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삭사진, 성장앨범을 계약하지 않은 이유

사진을 찍는 이유에 대해 생각하다

by 아논

임신하기 전부터 만삭사진의 존재를 알고는 있었다. 다만 그 당시에는 배를 한껏 강조한 그 사진들이 조금은 오글거리게 느껴졌고 안 그래도 통통한 체형인 나는 임신하면 분명 살이 엄청 찔 테니 안 찍고 싶어 할 거라고 막연히 생각했다.


하지만 의외로 나는 임신하고 몸무게가 거의 안 늘었다. 아기와 양수 무게를 빼면 오히려 살이 빠진 셈이다. 초반에 입덧 있을 빼고는 나름 잘 먹고 다닌 편인데 그냥 아이가 가져가는 영양분이 많았는지 아무튼 그랬다. 그래서 임신 후기로 갈수록 턱선도 갸름하고 이목구비도 뚜렷한 게 얼굴만 보면 임신하기 전보다 예뻐졌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 남편은 리즈 시절 미모로 돌아간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 왠지 만삭사진이 찍고 싶을 법도 한데, 이상하게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그 불편한 심기를 들여다보니 표면적으로는 업체들의 상술에 대한 반감과 높은 가격에 대한 부담감이 자리하고 있었고 더 근본적으로는 그 작위성에 대한 회의감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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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 중기쯤에 깨달았던 것 같다. 많은 업체들이 무료로 찍어준다고 홍보하는 만삭사진의 실체를 말이다. 메이크업도 무료로 해주고, 의상도 무료로 대여해 주고, 인건비 비싼 요즘 같은 시대에 무료로 촬영도 해주고 보정도 해준다고?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이거늘, 뭔가 수상했다.


그래서 검색해 보니 역시나, 만삭사진은 성장앨범이라는 더 큰 계약을 유도하기 위한 미끼였다. 촬영은 무료지만 막상 사진을 제대로 받아보기 위해서는 만삭, 뉴본, 50일, 100일, 돌 등을 묶은 100-200만원대 패키지를 구매해야 하는 식이다. 단품 구매도 가능은 하나 가격이 훨씬 높게 책정되어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걸 깨달았을 때는 이미 시간과 에너지를 들여 사진을 찍은 뒤라 아까워서라도 지갑을 열게 된다.


그 점을 인지하고 나니 질문이 바뀌었다. '나는 만삭사진을 찍고 싶은가?'가 아니라 '나는 아이의 성장앨범 패키지를 계약하고 싶은가?'로 말이다. 그리고 그렇게 생각하니 갑자기 찍고 싶은 욕구가 팍 꺾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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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앨범 관련해 검색하다 보면 똑같은 공간, 똑같은 구도에서 똑같은 소품으로 찍은 천편일률적인 사진이라 싫다는 의견이 가끔 보이는데, 나도 어느 정도 공감하긴 한다. 심지어 "그런 공장형 사진이 싫어서 여기로 계약했는데 만족해요~"라고 하면서 올리는 사진들도 솔직히 내 눈에는 거기서 거기 같아 보인다.


다만 내 경우 그게 성장앨범이 꺼려지는 본질적인 이유는 아닌 것 같다. 그보다는 뭐랄까, 그냥 그 인위적인 환경에서 찍은 사진들이 왠지 이질적으로 느껴져서 그런 것 같다.


사진의 퀄리티를 문제 삼는 것은 아니다. 나도 결혼할 때 스드메 다 해봤기 때문에 너무도 잘 안다. 전문가의 손길이 닿으면 다르다는 것을. 메이크업, 배경, 조명, 구도, 자세와 표정 코칭, 후보정 등 모든 게 갖춰져 있다 보니 셀프로 찍은 사진에 비해 완성도가 확연히 높다.


그런데 이상하게 정감이 가지 않는다. 비싸게 주고 찍은 사진이고 사진만 놓고 보면 진짜 잘 찍었는데, 어째서인지 다시 보고 싶다는 생각이 별로 들지 않는다. 그러다 최근에 문득 그 이유를 깨달았다. 거기에는 '아, 저거 찍을 때 진짜 고생했지' 외에 별다른 추억이 담겨 있지 않아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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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사진에는 그것을 찍은 장소, 상황, 관련 에피소드 등을 떠올리며 추억 여행을 떠나게 만드는 힘이 있고, 사람들도 그걸 알기에 간직하고 싶은 특별한 순간을 사진으로 남기고 싶어 한다. 그런데 업체를 통해 찍은 사진은 대개 상대적으로 추억할 거리가 빈약하다. 마치 흠잡을 데 없이 완벽하지만 향기가 없는 조화 같다.


