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자가 취업하는 방법 V3
최근에 이력서를 정리하는(혹은 해야 하는) 이유에 대한 글(개발자가 이력서를 정리하는 이유)을 적었다. 이력서를 정리하면서 실제로 제출해 개발자로서의 커리어를 시장에서 평가받고 싶은 마음이었다. 이렇게 시작된 이직 활동은 활발한 개발자 채용 시장의 버프를 받고 두네카라쿠배당토 3개 회사에 합격해 처우 협상을 진행했다. 그리고 그중 한 곳으로 옮기게 됐다. 개발자 인생의 세 번째 회사였다.
이번 글에서는 개발자가 취업하는 방법의 세 번째 버전(V3)으로 경력이 있는 개발자의 관점에서 이직에 대해 적어보려 한다.
V1가 구체적인 취직 방법에 대한 내용이었다면 이번 글에서는 이직을 접근하는 방법과 채용 시장에서 경쟁력 있는 협상을 할 수 있는 방향에 대한 내용에 중점을 둔다.
이직의 기회는 정말 우연한 계기로 찾아온다. 구직자는 당장이라도 채용 시장에 뛰어들 준비가 돼있어야 한다. 이직의 시작은 이력서 제출이다. 늦은 밤 술 먹고 들어와도 제출 버튼을 누를 수 있는 최신 버전의 이력서가 존재해야 한다. 이직은 기세다. 바로 실행에 옮길 준비가 되지 않는다면 타이밍을 놓치게 될 가능성이 크다. 무엇이든 시작이 어려울 뿐이다. 하지만 이력서가 준비됐다면 이직을 시작하는 건 어렵지 않다.
정리되지 않은 이력과 포트폴리오는 시간의 흐름과 함께 썩기 마련이다. 주기적으로 이력서를 업데이트하며 최근 n개월간 어떤 일을 했는지 정리하면 신선한 상태로 이력을 보관할 수 있다. 한참 시간이 지난 후 먼 옛날의 이력을 적으려고 하면 머리도 마음도 이력서도 공허해질 뿐이다. 무엇보다도 사라진 기억을 쥐어 짜내며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게 될 것이다. 지치면 이직을 포기하게 될지도 모른다.
개발자의 이력서 정리는 본인의 시장가치를 복기할 수 있는 좋은 도구이기도 하다. 이력서를 통해 채용 시장에서 경쟁력 있는 자원인지 자가 진단해볼 수 있다. 부족하다고 느낀다면 자연스럽게 보완하면서 매력적인 이력서로 만들기 위해 노력할 테니 오히려 좋다.
이력서만 작성했다고 해서 좋은 구직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구직도 채용시장이 활기를 띌 때 하면 좋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모르겠지만 코로나의 창궐은 IT 업계 채용 시장에도 활력을 불어넣었다. 투자금이 몰리면서 많은 IT 스타트업이 생겼고 개발자에 대한 수요가 늘었기 때문이다(코로나 시대의 개발자). 높은 연봉 상승률을 마다할 회사원이 누가 있겠는가. 돈보다 더 중요한 가치도 분명히 있다. 좋은 동료, 좋은 문화, 성장할 수 있는 환경 등등등. 하지만 업계의 평균 연봉 인상률이 높을수록 연봉 협상할 때 유리하다는 건 사실이니까. 회사는 업계 평균을 고려해서 구직자에게 처우 제안을 할 것이다. 많이 올려줄 때 얼씨구나 이직해두면 나중에 두고두고 도움이 된다. 모든 연봉 협상은 전 직장 베이스이다. 베이스를 차곡차곡 올려둬야지 앞으로도 좋은 보상을 평가받을 수 있다.
채용 시장이 활발해지면 구직보다 구인이 많아진다. 수요가 공급보다 크다는 의미로 구직자가 구인자보다 유리한 고지를 선점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채용 과정에서 만족스럽지 않다면 다른 옵션을 과감하게 선택할 수 있는 배경이 되기 때문이다. 더불어서 포지션이 많은 만큼 본인에게 적합한 서비스와 직무가 무엇인지 따져볼 수 있다. 여러모로 이직하기 좋은 조건을 찾을 수 있다.
