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없는 뚜벅이 육아를 자처한 이유

생각보다 할 만하던데요?

by 아논

"아무리 그래도 차는 있어야지!"


출산까지 몇 개월 남지 않았을 무렵, 차를 사지 않았다고 하면 주변에서 다들 눈이 휘둥그레지며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아이를 키우려면 차가 꼭 필요한 이유'를 설파하기 시작했다. 외출할 때 짐도 많고, 새벽에 갑자기 병원에 가야 할 수도 있다며 말이다.


경험에서 우러난 진심 어린 조언인 걸 알지만 소용없다. 이제는 차를 '안' 사는 게 아니라 '못' 사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차 대신 집을 샀다. 있는 돈, 없는 돈 탈탈 털어 샀기 때문에 당분간은 꼼짝없이 뚜벅이로 살아야 한다.


원래 우리도 남들처럼 아이 태어나기 전에 차를 사려고 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집을 갈아탈 시기였고 아이가 태어나면 실행이 늦어져 타이밍을 놓칠 것 같았다. 수중에 있는 돈으로는 차와 집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우리는 후자를 택했고 그로 인한 불편함은 감수하기로 했다.


차보다 집을 사는 게 이득이라는 경제적인 판단 외에도 차량 구입을 망설인 이유는 더 있다. 일단 우리 부부는 평소에 차를 쓸 일이 거의 없다. 연애할 때부터 차가 없다 보니 불편함을 느끼지도 않고 대중교통이 잘 되어 있는 서울, 그중에서도 지하철 노선만 4개가 지나는 교통의 요지에 살기 때문에 마음만 먹으면 어디든 쉽게 갈 수 있다. 당연히 출퇴근도 모두 대중교통으로 한다.


게다가 남편은 장롱면허에 차를 타면 졸려하고 (멀미의 일종이라고 한다.) 나는 무면허에 주변 사람들 모두가 '너는 제발 면허 따지 말라'고 말릴 정도로 방향 감각과 거리 감각이 떨어지는 편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차만 산다고 될 문제가 아니라 남편은 연수를 다시 받아야 하고 나는 면허부터 따야 하는데, 어느 쪽이든 목숨을(?) 걸어야 하는 상황이다.


이처럼 생각하면 할수록 수지타산이 맞지 않았다. 자동차가 있으면 편리하고 행동반경이 넓어지는 건 맞지만 아이가 어릴 때 외출도 자주 하지 않는데 가끔 필요한 그 순간을 위해 그렇게까지 많은 비용과 노력을 들여야 하나. 사는 순간부터 감가상각이 되고, 차량 유지비만으로 월 20-30만원은 나갈 텐데 말이다.


그래서 적어도 당분간은 차를 사지 않기로 했다. 나중에 아이가 조금 더 크고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기면 그때 다시 생각해 보기로 하고 그동안은 대중교통을 이용하든 택시를 타든 (카시트가 설치된 서울엄마아빠택시를 적극 활용할 예정이다.) 할 생각이다. 솔직히 필요할 때마다 매번 택시를 타더라도 차를 사는 것보다는 돈이 덜 들 거라고 확신한다.


결국 기회비용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만약 우리가 차를 일찍 샀더라면 더 멀리, 더 자주, 더 편하게 여기저기 돌아다닐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차를 사지 않음으로써 또래보다 돈을 빠르게 모아 결혼할 때 전세가 아닌 자가에서 시작할 수 있었고 이는 재산 증식에 큰 도움이 되어 이번에 두 번째 집으로 갈아타기도 할 수 있었다.


차를 안 사기로 한 지금의 선택도 아마 비슷한 결과를 낳을 거라 믿는다. 당장의 편리함과 장기적인 이득 중에 우리는 이번에도 후자를 택한 셈이다. 물론 아이가 태어나서도 차가 없는 것은 연애할 때나 신혼 초에 차가 없는 것과는 비교도 안 되게 불편하겠지만 말이다.


