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란하게 빛나던 꿈과 희망의 21세기가 추악한 불확실의 시대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은 분명해졌다. 지금의 남루한 신경안정제 중독자들이 한때 신세기의 선봉장으로 추앙받았음을 회상해 보면 심히 혼란스럽다. 먼 옛날, 경제적 성장이라는 이름의 국채 아래 풍족함을 쫓아 조국의 모든 가치를 투자한 결과는 심적인 공허함으로 돌아왔고, 대한의 청년들은 그런 한국 사회가 초래한 부조리에 완전히 주저앉았다. 개개인의 날 선 방어기제가 만들어 낸 어쭙잖은 만족감. 이제 한국인들은 그 속에서 익숙함을 넘어선 안락함을 찾아 나섰다.
현대 한국의 세태는 무의미한 갈등과 분열을 초래했고, 그런 무의미함은 혐오라는 의미의 실체로 전이되었다. ‘MZ’라는 단어는 이런 중대한 때에 대한민국의 입법자들에 의해 조어되었다. 당연히 그것은 의도대로 한국 사회 곳곳을 들쑤신 끝에 금일 대한에서 가장 위험한 낱말이 되었다. 어떠한 입장을 내더라도 곤란하지 않을 수 없을 당혹스러운 모호함. 필자는 그런 환경 속에서 이 단어에 대한 담론을 조심스럽게 전개해 보고자 한다.
세대라는 말에 집중한 MZ세대 담론의 기존 양상은 다양성을 지닌 구성원들을 세대라는 이름으로 함축하여 유일자(Einzige)로 살아가는 개인을 모욕했다는 것을 골자로 한다. 물론 세대라는 단어는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내포한다. 하지만 이를 ‘MZ세대’에 대한 담론의 주 내용으로 삼는 것은 곤란하다. ‘세대’라는 단어가 새롭게 만들어진 것이 아니지 않는가? 이것은 편의에 따라 이전부터 쓰여오던 기존의 단어이며, 관습적인 측면에서 충분히 용인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현 담론의 이론적 근거가 심히 빈약하다는 말이 지나치지는 않을 것이다.
‘MZ세대’라는 말의 가장 큰 문제는 복잡한 단어를 난잡하게 활용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MZ세대’라는 단어는 타 세대 구분 대비 광범위한 연령대를 지칭하여 다분한 오해의 소지를 양산한다. 하지만 ‘MZ’는 특정 행위를 설명하기 위한 근거로 기용되어 사회 전반에 걸쳐 필요 이상으로 응용되었다. 이러한 쓰임은 차후 기술하겠지만, 사회 문제의 본질을 흐리는 하등 건전하지 못한 쓰임이다. 다만 더욱 중대한 사안은 이 단어가 사용되는 의도의 불순함에 있다.
만민에게 나이는 선천적인 요인이고, 특히 동양에서는 나이가 사회 전반을 총괄하는 문화적 요소가 된다. 하지만 세대 담론인 ‘MZ세대’ 담론은 선천적인 계급과도 같은 ‘나이’에 기반하기에 폐쇄적인 특질을 지닌다. 그러므로 이 담론으로 타 계층을 포옹하는 것의 한계는 근본적인 영역에 있다. 따라서 인민, 노동자, 학생, 실업자, 취약계층의 요구(demand)를 “MZ세대의 요구”로 재구성하는 것은 진취적인 발기인을 본위 계급의 옹위를 위한 파렴치한으로 뒤바꿔 놓기에 실로 적절하다. 이러한 인식이 발언의 권위를 낮추어 변화의 저지에 용이할 것이라는 건 불 보듯 뻔한 사실이다. 즉, 이것은 변혁을 위한 계급의 단합을 기조에서부터 저지할 목적의 유치한 협잡이다. 이것이 한국의 지도층이 ‘MZ’라는 신조어를 조어해 낸 이유이다.
그러므로 필자는 본 단어의 의도에 착안하여 다음과 같은 해결책을 제시하고자 한다. ‘MZ’라는 단어가 지닌 복잡성을 해체하는 것이다. 노동 착취의 문제에서는 “노동자니까”. 인권의 문제에서는 “사람이니까”. 실업의 문제에서는 “실업자니까”. 복지의 문제에서는 “사회적 약자이니까” 등으로 말이다. 문제의 본질을 직시하여 개별적으로 명시해야만 한다. 그 점에서 지나치게 중의적이고 배타성을 가중하는 ‘MZ’라는 단어의 효용은 상당히 낮다. 실제로도 그것에 대상을 지칭하는 것 이상의 역할을 부여할 가치도, 이유도 없다는 것이 필자의 사견이다.
‘MZ세대’라는 단어가 지닌 복잡한 함의를 의미가 분명한 단어로 치환하여 본질을 적시하는 모든 행위는 만민의 이해를 끌어내기 위한 방법론적 접근이다. 이해는 관대함을 낳고 관대함은 화합을 낳는다. 이 공식은 이해를 포기한 반지성주의자들 대다수가 극단주의에 귀의하여 민주 사회를 폭력으로 위협한다는 것에서 반증된다. 한국 사회에서 혐오와 국가기구에 대한 불신이 종식되어야만 하는 것은, 근대사회의 시민이 자신의 권력 일부를 기꺼이 통치기구에 이양한 것이 인간사회의 원만한 화합과 본인의 안전을 공공시스템이 제공할 것이라는 믿음에 기인하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MZ’라는 황당한 신조어가 야기하는 부당한 문제는 화합으로 귀결되어야 하며, 필자는 한국의 사람들이 이러한 불결함을 극복하고 우리 사회의 진보를 선택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