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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onymDev Sep 18. 2020

개발자는 말을 못 해도 될까?

개발자의 말말말

개발자들은 원래 말을 잘 못한다


  혹은 '말 못 해도 개발만 잘하면 된다'라는 말을 종종 듣는다. 과연 그럴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말을 잘하고 못 하고는 개인의 역량에 달린 것이지 개발자의 문제는 아니다. 더욱이 개발자라면 말을 못 해선 안된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말을 잘한다는 의미는 논리적이고 명료한 표현을 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미사여구를 사용하여 말을 멋지게 하는 것이 말을 잘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동의하지 않는다).

  개발자들은 작업물, 지식, 정보를 동료들과 나눌 기회들이 많다. 기술 역량을 모으는 과정으로 기술 토론, 구현물 공유, 리뷰 등의 과정이 있으며 말을 통해 이뤄진다. 말하기도 코딩처럼 개발의 일부이고 개발 실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개발자들은 어떻게 말을 할까?


1. 말(주장/의견)을 뒷받침하는 근거를 객관적으로 제시한다


  보통 구체적인 수치나 확인 가능한 사실을 근거로 의견을 제시한다. "원래 그렇다.", "과거 경험을 토대로 봤을 때 그렇다.",  "요즘 트렌드가 그렇다"는 모호한 표현을 종종 듣는다. 이런 감상적인 표현은 상대방 입장에서 설득력이 떨어진다. 하지만 개발자들은 주관적 해석이나 감상이 들어간 의견보다는 객관적인 수치나 사실을 근거로 말하는 것을 선호한다. 입력과 출력이 명확한 관계를 갖는 컴퓨터를 가지고 작업을 하기 때문이다.

  사례를 하나 들어보자. 운영 중인 서비스에 장애가 발생했다. 장애의 원인과 조치 내역을 공유한다고 해보자. "(원인) 서버에 문제가 있어 장애가 발생했습니다. (결과) 서버를 증설해서 해결했습니다."라고 보고를 했다. 장애 원인과 조치 내용이 상관관계가 있다고 생각되는가? 추상적인 장애 보고를 듣고 신뢰할 수 있는 장애 대응이 이뤄졌다고 믿을 수 없으며 구체적인 장애 내용을 파악하기 어려워 보인다.

  같은 내용을 가지고 구체적인 수치와 사실을 함께 제시해보자. "(원인) 기존에 산정했던 최대 허용 접속자 0000명이 넘어가면서 사용자의 요청 처리에 대한 응답 시간이 증가하는 것이 관찰됐습니다. (결과) 최대 허용 접속자 수를 0000까지 늘리기 위해 0대의 서버를 증설했습니다." 구체적인 데이터를 제시하여 말하니 말에 설득력이 더해졌다. 이것이 개발자의 말하기다.


2. 직접적 표현을 통한 사실 전달을 한다


  개발자들은 장애 보고와 개발/운영 이슈 공유를 위해 사실이나 사건 내용을 전달하는 경우가 많다. 이때 사실과 사건을 위주로 직접적 표현을 활용해 묘사한다. 직접적 표현이라 함은 대상이 지닌 정보를 그대로 전달하는 것을 말한다. 직접적 표현을 통해 내용을 정확하게 전달하고 판단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종종 비유하여 설명하는 경우가 있다. 비유적 표현은 객관적일 수 없기 때문에 사람(또는 상황)에 따라 다르게 해석돼 잘못된 정보가 전달될 수 있다. 잘못된 정보는 장애와 버그로 이어진다.

  물론 경우에 따라서 비유적인 예시를 통해 설명하는 것이 효과적인 경우도 많다. 다만 있는 그대로의 사실로 표현할 수 있다면 직관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지 않을까? 굳이 아름다운 비유적인 표현을 빌릴 필요가 없다. 위의 장애 사례를 굳이 '손님이 갑자기 몰린 카페'에 비유하여 설명하는 것은 말만 길어질 뿐이다. 비유적 표현보다 직접적 표현을 통해서 말을 간결하게 하는 것이 개발자의 말하기다.


