한 스트레스를 얻게 되었기 때문이다.


알수록 더 보인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더 보고 배우려는 욕심을 걷어내고 그저 향유하려고만 든다면 오히려 문외한의 입장에서 접근하는 것이 유리할 때가 있다. 내게는 미술이 그렇다. 야수파니 다다이즘이니 대충만 들어봤지 나는 전혀 미술 이론에 대해 아는 바가 없다. 아크릴화와 유화를 구분할 줄 알게 된 것도 최근의 일이다. 우연히 웹서핑을 하다가 스페인의 ‘니콜레타 토마스’라는 화가의 작품에 매료되었고, 이를 계기로 미술에 관심을 갖게 되기는 하였지만, 단 한 번도 미술에 조예 깊은 사람이 되고픈 욕망을 가진 적은 없다. 미술마저 내게 ‘순수한 휴식의 수단’이 아니게 될까봐.


최근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찾았다던 ‘쿠사마 야요이 전’ 같은 대규모의 전시부터, 내 눈으로 봐 놓고도 무엇을 봤는지 기억하지 못하는 낯선 전시까지, 약속이 없는 한가로운 평일 오전이면 나는 발길 닿는 대로 그림을 본다. 아무것도 몰라서 더 재미있다. 미니멀한 추상화를 보며 “내가 그려도 이것보단 낫겠다!”라는 무식한 말을 하기도 하고, 그림 속 남자의 쪼그라든 고추를 보며 키득거리기도 하며.


교양 있는 사람이 되는 일은 멋진 일이지만 사람이 모든 분야에 정통해야 교양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때문에 모르는 모든 것에 대해 알고자하는 욕망이나 열등감 같은 것을 가질 필요가 없다. 나는 내가 그림에 대해서는 평생 까막눈이어도 좋다고 생각한다.


2.


검은 빨래와 흰 빨래를 같이 돌리면 안 된다는 것을 최근에야 알았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었다. 그만큼 가사노동을 부모님께 의존해왔다는 이야기일테니까 말이다. 모르는 게 약인 경우도 있지만, 반드시 알아야 하는 것, 모르는 게 부끄러운 것들도 있다. 정말 꼭 알아야 하는 것들임에도 간과되는 것들이 있다.


이를테면 정치 같은 것 말이다. “아, 나는 정치 몰라.” 이 이야기를 빈번하게 듣는다. 대통령이 누구인지는 알아도 (사의를 표명했지만) 국무총리가 누구인지, 또 지금 그렇게 욕을 먹고 있는 총리 지명자가 누구인지 모르는 친구들도 많다. 며칠 전 지방 선거에서 1번을 찍었거나 2번을 찍거나 때로는 다른 번호를 찍었거나 왜 그 번호를 찍었는지를 이야기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국민의 알 권리가 온전히 보장되지 않는 사회인 관계로, 그리고 정치라는 것의 속성 상, ‘완벽한 정치적 지식’이라던가, ‘절대 선’같은 건 존재할 수 없지만, 내가 왜 황금 같은 임시 휴일 날 더워 죽겠는데 슬리퍼를 끌고 나가서 그 사람에게 굳이 그 한 표를 던졌는가에 대한 질문에 “에이 씨, 그냥 다 도찐 개찐이길래 아부지 찍는 사람 찍었어.” 따위의 말을 하면 안 되는 거 아니냐는 거다. 나라 살림을 책임 질 사람을 뽑는 게 “에이 씨, 몰라 젠장” 할 일이냐는 말이다. 편의점에서 토토 찍는 아저씨들이 그렇게 축구 지식이 해박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국가적으로 정치 토토라도 만들어야 한단 말인가.


나는 우리가 ‘꼰대 같다’고 이야기하는 영감님들의 모습 중에 본받아야 할 점이, 술 먹고 결론도 안나는 정치 얘기를 핏대 세우며 하는 모습이라고 생각난다. 앞으로 인생을 살면서 얼마나 많은 표를 던지겠는가. “딸아 미안하다!”보고 웃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다. “독재자! 독재자!” 혹은 “빨갱이! 빨갱이!” 뜻도 모르고 외쳐대는 말들은 아무 힘이 없다. 나는 뮤지션이지만, 브루노마스 모르면 찌질이 취급 하면서 문창극은 모르는 이들은 없기를 바란다.


강백수

anomia9@gmail.com

싱어송라이터, 시인, 칼럼니스트. 지난 1년 간 첫 정규앨범과 첫 책을 내어 놓게 되었다. 둘 다 제목은 《서툰 말》. 아직도 모든 말은 서툴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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