사실 그럴 수밖에 없다. 뭔가를 주체적으로 느끼고 생각하고 행동한 게 아니라 객체로서 작가가 시키는 대로 자세를 취하고 표정을 지었을 뿐이니까. 웃어도 정말 기뻐서 웃는 게 아니라 사진을 찍어야 하니까 웃는 거고 아무리 예쁜 풍경도 그저 사진을 위한 배경일 뿐 그것을 감상하고 만끽할 여유는 없다.


반면 여행지에서 찍은 사진이나 일상의 특별한 순간을 포착한 사진은 아무리 핸드폰으로 어설프게 찍은 사진이라고 해도 그 특유의 날 것 같은 생생함이 있다. 어쩌면 사진 자체는 그리 잘 나오지 않아서 SNS에 올리기에는 조금 민망할 수도 있지만 적어도 당사자에게는 더 풍성한 추억거리와 이야깃거리가 되어준다.


아무래도 나는 그런 사진을 더 좋아하는 것 같다. 전문 업체에서 제작한 세련된 화보집 같은 앨범보다 어릴 때 엄마 아빠가 만들어준 투박한 앨범에 있을 법한 사진,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야, 너 이때 기억나?"라는 말이 저절로 나오는 사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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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부모님 댁에 가면 포토 프린터가 있어 각자의 핸드폰에 저장된 사진 중에서 마음에 드는 걸 주기적으로 인화해 식탁 옆 벽에 핀으로 꽂아 놓는데, 그중에 각 잡고 찍은 사진은 거의 없다. 직접 찍은 반려견들 사진, 여행 가서 서로 찍어준 사진이나 가족 셀카 같은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걸 보며 느꼈다. 사진의 객관적인 완성도와 그 사진이 내게 갖는 의미는 별개라는 것을.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진짜 우리 가족만 본다면 나는 어떤 사진을 간직하고 싶지? 만약 가족 중 누군가 먼저 떠나서 그가 그리워지면 나는 그의 어떤 사진을 다시 꺼내보고 싶지? 나는 그때 집어 드는 사진이 진짜 의미 있는 사진이라고 생각한다.


참고로 스튜디오에서 찍었다고 해서 무조건 싫은 건 아니다. 부모님 댁에도 그런 사진이 몇 개 걸려 있고 나도 그중 하나를 지갑에 넣고 다닌다. 19년 동안 우리와 함께하다 지금은 무지개 다리를 건넌 강아지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같이 찍은 가족사진이 바로 그것이다.


개가 협조를 잘 안 해줘서 애도 많이 먹고 웃기도 많이 웃어서였을까, 사진관에서 찍어준 조금은 뻔한 스타일임에도 그 사진들은 유독 애착이 가고 그날의 경험도 생생하고 소중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무탈했던 패키지 여행보다 개고생한 자유여행이 더 기억에 남는 것 같은 원리려나. 아무튼 너무 늦기 전에 찍어서 다행스럽고 그렇게 일부러 마련한 자리가 아니었으면 한 장에 담기 힘들었을 모습이라 더 귀하게 느껴진다.


즉, 업체에서 찍어준 사진보다 직접 찍은 사진이 무조건 우월하다는 주장을 펼치는 게 아니다. 사진에 돈 쓰는 게 무조건 아깝다는 것도 아니다. 때로는 외주를 잘 활용하는 것이 현명할 때도 있다. 다만 어떤 사진의 가치가 거기에 들인 비용이나 업체의 실력과 특색에 반드시 비례하진 않는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적어도 그 점을 인지하고 있다면 '우리도 찍어야 하나' 하는 막연한 조급함을 내려놓고 내가 진짜 원하는 게 무엇인지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p.s.

'그래서 난 아이 앨범은 무조건 직접 만들어주겠어!' 이런 건 아닌데 적어도 만삭사진이나 성장앨범은 패키지로 계약하지 않을 생각이다. 그 대신 전부터 한 번쯤 찍어보고 싶었던 네컷사진을 만삭사진 겸 찍어볼 예정이다. 왠지 재밌을 것 같기도 하고 지금 턱선이 조금이나마 날렵할 때 사진으로 남겨 놓기 위해...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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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도 일 년 전,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 쓴 글이다. 여전히 성장앨범을 계약하지 않은 것에 대한 후회는 없다. 사실 그런 아쉬움을 느낄 틈이 별로 없다. 나의 현재는 대부분 아이의 현재를 들여다보느라 바쁘다. 어쩌다가 사진첩을 뒤적이다 몇 달 전에 찍은 사진을 보고 '와, 이때 이랬구나' 하고 잠시 감상에 젖었다가 다시 저만치 기어가는 아기를 부지런히 쫓아가야 한다.


일단 글에 적은 대로 만삭사진을 네컷사진으로 찍었다. 결과물도 나름 만족스럽고 그 경험도 꽤나 재밌어서 아기 데리고도 몇 번 가서 찍었다. 주어진 짧은 시간 내에 우왕좌왕 자세를 취하고 어설픈 결과물 중에 그나마 괜찮은 것들을 고르고 나면 최종 결과물은 생각보다 봐줄 만하다. 사진이 찍히기 전 10초 가량을 동영상으로 받아볼 수 있다는 점도 좋다. 그 허둥지둥하는 모습이 은근히 귀엽다.


