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과 대학원의 갈림길에 서있는 예비 개발자
2년 간 대학원 연구실에서 공부하며 '컴퓨터 과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컴싸 대학원을 다닌 이야기). 이번 글은 개발자가 되고 싶었던 글쓴이에게 "대학원 입학은 좋은 선택이었을까?"라는 주제로 자문자답(自問自答)해보려 한다. 현업 개발자가 된 지금 컴퓨터 대학원의 인상은 어떨까?
오히려 빈약했다. 학부 과정과 마찬가지로 대학원 과정도 교수가 방향만 지시해줄 뿐 일일이 학생들을 지도하지 않았다. 강의 수도 적고 주제도 다양하지 않았다. 작은 주제를 가지고 기초 이론을 심화한 연구 수업들이 많았지만 자율 연구라는 명목 하에 내용이 부실한 편이었다 (심지어 교수도 모르는 주제로...). 수업의 난이도는 학부 4학년 수준이면 따라갈 수 있는 수준이었고 기초 이론 수준의 수업들도 많았다. 실제로 학부 수업과 대학원 수업을 병행해보니 (강의 방식이 다를 뿐) 또이또이하거나 오히려 학부 강의들이 더 알찼다. 아마도 컴퓨터 기초 이론에 더 충실했기 때문일 것이다. 학부 수업이 끝나고 나면 배웠던 이론과 관련된 컴퓨터 기술들 중에서 사용해보고 배울만한 것들이 많았다 (운영체제 수업이 끝나고 리눅스 커널 소스를 받아서 직접 빌드해봤던 기억이 난다). 대학원 수업이던 학부 수업이던 배운걸 나의 지식으로 만드는 건 언제나 내 몫이었다. 단순히 "학부 때 배우지 못했던 지식을 습득하니까 컴퓨터 기술과 개발 능력이 깊어질 거야"라는 생각은 잘못된 생각이었다.
소프트웨어 연구실이었지만 기술 개발에 대한 관심도 역량도 부족한 느낌이었다. 연구 프로젝트 성과를 위해 개발을 하긴 했지만 형식적인 결과물을 구현하는데 치중했다. 좋은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한 고민도 없었고 필요성도 없었다. 고민 없이 만들어낸 결과물은 적당히 구색만 맞춘 허접한 것에 불과했다. 연구실 잡무에 치여 여력도 없었지만 실력이 부족했고 지적해 줄 수 있는 사람들도 없었다.
교수와 박사들이 개발 기술에 대한 통찰을 줄 거라는 대단한 기대는 애초에 안 했다 (실제로도 없었지만). 연구실에 비슷비슷한 수준의 학생들이 모여 있으니 개발 환경에도 한계가 있었다. 개발 실력이 눈에 띄는 사람들은 (아쉽게도) 바로 취업을 하거나 졸업을 했다. 교수나 박사라고 달랐을까? 결국은 스스로 개발에 필요한 공부를 해야 했다. 애초에 스스로 할 생각으로 들어왔기 때문에 불만은 없었다. 와중에 맘 맞는 친구와 현업에 있는 선배들을 통해서 배우는 게 개발 트렌드를 따라가는데 도움이 됐다.
개발자 신입 채용을 보면 '컴퓨터 관련학과 졸업자/졸업예정자 우대'가 있긴 했지만 '석박사 우대'는 찾기 어려웠다. 그렇기 때문에 지원자들은 학사, 석사, 박사 구별 없이 지원하고 테스트를 받았다. 오히려 대학원에서 했던 개발 프로젝트들에 대해서 회의적인 피드백만 들었다. 대신 깃헙에 올려두었던 개인 프로젝트들이 취업하는데 도움이 됐다. 대학원에서 만든 스펙들(논문, 연구 프로젝트)보다 깃헙에 올려둔 코드나 개발 관련 지식, 기술 활용 사례들이 취업하는데 도움이 됐다. 이런 것들은 대학원에 가지 않아도 얻을 수 있는 것들이었다. 오히려 대학원에 가지 않았더라면 보다 양질로 성취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러면 (학부든 대학원이든) 컴퓨터 관련 전공자들이 비전공자보다는 경쟁력 있을까? 어차피 전공시험과 코딩 시험을 보는 마당에 전공자라는 타이틀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개발자들의 전공은 다양하다. 전공과 상관없이 잘하는 사람이 잘하고 못하는 사람은 못한다. 취업을 준비하는 문과생들한테는 전공마저 아쉬운 마음에 대해선 (같은 문돌이로서ㅠㅠ) 공감한다.
(1) 내 학부 전공이 컴퓨터였다면 대학원에 진학하지 않을 것이다. 석사 학위와 논문이 개발자를 채용하는데 중요한 평가요소가 아니다. 학부생과 석/박사생이 다를 게 없다. 대학원에 입학하게 되면 2년 동안 연구실에 묶여있어야 하고 등록금도 내야 한다. 차라리 개인 프로젝트를 하면서 포트폴리오를 만드는 게 대학원에서 하는 과제보다 더 효과적일 것이다. 더욱이 개발자로서 성장하고 싶다면 대학원이 아니라 빨리 취업해서 개발 경험도 쌓고 주변 동료들한테 배우는 편이 도움이 된다. 좋은 동료와 좋은 개발 환경에서 개발을 해야 성장하는 법이다. 현실적으로 대학원 연구실의 개발 환경은 기업의 개발 조직을 따라가기 힘들다.
