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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onymDev Apr 17. 2022

동료 피드백에 대한 단상

당신의 동료는 감성적이다

'전년도 성과 평가와 동료 피드백'이 공개된 날 퇴사를 알렸다.

회사에서 삼 년 차가 되는 해의 어느 날이었다. 퇴사는 계획된 이벤트였다. 다만 동료들의 피드백을 듣고 퇴사를 알리고 싶었다.

(* 별칭이다)


세 개의 해를 보내고 두 번의 동료 피드백을 받았다. 감사하게도 두 번의 피드백 모두 긍정적이고 힘이 됐다. 나 또한 동료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긍정적인  피드백을 줬다. 그들은 훌륭한 동료였고 나 역시 그들에게 좋은 동료가 되기를 원했다. 그리고 노력했다.


입사하고 두 달이 채 안되던 날 아침 스크럼이었다.

아침에 가볍게 차 한잔하며 동료들과 두런두런 둘러서서 그날의 이슈를 가볍게 공유하는 자리였다. 어쩌다 보니 피드백을 주제로 얘기를 나누게 됐다. 직전 직장에서 피드백 문화를 찐하게 겪었던 터라 본인도 피드백에 대한 경험과 의견을 짧게 던졌다. 당시 리더는 눈을 반짝이며 피드백을 주제로 세션을 진행해줄 수 있는지 덥석 물었다(엄청난 피드백 페티시를 가진 사람이었다).


전 회사는 외국계 게임 회사로 확고한 피드백 문화를 가진 조직이었다

가감 없는 직설적인 피드백이 조직과 개인 성장의 동력이라는 Direct Feedback 문화가 존재했다. 정기적인 피드백 작성 외에 일상적으로 동료들끼리 솔직한 피드백을 주고받았다. 그리고 서로가 모두 솔직하다고 믿었다.


피드백 세션에 대한 부정적인 피드백을 들었다


코로나가 잠잠하던 시기 아침 일찍 일어나 사무실에 출근했다. 자리에는 개발자인 나와 기획자 한 명이 사무실에 있었다. 기획자가 나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저기요... 피드백 주고받는 세션이요. 그거 안 하면 안 돼요?". 우는 건지 웃는 건지 알 수 없는 멜랑꼴리 한 표정이었다. 피드백을 솔직하게 주고받는 게 어렵고 상처가 된다는 게 이유였다.


가볍게 수락한 세션이었지만 마음은 무거웠다. 실리콘벨리의 어떤 서적처럼 "솔직한 피드백은 조직을 건강하게 만듭니다"라고  떨어지게 말하고 싶지 않았다. 피드백은 야생의 약초와 같아서 사람을 살리기도 하지만 모르고 사용하면 독초가 된다고 믿었다.  성질 (또는 체질) 맞지 않으면 오히려 해가 됨을 알고 있었다. 게다가 우리 팀은 끔찍할(?) 정도로 독특한 성질의 사람들이 다양한 체질을 갖고 모인 조직이었다.


지금도 가끔 생각나는 황당한 피드백을 받아본 적이 있다


기명으로부터

평소에 본인이 준 피드백을 듣고 적극적으로 변하려고 노력하지 않음
태도에 문제가 있음
피드백을 수용하는 적극적인 태도를 가질 것을 요청함

긴장도 했지만 나름 기대했던 피드백인데 막상 부정적인 피드백을 받아보니 당혹스러웠다.


'나를 싫어하나?'

'담배를 안 피워서 이러는 건가?'


엉뚱하게도 업무와는 상관없는 상대방의 모습들만 떠올랐다. 피드백을 준 사람과 업무적으로 겹친 적이 없었고 근거를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나무라듯 태도를 지적하는데서 기분이 상하기도 했다.


솔직한 생각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것이 Direct Feedback이라고 생각했으리라고 추측한다. 하지만 피드백을 받는 대상에 대한 배려는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솔직과 직설의 본질은 정확한 전달이라는 것은 놓쳤다.


결국 불친절한 피드백은 받아들이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그날 이후 머릿속에서 지웠다. 도움이 안될 뿐더러 선의의 피드백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사건(?)이 있고부터 소스코드, 문서, 메신저를 통해서 피드백을 평소보다 더 적극적으로 요청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최대한 피드백을 반영하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했다. 그날의 피드백을 받아들이지 못한 모습에 대한 방어기제 같은 거였다.


시간이 흐르고 수년간 이어왔던 Direct Feedback 문화는 서로에게 상처만 남긴 채 사라졌다. 긍정적인 효과보다는 부작용이 크다고 판단했다. 조직장 들은 비공개로 피드백을 주는 대상을 선정했고  내용도 철저히 비공개에 부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사람마다 원하는 피드백은 다르다

'피드백 세션이 두렵다'는 피드백을 받고서야 세션의 방향을 정할 수 있었다. 피드백 세션이 두렵다던 기획자는 사실 피드백을 적극적으로 요청하던 사람이었다. 다만 비난을 받았을 때 입을 상처를 감당할 자신이 없었을지 모른다.


"각자가 원하는 형태의 피드백을 적어서 공유해주세요. 없으면 적지 않으셔도 됩니다."


어떠한 피드백도 원하지 않는다고 해도 그 자체로 의미 있었다. 상대가 원치 않는 피드백은 소용이 없다는 걸 몸소 겪지 않았는가.



피드백을 원하지 않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A는 빈말으로라도 칭찬을 하지 말아 달라고 했다. 곧이곧대로 믿기 때문이라고 했다. B는 거친 표현을 사용하지 말아달라고 했다. C는 화를 내지 말아달라고 했다. D는 어떤 형태의 피드백도 좋으니 일단 얘기해달라고 했다. 본인은 구체적인 근거와 대안이 있는 피드백을 달라고 했다. 그리고 기회가 된다면 피드백을 주기 전에 신뢰를 쌓아보는 게 어떨지 제안했다. 피드백을 주고 나서도 좋았다.


"피드백은 당신을 헤치지 않아요. 내 얘기를 한번 들어주지 않을래요?"


'그날의 피드백'을 준 당사자와 만일 신뢰하는 동료 관계였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그날의 피드백'을 머릿속에서 지웠다고 했지만 사실 그 자체로 피드백이 됐다. 그리고 이렇게 콘텐츠가 돼 세션과 글로 완성됐다. 덕분에 피드백에 대해서 깊게 고민해보게 된 계기가 됐다. 내가 이렇게 성장하길 원했던 게 그분의 의도이지 않을까 긍정 회로를 돌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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