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임부복 덜 사는 방법
나는 임신했을 당시 임산부를 위해 나온 용품을 거의 안 산 편이지만 필수템이라고 해서 물려받거나 선물받은 것들도 생각보다 잘 쓰지 않았다. 그 기억을 떠올리며 그때로 다시 돌아간다면 혹은 둘째가 생긴다면 굳이 안 살 것 같은 물건들을 기록해 본다. 물론 이번 편은 특히나,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임을 미리 밝혀 둔다.
사실상 수분크림이나 보습로션과 성분이 거의 비슷하고, 아무리 열심히 발라도 틀 사람은 다 튼다는 사실을 익히 알고 있었기에 '절대 안 사야지' 생각했던 품목인데 선물 받아서 어쩔 수 없이 쓰게 되었다.
일주일에 1-2번쯤 생각날 때마다 남편한테 발라달라고 했는데, 마사지 받는 느낌도 괜찮았고 남편이 태아와 교감하는 모습도 보기 좋았지만 솔직히 화장대에 굴러다니는 다른 수분크림이나 로션으로 해도 똑같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실제로 나는 출산할 때까지 튼살이 전혀 생기지 않았는데 솔직히 이는 튼살크림 덕이라기보다 유전자빨이다. 엄마가 애를 셋 낳으실 동안 아무것도 안 발랐음에도 튼살이 전혀 안 생기셨는데 감사하게도 내가 그 체질을 그대로 물려받은 것 같다.
그리고 튼살크림은 용량이 커서 그런지 내가 너무 가끔만 발라서 그런지 결국 사용기한 내로 다 쓰지 못했다. 바디로션이나 핸드크림 대용으로라도 써볼까 하고 좀 더 갖고 있었지만 나는 원래 바디로션도 핸드크림도 잘 안 바르는 사람이라 결국 버리게 되었다.
만약 내가 지금 다시 임신을 한다면, 누군가 튼살크림을 선물하려고 할 때 처음부터 정중히 사양하고 필요한 다른 아기 용품으로 받을 것 같다. 어쩌다 보니 이미 수중에 들어왔다면 개봉하지 않고 바로 당근하고, 튼살 안 생기는 좋은 유전자를 물려준 엄마에게 감사함을 느끼며 그 돈으로 맛있는 거나 사 먹을 것이다.
친구가 물려줘서 쓰긴 했지만 임산부 필수템이라 불리는 것에 비해 나한테는 '굳이...?' 싶었던 물건이다. 처음 물려받았을 당시에는 내가 아직 중기라서 그런 줄 알았는데 출산 직전까지도 적어도 원래의 목적으로는 거의 쓰이지 않았다.
평소에 똑바로 누워서 자는 편인데 임신 후에도 계속 그러고 자서 쓸 일이 없었다. 옆으로 누워서 자려고 해도 일어나 보면 어느새 천장을 보고 있었다. 옆으로 잔 건 출산 완전 임박해서나 몇 번 그랬다. 몸무게도 별로 안 늘고 붓기도 거의 없어서인지 허리 통증도 딱히 없었다. 아침에 다리가 살짝 저린 정도? 그러다 보니 침대에서 핸드폰 할 때 등받침처럼 쓰거나 발치에 두고 발 올리는 용도로 더 많이 썼다.
물론 내가 엄청 운이 좋은 케이스라는 건 알고 있다. 바디필로우를 물려준 친구도 신기해 했다.
친구: 잘 때 허리 안 아파?
나: 응.
친구: 자다가 다리에 쥐 난 적 없어?
나: 응.
친구: 똑바로 누우면 불편하지 않아?
나: 딱히...?
친구: 와, 재수 없어. 복 받은 체질이네. 둘은 더 낳아라.
사실 이 바디필로우의 최대 수혜자는 남편이다. 나는 원래 자다가 남편을 걷어차는 버릇이 있는데 바디필로우의 두 기둥 사이에 가두리 양식장처럼 얌전히 갇혀 자면 남편을 상대적으로 덜 찬다고 한다. 가끔 잠결에 바디필로우를 걷어차서 바닥에 떨어뜨리기도 하지만 어쨌든 바디필로우와 몸씨름하느라 힘이 빠져서인지 남편을 가격하는 횟수와 강도는 줄어들었다는 것이 피해자의 증언이다.
아무튼 그래서 바디필로우의 경우 불필요하다기보다 필요해지면 그때 사도 늦지 않을 것 같다. 어쩌면 당신도 복 받은 체질일 수도 있고 미리 사면 침대만 좁을 뿐이다. 아, 물론 나처럼 남편을 걷어차는 잠버릇이 있다면 배우자 복지 차원에서 조금 일찍 들이는 것도 나쁘진 않다.
이건 임신 초기에 친구가 선물해 줄까 물어봤던 아이템인데 사진을 앨범에 정리하기 귀찮기도 하고 나중에 안 볼 것 같은데 처치하기는 곤란할 것 같아서 정중히 사양했다.
일단 귀찮아할 것 같다는 나의 예상은 적중했다. 산모 수첩에 초음파 사진 붙이는 것도 맨 처음 받은 사진 딱 한 장만 붙였는데 (심지어 그것도 내가 아니라 남편이 붙였다.) 초음파 앨범의 운명은 안 봐도 뻔하다. 볼 때마다 죄책감만 느끼다가 결국 당근했겠지.
