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 '선택'인데 당연해져 버린 것들
"입체초음파를 안 찍었다고? 아니 왜?"
시어머님부터 회사 분들까지, 입체초음파를 안 찍었다고 하면 다들 이런 반응이다. 마치 응당 찍어야 할 것을 안 찍었다는 듯이, 의아해하면서 이유를 물으신다.
사실 나도 임신하면 원래 다 찍는 건 줄 알았다. 주변의 임신한 지인들이 보여주기도 했고 그걸 소품처럼 들고 찍은 만삭사진도 종종 봤기에.
그것이 필수가 아닌 선택이고, 가격도 생각보다 비싸다는 것은 (병원마다 다르지만 보통 10만원 조금 안 된다.) 막상 내 일로 닥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무엇에 가입하든 선택 항목은 전부 거르고 필수 항목만 체크하는 사람으로서, 선택이라고 하니 고민이 되었다. 가격이라도 저렴했으면 모르겠는데 사진 몇 장에 거의 10만원이라고 하니 '정말 필요한가'를 한 번 더 생각해 보게 되었다.
그 질문에 대한 우리 부부의 대답은 '아니오'였다.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우리 부부는 그런 쪽으로 로망이 별로 없어서 '있으면 좋겠지만, 굳이 저 돈 주고...?'라는 생각이 컸다. 그간 찍은 초음파 사진들도 산모 수첩에 대충 끼워 다니는 마당에 솔직히 좀 아깝게 느껴졌다. (그렇다, 둘 다 T다.)
그런 우리도 마지막까지 찍을까 말까 계속 고민했다. 얼굴이 궁금하기도 했고, 기념으로 하나쯤 있어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문제는 찍을 이유가 그게 전부였다는 것이다. 결국 우리는 입체초음파를 찍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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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가장 큰 이유는 돈이었다. 평소에 그렇게까지 절약하는 편은 아니지만 불필요하다고 생각되는 항목에 돈을 쓰는 건 매우 싫어한다. 특히 마케팅적인 요소가 보이면 이상하게 반발심이 든다.
임신을 하면서 접하게 된 출산과 육아의 세계에 내가 극도의 피로감을 느낀 건 아마 그런 이유일 것이다. 기본적으로 소비하라는 메시지가 넘쳐나고, 감성에 호소하든 공포에 호소하든 모두가 (예비) 엄마 아빠에게 무언가를 팔려고 든다.
업체들의 광고와 홍보야 내가 무시하면 그만이지만, 이 분야는 특이하게 되려 소비자들이 필수템이니 추천템이니 하며 정보 공유라는 명목으로 서로 소비를 장려하는 문화가 있다. 그렇게 소비하는 것 자체가 당연시되면서 비판적인 시각을 갖기가 더 힘든 것 같다.
이번에 입체초음파를 찍지 않으면서 가장 크게 느낀 것도 그런 당연시의 문화였다. 분명 선택이라고 하지만 다들 찍다 보니 사실상 통과의례로 자리매김한 듯했고, 찍지 않는다고 하려면 왠지 합당한 해명이 있어야만 할 것 같은 분위기였다.
그래서 입체초음파를 찍지 않는 이들이 있는지, 있다면 이유가 무엇인지 인터넷에 검색도 해봤다. 가격이 비싸서, 태아에게 스트레스를 줄 수 있어서, 태아의 자세에 따라 사진이 잘 안 나올 수도 있어서, 어차피 태어나면 곧 볼 거라서, 둘째라서 등 이유는 다양했지만 그저 동지(?)들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꽤나 위안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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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은 그것이 이 글을 쓴 계기이기도 하다. 임신, 출산, 육아에 있어 소수의 길을 걷고 있는 이들에게 혼자가 아님을 알려주고 또 응원하기 위해. 아직 노선을 정하지 않은 뉴비 분들에게 이런 길도 있다는 걸 전하기 위해. 그리고 앞으로도 이런 상황에 수도 없이 맞닥뜨릴 미래의 나를 다잡기 위해.