그래도 하나 믿는 구석이 있다면, 불편은 하겠지만 불가능하지는 않을 거라는 사실이다. 우리 부모님만 해도 내가 일곱 살이 될 때까지 차 없이 우리 셋을 키우셨고, 나와 동시대를 사는 친구 K도 (심지어 미국, 캐나다, 한국을 오가면서) 차 없이 아이를 키우고 있다. K의 말을 빌리자면, 어떻게든 방법은 있단다. 그러니 우리도 아마 괜찮을 것이다.


* * *


여기까지가 아기가 태어나기 3개월 전, 작년 이맘때 썼던 내용이다. 아기가 9개월을 훌쩍 넘긴 지금 다시 읽어보니 감회가 새롭다. 현재 시점에서 드는 생각은 두 가지다. 하나는 그때 차 대신 집을 사길 정말 잘했다는 것. 이유는 말 안 해도 다들 알 거라고 생각한다.


다른 하나는 막상 차 없이 아이를 키워보니 생각보다 불편하지 않다는 것이다. 저때 당시 만나는 사람마다 아이 키우려면 차는 필수라고 하도 그래서 다소 비장한 마음으로 글을 썼는데 실제로 부딪혀 보니 그런 엄청난 각오 없이도 할 만한 것이었다. 그렇게까지 미리 겁 먹을 필요 없었다.


생각해 보면 차가 필수라고 강조했던 이들은 대부분 아이를 키울 때 처음부터 차가 있던 사람들이다. 실제로 차 없이 아이를 키워본 적도, 모든 상황을 하나하나 구체적으로 상상해본 적도 없이 막연히 불편하거나 불가능할 거라고 단정지은 것이다.


요즘 세상에 차 없이 아이를 키우는 가정이 워낙 보기 드물다 보니 사람들이 그 모습을 잘 떠올리지 못하는 듯하다. 하지만 머릿속에 잘 그려지지 않는다고 해서 극도로 험난한 건 아니라는 이야기를 전하고 싶다. 실제로 해본 사람의 입장에서 어떤지 적어보자면 이렇다.


일단 3-4개월까지는 워낙 정신없기도 하고 예방접종할 때 빼고는 나갈 일이 거의 없어서 불편함을 느낄 틈이 없었다. 소아과는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에 하나 있어서 그리로 다니고 있다. 새벽에 응급실 갈 일은 다행히 아직까지 한 번도 없었지만 그 정도로 위급한 상황이라면 아마 구급차를 부르지 않을까. 병원에서 조리원으로 이동할 때와 조리원 퇴소 후 집 갈 때는 바구니 카시트를 대여해서 시부모님 차로 이동했다.


5개월 즈음부터 슬슬 외출을 시작했다. 바깥바람이 쐬고 싶으면 유모차를 끌고 산책 삼아 마트나 도서관으로 향한다.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놀이방 역시 도보로 갈 수 있는 거리에 있다. 바로 옆에 장난감을 대여해 주는 곳도 있어서 장난감 빌릴 겸 종종 다녀온다. 동네를 벗어나고 싶으면 지하철로 한 역 거리에 있는 큰 공원이나 백화점에 간다.


약속이 있거나 양가 부모님댁에 방문하기 위해 조금 더 멀리 나갈 때도 있다. 서쪽으로는 영등포, 남쪽으로는 잠실과 위례, 동쪽으로는 (ITX청춘 타고) 가평까지 가봤다. 필요하면 카시트 택시를 이용한다. 일반 택시보다 요금이 비싸서 10만원 상당의 서울엄마아빠택시 지원금은 금방 소진했지만 짐이 많거나 대중교통으로 가기 힘든 곳에 갈 때 유용해서 내 돈 내고도 몇 번 탔다. 특히 '타다'는 급하게 호출해도 생각보다 잘 잡힌다. 부를 때 카시트 옵션만 잊지 말고 체크하면 된다.