3. 말의 내용을 정리할 줄 안다


  개발자들은 서로 기술 관련 정보나 지식을 공유할 기회가 많다. 교육과 성장 그리고 서비스를 개선하기 위한 목적이다. 따라서 본인이 '새롭게 알게 된 정보'나 '학습을 통해 얻은 지식'을 정리하여 공유하는데 익숙하다.

  "OO은 정말 똑똑하고 아는 건 많은데 말을 잘 못한다"라는 말을 종종 듣는다. 말이라는 것은 머릿속에 정리된 정보와 지식이 입 밖으로 전달되는 과정이다. 고로 '아는 건 많지만 말을 못 하는 그/그녀'는 말을 잘 못하는 것이 아닐 것이다. 말하고자 하는 내용을 정리하지 못했기 때문에 말을 못 하는 것이다. 모르는 주제에 대해서 얘기를 하다 보면 중언부언하기 마련이다.

  개발자 컨퍼런스에 말을 잘하는 발표자들이 있는 반면 못하는 발표자들도 적지 않게 있다. 아마도 본인들조차 제대로 정리하지 못한 지식을 발표하려고 하니 버거웠던 탓일 것이다. 대부분의 개발자들이 공유와 발표를 위해 본인의 지식과 정보를 꾸준히 정리한다. 그렇지 않으면 금방 티가 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모든 개발자가 말하기에 뛰어나다곤 할 순 없다



  이 글의 본질은 '개발자는 말을 잘한다'는 주장보다는 '(실력 있는) 개발자라면 말을 잘해야 한다'이다. 위에서 제시한 세 가지 요건을 '~한다'라는 문장으로 끝나지만 '~할 수 있어야 한다'로 대신하는 게 더 적절하다. 더불어 본인이 부족하다고 느꼈던 부분과 그 이유에 대해서 나열한 내용이기도 하다. 개발자를 3인칭으로 두고 풀어냈지만 사실 자아성찰적인 글이다.

  문돌이었던 내게 '이과적인' 개발자들의 말은 인상적이었다. 예를 들면 "A가 B보다 좋아"라는 주제가 그렇다.  'A가 B보다 좋은 이유'에 대해서 객관적인 증명을 해볼 기회가 많이 없었다. 왜냐면 구체적인 증명을 요구하는 질문을 받아본 적도 없었고 나조차도 연구해볼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개발자가 되고 상황이 달라졌다. 나의 다소 추상적인 말에 동료 개발자들이 의문을 가졌기 때문이다. 비판적 사고를 가진 동료들과 소통하고 나의 실력을 보여주기 위해서 나의 의견을 뒷받침할 수 있는 객관적인 근거들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의 의견을 논리적으로 전개하는 연습을 하기 시작했다.

  본인도 '말을 잘한다'는 평가를 들을 정도로 말 주변에는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객관적/구체적인 증명의 과정을 거치는 대화를 해본 경험이 부족했다. 다소 추상적인 주제를 가지고 정답이 없는 사색적인 말들을 주로 해온 탓이었다. 따라서 객관적인 관점에서 논리를 증명하고 주장하는 능력이 부족했던 거 같다. 개인적인 내용으로 동료들과 친목을 나누다 보면 동료들이 농담으로 "문과라서 그런지 말을 참 잘해"라는 말을 한다. 그건 아마도 나의 다소 화려한 말주변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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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 문과인 사람들은 그러면 말을 못 하는 것일까?


  전혀 그렇지 않다. 이 글은 문과생과 이과생의 말하기 능력을 비교 평가하는 글이 아니다. 문과생의 입장에서 이과생(?)들과 일 하면서 느꼈던 '말에 대한 깨달음'을 얘기한 것이다. 이과/문과 상관없이 논리적 사고 능력이 떨어지고 학습이 부족하다면 말을 못 하기는 매한가지 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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