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퇴사 일지: 비공식 직장 2편

뭔가 생소하다, 신기하다, 재밌다, 혼란하다.

왜 하필 중국에서?

처음으로 부모님 사업으로 인해(망했지만), 중국으로 넘어오던 시절, 한 가지 스스로 약속한 것은 사회 생활까지는 꼭 중국에서 경험하고서 귀국을 하던지 해외로 확장하겠다고 약속 했었습니다.


당시 제가 거주하던 칭다오에는 한국인이 참 많았습니다. 가장 많이 듣던 이야기들이, "중국 대학 입학은 쉬워도 졸업을 못한다더라", "중국에서 한국인 취업 어렵다", "중국에서의 급여가 너무 낮아, 취직을 하여도 좋지 않다" 등의 이야기 였습니다.


워낙 어렸을 때부터 내심 반골기질을 키워 왔던 터라, 졸업을 못한다, 취업이 어렵다, 돈을 못번다라는 말을 직접 부정하고 싶다는 욕심이 조금씩 자랐고, 그렇게 억지를 부려서라도 중국 대학에 원서를 넣고, 시험을 보고, 입학을 하고 졸업을 앞둔 시점에 중국 취업만을 앞두고 있었지만 그것이 가장 큰 난제였습니다.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중국 대학을 졸업해도 중국내 직장을 구하기란 쉽지가 않습니다. 취업 비자를 지원하는 경우가 드물뿐더러, 아무리 명문대를 나오더라도 굳이 중국인이 아닌 어설픈 중국어와 문화적 이해를 바탕으로 한 외국인을 고용할만한 수요가 적었습니다. 특히 유학생의 모국이 일본, 미국, 유럽권 등 실제 진출을 목전에 둔 대형 수요 시장이 아닌 경우는 더더욱이 메리트가 없었습니다.


인턴은 유학생 신분으로 지원할 수 있는 지원처가 제한적이고, 인턴을 고용하더라도 기업에서 보고 및 제공할 자료가 많아, 사실 아주 큰 대기업이 아니고서야 외국인 유학생 인턴을 고용하고자 하는 수요가 매우 적었습니다. 결국 대부분은 한국의 중국내 지사를 통해 한국 기업 인턴십을 지원하거나 수행하는 것이 대부분이었고, 졸업 시점에는 귀국을 하는 수순이었습니다.


저는 대기업 보다는 스타트업과 사업에 대한 열망이 컸고, 중국에 남아 있다는 것 자체로 뭔가 '특이'하다는 이상한 훈장을 얻은 것 같은 느낌일 것 같아 포기할 수 없었고, 이번 기회가 제게는 너무 소중하고 감사한 기회였습니다. 그렇게 합류했죠.


중국인, 싱가포르인 등 다문화 직장에서의 하루

제가 아는 회사라는 곳은 어떤 체계를 바탕으로 해야할 일과 업무 범위가 정해지고, 일종의 보고 시스템이 있어, 모든 일이 체계적으로 공유되고 업데이트되는 곳으로 어렴풋 이해하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스타트업이다 보니 사실 그러한 것들이 전무 했습니다.


다만 각 직원에 대한 기대는 명료했던 것 같습니다. 회사가 저에게 기대한 것은 우선 한국 시장 진출. 대행사 시절 했던 경험들이 있어, 현지 커뮤니티를 구축하는 것부터, 블로그/SNS 세팅, 콘텐츠 파이프라인 구성 및 기획, 다양한 매체물을 제작하고 현지의 PR 대행사들과 협업하는 등 기존에 해왔던 업무를 진행했습니다.


각 팀원 및 팀별로 서로 어떤일을 하는지 알기 어려울정도로 적은 인원으로 좁은 공간에서 협업을 하고 있으나 정보의 흐름이나 교류가 활발하지는 않았습니다. 좋은 점은 각자 할일에만 잘 집중할 수 있었고, 나쁜 점은 협업의 기회를 찾거나 함께 목표를 일치시키고 앞서 나가는 것이 쉽지 않았다는 것 정도 였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중국, 싱가포르 등 각지에서 기용된 마케팅, 영업, 전략, 개발 전문가들이 모여 한 공간에서 근무하는 것이 내심 자랑스럽기도 했고, 외국어를 하며 동료들과 점심을 먹기도하고 잠시 커피챗도 하고, 집이 가까운 동료 직원과 같이 퇴근도 하는 경험이 내심 재밌었던 것 같습니다.


혼란의 시작

스타트업을 막 시작한지 얼마되지 않아, 창업자들의 네트워크를 통해 VC 등 투자를 무난히 유치했고, 해당 금액이 적지 않아 생각보다 여유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정확한 액수는 밝힐 수 없지만, 통상의 Seed에서 받는 금액의 가히 10배 이상을 유치 받았습니다, (*중국이고 해당 산업이라 가능했던 것 같습니다).


상당한 재무적 여유를 바탕으로 큰 성장만을 앞두고 있다고 생각했을 때쯤, 사무실에는 묘한 매너리즘의 기운이 풍기기 시작했습니다. 저를 비롯해 당연히 경영진은 눈치를 챘고, 더 빠르고 큰 성장과 변화를 이뤄내기 위해 뭔가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경영진은 더 높은 기대치를 점점 더 구체적으로 제시했고, 그 기대치를 만족시키기 위한 노력에 더불어 불만도 함께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현지 시장 진출을 맡고 있었기에, 중국내 마케팅 및 영업팀과도 협업을 자주 했는데, 해당 팀내 직원들의 사내 경영진에 대한 불만이 지속적으로 고조되고 있었습니다. 평소에도 자연스레 식사를 함께 하던 팀원들이라 이런 불만의 목소리를 자주 많이 들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경영진, 특히 창업주와는 개인적인 연이 있는 터라 사실 겉으로도 내적으로도 크게 동조하기란 어려워, 그런 자리를 최대한 피하거나 듣지 않으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인바운드 및 초기 인지도 제고를 위한 한국 브랜딩 구축은 어느정도 끝났으니, 이제 직접 현지로 나갈 때가 왔다고 생각했던 찰나이고 내부 분위기도 뒤숭숭하여 한국 출장을 계획 했습니다.