50일 사진도 집에서 셀프로 찍었다. 백일상도 용품 대여해서 집에서 셀프로 차렸다. 재미는 있었지만 솔직히 번거롭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어차피 업체를 검색하고, 후기 찾아가며 비교하고, 마침내 한 군데를 선정하고, 연락해서 일정을 잡고, 또 거기까지 왔다 갔다 하는 것도 피곤한 일이기는 마찬가지였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처음부터 성장앨범을 계약했다면 의사결정의 피로도는 낮았겠지만 '(이 가격에) 이게 과연 최선이었을까' 하는 의구심이 마음 한편에 계속 남아 있었을 것 같다.


그리고 성장앨범을 계약하지 않았다고 해서 사진이 없는 것도 아니다. 여느 부모들처럼 내 핸드폰에도 아기 사진과 동영상이 한가득이다. 대부분 집에서 찍은, 서너 벌의 홈웨어 중 하나를 입고 있는 비슷비슷한 사진들이라 남들 눈에는 비슷해 보일지 몰라도 내 눈에는 아이의 미세하게 다른 표정들, 미세하게 성장한 모습들이 보인다. 외출했을 때의 특별한 순간들 역시 사진으로 남기지만 역시 내가 나중에 가장 기억하고 싶은 모습은 오래 보아온 이런 익숙한 모습들이라는 은은한 확신 같은 게 든다.


이 모든 사진들에서 내가 만족감을 느끼는 건 역설적으로 '가격'에 기인한다. 내가 위에서 언급한 사진들의 공통점이 있다면 바로 부담 없는 가격이다. 네컷사진은 한 장에 5천원, 망해서 다시 찍어야 한다고 해도 전혀 부담스럽지 않은 금액이다. 50일 사진을 위한 소품과 의상 대여는 1-2만원 정도로 기억한다. 백일상 대여는 조금 비싸서 10만원 조금 넘게 들었던 것 같지만 순수하게 사진을 위해서라기보다 양가 부모님과 축하하는 자리를 마련하기 위한 비용이었음을 생각하면 나쁘지 않다. 그리고 나와 남편이 직접 찍은 일상 사진/영상은 사실상 0원.


반대로 사진에 좀 더 돈을 썼다면 어땠을까 상상해 본다. 사진작가 앞에서 아기가 잘 안 웃으면 본전 생각이 나서 마음이 조급해졌을 것이다. 사진이 잘 나오면 당연하게 생각하고, 기대에 못 미치는 부분이 있으면 실망했을 것이다. 내가 특별히 부정적인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그냥 사람 마음이 그렇다. 적어도 '나'라는 사람은 그렇다. 돈을 쓰면 욕심이 생길 수밖에 없다. 돈을 많이 쓸수록 기대치 역시 높아진다. 다시 말해 스트레스를 받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내가 사진의 퀄리티에 관대하고 너그러울 수 있는 건 내가 작은 것에도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이라서가 아니다. 투자한 게 적어서다. 업체 알아보는 데 쏟은 에너지든 실질적으로 지불한 돈이든 말이다. 애초에 기대가 크지 않으니 결과가 어떻든 더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 '직접 찍은, 우리의 추억이 담긴 사진이니까 조금 어설퍼도 특별하고 좋다'고 생각할 수 있는 여유도 사실 거기에서 나온다. 1만원 내고 마음 편하게 80점짜리 결과물을 받아보는 것과 100만원 내고 전전긍긍한 끝에 97점짜리 결과물을 받아보는 것의 차이 같은 거다. 물론 선택은 개인의 몫이지만 나는 전자가 더 잘 맞는 사람일 뿐이다.


'저소비 육아'라는 방향성도 사실 그런 맥락에서 나온 결정이다. 나는 꼼꼼하고 집요한 성격이다. 내 욕심과 기대 때문에 고통받기 쉬운 성격이라는 뜻이다. 남들이 하듯 아이를 위해 시간과 돈과 에너지를 쏟아 부으면 아이를 대할 때 결코 쿨할 수 없을 것이다. 인간이 원래 그렇지만 나는 그중에서도 특히나 옹졸한 인간이니까. 분명 아이에게 어떤 식으로든 보상을 바라게 될 것이고 그 기대는 아이에게 알게 모르게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다. 안 봐도 비디오다. 그래서 애초에 첫단추를 낄 때 과감히 핸들을 꺾어서 다른 노선을 가기로 한 것이다. 시간과 돈과 에너지 중에서 돈이라도 줄여보기로 말이다. 그렇게 아이와의 평화로운, 장기적인 공생을 꿈꾼다.

월,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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