사실 카시트 택시도 초반에만 조금 탔고 이제 웬만한 곳은 지하철로 다니고 있다. 아기도 덜 답답해하고 비용 부담도 없고 부모도 운동되고 일석삼조다. 우리도 처음에는 사람들이 귀엽다고 아기를 만지거나 공기 중 바이러스로 감기 같은 거 옮으면 어떡하나 걱정했는데 이제까지 그런 일은 없었다. 다들 눈으로만 예뻐해 주시고 6개월 즈음 (우리 집에 놀러 온 친구네 아기한테 옮아서) 콧물감기 한 번 가볍게 걸린 것 빼고는 아픈 적도 없다. 한적한 시간대에 이동하고 정 신경 쓰이면 유모차에 방풍 커버 씌우면 된다.


차가 없어서 유일하게 불편을 느끼는 지점이라면 부피 큰 육아용품을 당근해올 수 없다는 것 정도? 그래서 집 근처에 올라온 매물이 있나 보고 없으면 쿨하게 새로 사거나 대여하는 편이다. 솔직히 차를 안 사서 아낀 돈을 생각하면 웬만한 건 전부 새로 사도 그렇게 손해는 아니다. 그래도 정말 너무 혹하는 매물이 있으면 '혹시 만원 더 드릴 테니 차로 실어다 주실 수 있으신지' 한 번 조심스레 물어라도 본다. 하이체어는 그렇게 들였다.


사실 당근하기 불편한 게 꼭 나쁘지만은 않다. 아무리 상태가 좋고 싸게 올라온 물건이라 해도 받아오는 게 워낙 일이다 보니 들이는 데 신중할 수밖에 없다. 우리 집이 아기 키우는 집 치고 상대적으로 짐이 적은 것은 아마 그래서일 것이다. 마음에 든다고 해서 쉽게 살 수 없으니 애초에 당근마켓 앱도 잘 안 들어가게 된다. 달리 말하면 뭐 살 거 없나 기웃거리는 시간을 아낄 수 있다.


그러니 누군가 우리처럼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 차를 사야 하나 고민하고 있다면 꼭 그럴 필요는 없다는 말을 해주고 싶다. 가정마다 처한 상황이 다르기에 무조건 차가 필요 없다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그동안 차 없이도 잘 살았다면 아이가 태어난다고 해서 엄청나게 달라지는 것은 없을 것이다. 차가 있으면 편하겠다 싶은 순간은 가끔 있겠지만 그 가끔을 위해 차를 살 필요가 있는지는 따져볼 필요가 있다.


물론 나중에 어떤 이유에서든 차가 필요해질 수도 있다. 나는 그때 사면 된다고 생각한다. 굳이 그 상황이 닥치기 전에 지레 겁먹고 미리 살 필요가 있을까. '어차피 나중에 살 거면 미리 사는 게 이득이지 않냐'고 누군가 따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차는 늦게 사는 게 분명 이득이다. 적어도 비용 측면에서는 말이다. 나중에 살 집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미리 집을 구해서 다달이 불필요하게 월세를 내지 않는 것처럼 차도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미 차가 있으신 분들, 차를 사기로 결정하신 분들을 깎아내리는 건 절대 아니니 오해는 없었으면 한다. 하지만 아직 사기 전이라면 차를 안 사는 선택지도 있다는 걸 기억했으면 좋겠다. 돈을 좀 더 바짝 모으기 위해서든 아니면 그저 내키지 않아서든, 이유가 뭐든 차를 사지 않을 수 있고, 차 없이도 아이를 키울 수 있다.


그리고 만약 이 글을 보고 있는 분 중에 차 없이 아이를 키우고 계신 분이 있다면 와, 너무 반가워요! 개인적인 경험이나 팁 공유해주시면 너무 감사할 것 같아요. (태연한 척 썼지만 저도 가끔 외로워요, 흑흑.) 뚜벅이 (예비) 부모들, 다들 화이팅입니다!


월,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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