나는 기본적으로 아이에게, 특히 아이가 기억도 못 할 영유아 시기에 돈을 많이 쓰고 싶지 않다. 그 돈을 아껴서 불리고 싶고, 나중에 더 필요한 곳에 쓰고 싶다. 이것저것 알아보고 구입하는 과정도, 늘어난 물건을 관리하고 처분하는 과정도 피곤하다. 더 많은 장난감과 사교육을 제공하는 게 아이에게 마냥 좋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환경을 생각하는 마음도 약간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평범한 선택을 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을 부정적으로 보는 건 아니다. 내 선택을 합리화하기 위해 남의 선택을 깎아내릴 생각은 없다. 내가 생각하기에 더 나은 선택이 있더라도 그건 어디까지나 주관적인 판단이다. 나에겐 아깝다고 생각되는 소비가 누군가에게는 더없이 뿌듯한 소비일 수도 있다.
그저 개인의 소신과 사회적 통념이 충돌하는 상황에서 전자를 택하는 이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자기는 두 아이 모두 입체초음파 안 찍었다고 말한 회사 동료의 그 한 마디가 입체초음파를 찍지 않겠다는 우리의 결정에 힘을 실어준 것처럼, 누군가에게는 이 글이 그런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
p.s.
입체초음파 사진을 찍지 않기로 했지만 감사하게도 병원에서 (입체초음파 찍기 너무 좋은 자세라고 아까워하면서) 서비스로 화면에 잠깐 보여주시긴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막판 구입 유도였을 수도 있지만 덕분에 짧게나마 입체초음파 영상을 획득했다. 럭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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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일 년 전에 쓴 글이다. 현재 시점에 맞춰 수정할까 하다가 그냥 손 안 대고 그대로 올리기로 했다. 다 지나고 나서 쿨한 척 쓰는 글보다 확신이 없던 그 시절의 고민과 다짐이 묻어나는 글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지금 다시 생각해도 입체초음파를 찍지 않은 것은 참 잘한 것 같다. 진료볼 때마다 한 뭉텅이씩 받아온 초음파 사진들만 해도 아기가 10개월이 가까워진 지금까지 책상 한 구석에 대충 쌓여 있는데 돈 주고 입체초음파를 찍었다면 아마 볼 때마다 속이 쓰렸을 것이다. 사실 초음파 사진들도 몇 장만 남기고 적당한 시점에 미련 없이 버릴 예정이다. 초음파 앨범을 선물해 주겠다는 친구도 있었지만 귀찮을 것 같아서 사양했는데 그 역시 다시 생각해도 참 잘한 것 같다.
입체초음파 그거 얼마나 한다고, 그 돈 아낀 게 뭐 그리 대수냐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맞다, 솔직히 없어도 사는 데 아무 지장 없는 돈이다. 그때 돈 주고 찍었어도 그렇게까지 두고두고 후회는 안 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나에게 있어 입체초음파를 찍지 않은 일은 중요한 사건이다. 필수가 아닌 '선택'인데도 사회적으로 너무나 당연해져 버린 것들에 의문을 제기하고, 남들은 다 하더라도 내가 원하지 않는 것에 거부 의사를 표시한 최초의 경험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저 글이 내가 저소비 육아(당시에는 '사지 않는 육아')라는 타이틀로 쓰기 시작한 첫 글이기도 하다.
그전까지 임신, 출산, 육아에 대해 잘 모른다는 이유로 다른 이들이 어떻게 하는지 살피고 참고하려고 애쓰던 내가 그 일을 계기로 '나'를 기준으로 생각하기 시작했다. 어차피 내가 따라 하려는 다른 엄마들도 대부분 초보라는 사실을 떠올리면 마음이 조금 편해진다. 하루아침에 갑자기 바뀐 건 아니지만 그때부터 조금씩 대세를 거스를 수 있게 되었다. 한두 번 거스르다 보면 점점 과감해지고 재미있기까지 하다. 나는 그 관점과 태도의 변화가 아낀 10만원보다 훨씬 더 값지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