2018년은 호황에서 불황 혹은 조정으로 접어들던 시장 분위기 였습니다. 다행히 분기점의 기업들은 추가적인 매출 흐름 확보는 물론이고 대외적으로 기업의 안정적임을 공표하기 위한 소위 '깡통 제휴'를 우후죽순 체결하던 시점 입니다.


말 그대로, 어떤 내밀한 가치나 협정은 아직 뒤로 밀려있고, 양사간 시너지의 유/무형적 가능성을 믿고 일단 체결하고 보는 MoU 체결과 비슷했습니다. 당시 PR에 배포된 대부분의 '전략적 사업 제휴' 이런 것들은 90% 이상이 '깡통 제휴'였던 것 같습니다. 이런 내막을 모른채로, 실무진으로서 제휴 상황을 진척하려고 다방면으로 시도했지만, 상대 기업의 중간 임원 단계에서 번번히 막히며 사실상 오프라인 대외 활동 외엔 영업적 마케팅적 선전을 이뤄내진 못해 아쉬워하고 있었습니다.


균열

한국에서 돌아와, 오랜만에 동료들을 보는 반가움에 사무실로 복귀한 날. 이전의 상황보다 더 심각해진 것을 느꼈습니다. CTO를 주축으로 한 개발팀과, 영업 및 마케팅 팀(이하: 사업 팀)간의 어떤 신경전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자리는 서로 크게 동떨어져 있었고, 누가봐도 분위기는 좋지 않았습니다.


들어보니, 사업팀은 영업을 하기 위한 제품의 MVP, 마케팅 목적을 위한 기술 로드맵 달성도 등을 지속적으로 요구했었습니다. 다만 개발 진척이 계속 뒤로 밀렸고, 사업 팀의 업무를 진행하기에는 제품 개발의 진척도가 너무 늦어 더 이상의 협업이 어려운 상태였습니다. 사업 팀에서 결국 개발팀에 해당 문제를 지적했고, 개발 팀내에서도 반박하는 과정에서 불화가 생겼던 것 같습니다.


가장 주요한 원인은 사업 팀의 불안감이었던 것 같습니다. 개발팀이야 제품 개발 및 개선을 위해서라도 계속 필요하고, 추후 팀을 충원하면 했지 뺄 상황이 아니라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었습니다. 다만 문제는 사업 팀인데, 가시적인 마케팅, 영업 성과를 낼 수 없는 상황에서 혹은 낼 수 있더라도 제한적으로 낼 수 있는 상황에선 해고를 당할 수 있다는 걱정이 매우 컸던 것 같습니다. (*한국과 다르게, 중국의 해고는 그렇게 어렵진 않습니다.)


그 균열이 점점 커졌고, 지금은 소통 단절에 이어서 경계심이 극도로 올랐던 상황이었습니다. 결국 작은 제품이라도 만들겠다며, 사업 팀에 소속된 한 디자이너가 2명으로 이루어진 태스크 포스를 만들었고 간단한 MVP를 약 1달만에 만들었던 것 같습니다. 문제는 기능 상의 오류가 많았고, 해당 MVP를 시연하는 과정에서 또 다시 개발 팀과의 불화 및 지적이 오가다, 결국 퇴사를 선언하는 등 분위기가 최악을 치닫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계속 잘 해봐야지

한 명의 퇴사와 불만 그리고 그 불안은 다른 팀원들에게도 쉬이 전염되었고, 그 전염은 갑작스럽다기 보다는 꽤나 묵은 것처럼 보였습니다. 대부분의 퇴사자들은 저보다 먼저 들어온 창업 멤버들이었고, 사업 팀 소속으로 함께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7명 정도로 구성되어 있던 작은 팀이었는데, 한 번에 2명이 퇴사하더니, 저희 팀을 제외한 2명은 대표와 창업자들과 싸우다가 해고로 나가게 되었습니다.


처음 겪는 일이기도 하고, 회사 생활을 겪지 못한 상태에서 겪은 경험이라 더욱 충격적이고 생소하게 다가왔습니다. 그럼에도 으레 스타트업이 그렇겠지 싶으면서도 내심 불안했습니다. 이러다 나도 해고 당하면 어떡하지, 심지어 나는 한국인인데.. 중국인 보다 쉬우면 쉬웠지 절대 어렵지 않을텐데.. 여기서 해고 당하면 어딜 가야 하고 무엇을 해야하나 등등. 걱정과 불안이 조금씩 자라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도 할 건 잘하자면 커뮤니티를 살피며, 향후 진행할 대외 활동 (컨퍼런스 참여/주최, 이벤트 개최 등)을 기획하고 콘텐츠 개선에 집중하고 있었는데. 저희가 운영하는 한 커뮤니티에서 한 투자자가 개인 메세지를 보내왔습니다. "이거 프로젝트 투자 자금 출처가 이상한 것 같은데, 혹시 어떻게 된 것인지 알려주실래요?"


- 다음 편에 이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