물 들어올 때 노 저어라
보통 현재 상황이 불만족스럽거나 어려울 때 이직을 많이 생각한다. 상황이 좋을 때 이직을 생각하는 경우는 상대적으로 드물다. 하지만 채용은 구인자와 구직자의 파워게임이기도 하다. 현재 상황이 부정적인 쪽이 불리하고 긍정적인 쪽이 유리할 수밖에 없다. 현재 회사에서 좋은 보상을 받고 좋은 미래를 약속받았다면 오히려 협상 단계에서 힘을 얻게 된다.
구직자가 재직 중인 회사가 어떤 이유로 상황이 안 좋다고 가정해보자. 회사 입장에서 구직자가 해당 회사를 선택하는 것보다 좋은 옵션이 없거나 이직 외에는 옵션이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보다 갑의 입장에서 협상을 진행할 수 있게 된다. 이 경우 회사가 구직자에게 현재 연봉 이상으로 처우를 제안할 요인이 클까?
현재 회사에 머무르는 것이 좋은 옵션이 아니라면 파워 게임에서 한수 접고 들어갈 수밖에 없다. 구직자 본인도 현재 상황을 타개하는 것에만 몰두하다 보니 냉정하게 판단하지 못하고 아쉬운 선택을 할 수 있다.
또 다른 예를 살펴보자. 같은 연봉, 같은 능력, 같은 회사의 두 개발자 A와 B가 있다고 하자. A는 1년 후 행사할 수 있는 스톡 옵션이 있고 B는 없다. 이 상황에서 이직하려는 회사는 누구에게 더 높은 처우를 제안하게 될까? A와 B 중 누가 더 공격적으로 처우 인상을 주장할 수 있을까? 현재 회사에 머물렀을 때 더 좋은 옵션을 가진 A일 가능성이 더 높을 것이다. 결국 파워게임에서 우위를 가진 자는 얼마나 좋고 많은 옵션을 가졌는가에 달려있다.
여유로운 태도는 사람을 더 매력적으로 보이게 한다
본인이 정말 가고 싶은 회사의 원하는 서비스의 원하는 포지션이 있을 것이다. 가장 마음에 드는 채용공고에만 지원하지 말고 동일한 조건의 다른 포지션을 3개 이상 진행하는 것을 추천한다. 면접은 보면 볼수록 느는 법이라 연습하라는 의미도 있지만 더 중요한 의미가 있다.
가장 중요한 이유는 회사에게 구직자가 대안이 있음을 보여주기 위함이기도 하다. "이 구직자는 우리 회사 말고도 다른 옵션을 갖고 있구나."라는 것을 알릴 수 있다. 그리고 대안들이 구체적인 숫자(제안받은 보상)를 갖고 있을수록 힘을 갖는다. 회사는 구직자에게 최소한 다른 옵션들 이상의 처우를 제안할 수밖에 없다. 구직자가 다른 회사에 그것도 2개 3개 합격했다고 하면 더 매력적으로 보일 것이다. 구직자가 좋은 인재라는 명확한 지표가 되기 때문이다.
구직자 입장에서도 다양한 옵션 중에서 가장 합리적인 옵션을 선택할 수 있게 된다. 이직을 막상 준비해보면 아쉬운 조건을 제시받아도 포기하기 어려워 갈등하게 된다. 힘들게 준비한 이직을 포기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회사가 여러 개라면 다른 회사를 협상 카드로 활용할 수 있지만 진행 중인 회사가 하나라면 선택 또는 포기 양자택일할 수밖에 없다.
"혹시 지금 면접이 진행 중인 다른 회사가 있을까요?"라는 질문을 받았다면 자신 있게 본인의 상황을 공유할 수 있도록 해보자.
