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증적 양성갈등의 세태

시대평론 2024 4月

by 모익명

"혐오야말로 21세기의 언어다!" 라는 일체의 발언은 역사적 이해를 결여한 사고의 산물에 불과하다. 유감스럽게도 혐오는 인류사 전반에 있어 항상 존속하여 왔고, 또한 그것은 지배 계급의 통치 수단이기도 하였다. 중세의 유태인, 근대의 중국계 미국인, 제국주의의 식민지인 모두가 프레임화된 혐오 대상의 방증으로 남아 있으며, 현대에도 그 상흔은 남아 우리 인류의 역사를 뒤흔드는 하나의 축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럼에도 현대를 "혐오의 시대"로 정의할 만큼 오도하게 만드는 건 이제 그러한 혐오가 사회 전반적으로 상당한 파급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이제 혐오는 단순한 개인의 일탈에서 그치지 않고, 사회의 통합 그 자체를 방해하는 주체로 기능함과 동시에 공동체의 존속마저도 뒤흔들기까지 한다. 이를테면 1991년의 유고슬라비아 내전과 학살, 뒤이은 해체가 대표적일 것이다.

오늘날의 양성갈등은 이러한 면을 내포한다. 성별간 결별은 국가의 미래마저도 가십거리로 사용하고자 함에 주저하지 않는다. 진정 무의미한 감정적 소모가 본국의 심연에부터 표층에까지 광범위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감정적 소모는 일시적인 현상을 넘어 장기적인 사안으로 비화되고 있다.

그 감정적 소모의 중심에 있는 디시인사이드나 여성시대와 같은 삼류 사이트. 이들은 같잖은 여론에 편승하여 서로의 혐오스러움을 극대화하기에 바쁘다. 기만에 지나지 않는 상호간 희화화와 모욕적 언사. 이들은 타 성별을 상대로 희미한 일상적 관념과 불쾌감을 재료로 직조하여 증오를 조소하고자 한다. 천박하기 그지없는 상승혼, 한남, 소추, 설거지라는 단어들. 양성간의 적대적 이원론을 재생산하기 위한 장치는 이들 군집에 의해 양산되며 동시에 사회 전반으로 확장되고 있다.

그러한 넷상에서의 경박은 새로운 형태의 린치를 양산하는 것으로 귀결되었다. 내집단의 결집에 초점이 맞추어저 있던 이전의 진영논리와는 달리, 내집단을 해체하고 그 일부를 매도하여 깎아내리는 데 목적을 두고 있는 신세기의 흑백전선. 광범위한 비도덕성의 토양이 잉태한 본 궤변은 한국 사회의 본질을 자득한 것으로 '인식되길 바란다'. 허나 그곳에는 새로운 피해자들을 찾아 자존감을 채우기 위한 그들의 미성숙한 투쟁만이 자리하고 있을 뿐이다.

오늘날 경제적 궁핍함으로만 설명될 수 없는, 조롱과 수동적 공격성으로 대표되는 양성간의 흥미로운 관계란 대개 그에 찬조한 이들이 만들어 낸 결과물이다. 적대적 네거티브를 통해 형성된 여론전선은 전면적 위축과 사회적 퇴보를 야기하였다. 이 참호전에 어떤 진전이 있었던가. 정체성 정치를 내세운 공세는 무의미한 희생과 소모, 모두에 대한 기만과 불신으로 돌아왔다. 그런 우스꽝스러운 총력전은 개인의 불행을 타인에게 투사하기 위한 불쾌한 부조리극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각본에서 모두가 잊어버린 것이 있다. 첫째는 양성 간 사랑이 괴이하냐는 것이고, 둘째는 이러한 논쟁이 사회에 어떠한 비전을 제시해 주었는가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상정된 주제가 매우 정치적이며 또한 억지스러운 것임을 인식하게 된다. 오직 정치적 술식만을 필두로 한 본 진영논리는 극히 비이성적이며 또한 비정상적이자 동시에 소모적이다.

그렇기에 무엇을 위한 투쟁인지도 망각해버린 족속들이 애타게 부르짖는 정치적 성별혐오는 도리어 혐오스럽다. 근 10년간 대두된 불쾌한 정체성 정치의 지루한 여정에서 그들은 스스로의 망상적 불쾌감에 휩싸인 채 공연히 선동하기 바빴다. 이런 저열한 이간질은 현 세대에 있어 건전한 민주적 여론 형성의 기능을 마비시켰으며, 정치적 효능감을 크게 악화하였다. 결과적으로 해당 족속의 무책임하고 조현되지 못한 히스테리적 병리작용은 한국의 진보적 방향성을 염습한 것이다.

이들의 역겨운 여론적 잔발질을 청산하기 위한 것은 명료하다. 바로 관대함과 포옹을 앞세운 구성원의 의식적 계몽이다. 물론 양성간의 바람직한 관계를 재구축하는 데 모 사이트들이 배제되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며, 정치적 해결이 고려되지 않아야 한다는 것도 아니다. 다만 무엇보다 본질적인 것은 이러한 의식적인 인정과 인내가 사회 구성원의 집단적 가치로 자리함이 선행되야 한다.

격동의 한국 근대사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새로운 시대의 지평은 구성원들의 화합과 신뢰 속에서 이행되었음을. 가장 명확한 사실은 성별적 분화가 서로 혐오하고 갈등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조롱과 희화화라는 회백색의 그늘에서 사랑과 안정이라는 다채로운 미래로 나아가자. 양성간의 관계를 새롭게 정립하는 것과 상호간 신뢰를 재구성하는 것. 이것만이 본 갈등의 소모성을 무한한 가능성으로 치환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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