(2) 비전공자이지만 개발 역량이 전공자 수준이었다면 대학원에 진학하지 않을 것이다. 역시 컴퓨터 관련 학과 전공자라는 타이틀 한 줄 넣은 거 외에는 장점이 없다. 부족한 전공 공부는 채용 테스트를 준비하면서 공부하면 된다. 오히려 개인 시간에 깃헙에 포트폴리오 작업에 집중할 수도 있다. 대학원 연구실에 있을 시간에 면접 한번 더 보러 다니거나 코드 한 줄 더 작성하는 걸 추천한다. 면접과 테스트는 다다익선! 개인 프로젝트 깃헙에 올려두고 버전 관리 잘해두기를 추천한다. 의외로 안 하는 학생들이 많은데 코딩 능력이나 개발에 관심 있다는 걸 증빙하는데 이만한 게 없다.
나는 대학원 진학을 통해서 전공도 바꾸고 개발자로 밥벌이하면서 살 수 있게 됐다. 내 인생에서 중요한 순간이었고 긍정적인 전환점이 됐다. 단지 대학원 자체가 개발자로 성장하는데 직접적인 영향을 준건 아니다는 말을 하고 싶다. 대학원은 단순히 시간과 공간을 제공해준 곳 정도였다. 만약 개발자가 되려는 친구가 대학원 입학에 대해서 물어본다면 한 번쯤은 말리고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건상 대학원이 꼭 필요하다고 한다면 대학원에 대한 막연한 기대감부터 깨고 현실적인 부분을 따져서 연구실을 선택하라고 권하고 싶다.
위의 (1), (2) 경우와 달리 나는 비전공자이면서 개발 역량도 경험도 부족한 상황에서 대학원에 진학했다. 공부할 시간과 경험이 필요했다. 그리고 내가 다녔던 연구실은 여건이 좋은 연구실이었다. 까다롭게 조건들을 따지진 않았지만 친구의 추천 덕분에 좋은 연구실에 다닐 수 있었다. 그랬기 때문에 인생 계획에 없던 대학원 진학을 어렵지 않게 결정할 수 있었고 지금 생각해도 잘했다고 생각한다. 우리 연구실은 어떤 곳이었을까?
연구실 월급이 학비+월세+생활비가 충당 가능한 액수인 연구실
나는 대학원 교육을 받을 목적이 아니라 2년의 공부할 시간과 공간 그리고 생활비가 필요해서 연구실에 나갔다. 월급으로 130~150만 원을 받았다. 장학금은 없었고 월급으로 등록금을 충당해야 했다. 국립대 등록금이 저렴해서 부담은 아니었다. 등록금을 제외하고 월세와 월 생활비로 100만 원 내외를 사용할 수 있었다. 사립대였고 장학금을 지원받지 않았다면 대학원에 진학하지 않았을 것이다.
지인이 있고 어떤 연구실인지 교수는 어떤 사람인지 파악하고 있는 연구실
본인의 경우에는 연구실을 추천해준 사람이 친구여서 연구실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있었다. 연구실과 담당 교수에 대한 정보 없이 연구실에 들어가는 건 모험이 될 수 있다. 교수가 어떤 사람인지 연구실 분위기는 어떤지 운영하는 사업은 어떻고 임금은 어떻게 지급되는지를 파악할 필요가 있다. 특히 석사생들의 입학/졸업 현황은 어떤지 2년 안에 다들 잘 졸업하는지 반드시 파악할 필요가 있다.
갑질(?)과 위계질서가 존재하지 않는 연구실
내가 다녔던 연구실은 석사생들 위주로 꽤 민주적인 형태로 연구실이 운영됐다. 담당교수의 의사결정에 따라 연구실이 운영된 건 맞지만 학생들의 의견을 많이 고려해줬다. 연구실에서 교수의 권력은 독보적이기 때문에 사용하기에 따라 달라진다 (졸업, 눈문, 학점, 월급 등등). 회의를 길게 한다거나 가끔 이해할 수 없는 일을 지시하는 경우는 있었어도 학생들을 찍어 누르는 교수가 아니었다. 덕분에 연구실 분위기가 좋았고 학생들도 연구실에서 편안함을 느꼈다. 연구실 생활은 내 인생에서 즐거웠던 한 부분으로 있다. 혹시 연구실 랩장(박사 또는 박사과정인 경우가 많다)과 담당교수의 파워가 세고 연구실 분위기가 고압적인 곳이 었다면 입학을 망설이지 않았을까?
석사생들이 5명 이상 있는 연구실
증명이 불가능한 지극히 개인적인 기준이다. 석사생들이 많다는 건 최소 평타는 치는 연구실이라고 생각한다 (취업연계과정으로 채워진 연구실 제외). 석사생들이 빠지고 채워지고 순환이 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왜냐면 대학원 입학 수요가 많지 않기 때문에. 계속 순환이 된다는 건 연구실 평판이 나쁘지 않다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5명 정도는 돼야 교수의 관심이 분산되기 때문에 교수의 압박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 2명 있는 연구실에서 한 명이라도 빠지면 크게 티 나지만 5명 있는 연구실에서 한 명 빠지면 덜 티 난다. 교수로부터 내려오는 잡무도 분산되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모여서 떠들고 놀고 가끔 술 한잔하고 하려면 5명은 있어야 재밌다. 대학원생도 사람인데 숨은 쉬어야 될 거 아닌가. 내가 다녔던 연구실은 10명 정도였는데 모여서 놀기도 좋았고 한두 명 정도는 땡땡이치기도 좋았다.
결론 대학원 입학은 케바케(case by case)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