위에서 옵션을 많이 만들어서 경쟁력 있는 구직자가 되자고 강조했다. 하지만 면접을 못 보면 옵션이 아무리 많아도 의미가 없다. 옵션만 많고 평가를 잘 받지 못한다면 좋은 처우 제안을 받기 어렵다. 회사 입장에서 합격 커트라인 정도 넘는 구직자를 힘들게 돈 써가며 잡을 이유가 없다. 면접 평가 결과는 향후에 연봉 협상에 반영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모두가 같은 보상을 제안받지 않는다.
처우 협상 티키타카를 하면서도 면접 평가를 근거로 더 높은 보상을 요구할 수 있다. 이 때 실제로 평가 결과가 좋았다면 구직자의 요구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IT회사들은 채용을 보통 팀에서 담당하기 때문에 면접도 같이 일할 동료들이 직접 본다. 좋은 평가를 받았다면 동료들도 지원자를 잡기 위해 채용팀에 긍정적인 어필이나 피드백을 할 것이다.
면접은 최선을 다해서 준비하고 혼신을 다해 임하자. 연습은 무조건 철저히 해야 한다. 생각 없이 참석한 면접은 합격해도 남는 것이 없다. 반면 준비하고 들어간 면접은 탈락했을지라도 피드백이 남는다.
직전의 이직에서 아쉬웠던 점은 연봉협상에 대한 경험과 자신감 부족이었다. 자신이 없었던 이유는 협상 테이블에서 구직자가 회사보다 을에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처우에 대한 역제안을 하긴 했지만 내가 원하는 액수보다는 낮게 적었다. 왠지 회사가 제시한 처우보다 더 높게 제안하거나 너무 많이 역제안을 하면 회사가 일방적으로 협상을 종료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을 갖고 있어서 그랬다.
되돌아 생각해보면 당시에 본인의 상황은 만족스러운 편이었다. 재직 중인 회사의 네임밸류, 보상, 복지, 문화 앞서면 앞섰지 업계 대비 뒤처지지 않았다. 그리고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당시에 면접 평가도 매우 좋았다고 한다. 내가 쫄릴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더 자신감을 가질 충분한 근거들이 있었다.
회사가 일방적으로 협상을 종료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오히려 구직자가 협상을 종료하는 케이스가 일반적이다. 회사는 최후 보상안을 제시할 뿐 채용을 일방적으로 종료하지 않는다. 자신 있게 의견을 피력하고 판단은 회사 측에 맡기면 된다. 제안도 하기 전에 먼저 겁먹고 스스로의 가치를 낮출 이유는 1도 없다. 다만 겸손한 태도를 유지하고 합리적인 근거로 뒷받침해야 한다. 이런 과정을 여러 차례 거치며 차츰차츰 회사와의 갭을 줄여가는 것이 필요하다. 협상 종료의 키는 구직자에게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자신감 있게 테이블에 앉자.
마지막으로 하나 더! 처음으로 받은 처우 제안을 절대 덥석 물지 말자. 무조건 역 제안해야 한다. 30% 인상까지 버퍼를 두고 있어도 회사는 10%, 15% 인상만 제안하는 게 국룰이다. 연봉 협상은 주로 이메일을 통해서 이뤄지는데 이메일 하나 보낼 때마다 1,000만 원이 오를 수도 있다.
협상 테이블에서 자신감은 골라갈 수 있는 지원자의 역량에서 나온다.
협상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다면 현재의 회사에 머무르는 것도 좋은 선택이다. 이직을 꼭 해야 한다는 강박증을 버리라고 말해주고 싶다. 물론 쉽지 않다. 위에서 말했듯이 이직 힘들게 준비해서 꾸역꾸역 올라왔는데 이걸 포기하라고? 눈물 나올 만큼 아쉬울 것이다. 하지만 이직해서 더 크게 울 수 도 있다.
현재 회사에 머물 수 있으려면 위에서 말했듯이 현재 본인의 상황이 해피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게 된다. 항상 현재에 최선을 다해야 하는 이유다.
재직 중인 회사의 카운터 오퍼가 남아 있다
다음 글에서는 연봉 협상을 어떻게 진행했고 어떤 메일이 오고 갔는지 작성했는지에 소개해보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