그래서 그간 받은 초음파 사진들은 어떻게 보관하고 있냐고? 책상 한편에 대충 쌓여 있다. 어차피 나중에 몇 장만 추리고 대부분 미련 없이 처분할 예정이라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있다. 정 보고 싶으면 동영상도 있으니 굳이 실물로 다 보관할 필요가 있나 싶다.
고민이 될 때면 지금의 나를 기준으로 떠올려보곤 한다. 나는 초음파 앨범이 따로 없는데, 없어서 아쉬운가? 나는 내 초음파 사진만 모아놓은 앨범을 보고 싶긴 한가? 두어 장이면 모를까 그렇게 많이 보고싶진 않을 것 같다. 부모의 입장에서 생각해 봐도, 태어난 후의 아이 사진을 더 자주 볼 것 같지 초음파 사진은 잘 모르겠다.
사실 나는 기록(사진 포함)도 너무 많으면 의미가 희석된다고 생각한다. 각도만 미세하게 다른 비슷한 사진 수십 장을 넘기는 것은 사진 셀렉 노동이지 추억 여행이 아니다. 그래서 핸드폰 사진첩도 주기적으로 정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이건 나도 잘 지키지 못하고 있는 부분이라 할 말이 없지만 그래도 유의미한 자료일수록 정리와 큐레이팅이 필요하다는 믿음에는 변함이 없다. 이는 초음파 사진/동영상에도 동일하게 적용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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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 보니 나는 임부복도 거의 안 샀다. 원래 헐렁하고 편한 옷을 좋아해서 굳이 임부복을 살 필요 없었던 것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미니멀한 옷장을 지향하고 옷의 개수를 늘리는 걸 좋아하지 않아서 임신 초기부터 '어떻게 하면 임부복을 최대한 안/덜 살 수 있을까' 고민한 것도 한몫했다.
그래서 혹시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는 분들을 위해 개인적인 경험을 풀어볼까 한다. 물론 임산부마다 배가 나오는 시기와 정도, 기존에 보유한 옷과 선호하는 패션, 업무 특성 등에 따라 적용할 수 없는 부분도 있겠지만 그냥 이런 방법도 있다 정도로 받아들이시길.
내가 임신하고 나서 구입한 옷 중에 명확하게 임부복으로 분류되는 아이템은 단 2개, 임부 레깅스 2벌뿐이다. 사실 조금만 부지런했으면 1벌로도 충분히 지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저녁에 스피드워시로 세탁기 몇 분만 돌리면 건조기 안 돌려도 다음날이면 뽀송하게 말라 있어 같은 레깅스를 며칠 연달아서 입기도 했다.
일단 임부복 레깅스 자체는 매우 추천하는 아이템이다. 왜냐하면 후기로 갈수록 생각보다 대체재가 없기 때문이다. 집에 사이즈 넉넉한 레깅스가 있어서 그걸 입으면 되지 않을까 했는데 아무리 그래도 배가 조이는 느낌이 있어서 불편하더라. 완전 초기면 모를까 배가 어느 정도 나온 중기부터는 임부 레깅스가 확실히 편하다.
활용도도 높은 편이다. 나는 일상복으로 입었지만 헬스나 필라테스 등 운동용으로도 입을 수 있고 특히 검은색 레깅스의 경우 긴 상의에 매치해 하의로도, 치마나 원피스에 매치해 스타킹 대용으로도 입을 수 있다. 그래서 봄가을이나 겨울에 만삭을 맞이하는 분들이라면 하나쯤 구비해도 좋을 듯하다.
자주 입을 것 같다면 운동복 브랜드에서 나온 임부 레깅스를 추천한다. 가격대는 조금 더 있지만 내구성이 좋아서 늘어난다거나 보풀이 생긴다거나 하는 현상이 적고, 그래서 중고로 사도 상태가 괜찮다. 나 역시 두 벌 다 중고로 구입했다.
가을 출산 예정이라면 일반 레깅스로 어찌어찌 버텼겠지만 나는 한겨울에 출산 예정인 임산부였다. 임산부용 기모 레깅스를 추가로 사야 하나 고민하고 있던 차에 신박한 대안을 발견했다.
그것은 바로 내복. 가을쯤에 부모님댁에 갔을 때 엄마가 나더러 추워 보인다면서 '이거라도 입을래?' 하면서 검은색 내복 하의를 꺼내주셨는데 아무리 봐도 (조금 덜 쫀쫀한) 레깅스 같아 보였다. 기존 임부 레깅스 위에 덧입으니 신축성도 좋고 보온성도 딱이었다.
일반 내복이 후기 임산부한테도 이렇게 편안하게 맞을 줄은 몰랐는데 의외의 발견이었다. 하긴 생각해 보면 배가 엄청 나온 우리 아빠도 겨울에 내복 입고 다니시는데 그런 사람도 맞아야 하니까 이렇게 만든 거겠지? 택이 없어서 어디껀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추울 때는 그러고 돌아다녔다. 남성용 히트텍 하의도 아마 비슷할 듯하니 혹시 남편 옷장에 있다면 한번 시착해 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일반적으로 기존에 있는 오버핏 옷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이 임부복 구매를 줄이는 데 가장 도움이 된다. 특히 나는 원래도 오버핏을 선호하는 취향이라 더 유리하긴 했다. 원피스도 끈이나 벨트로 허리를 묶긴 하지만 품 자체는 넉넉한 게 많았고 상의도 대부분 오버핏, 특히 맨투맨은 아예 115 사이즈를 사서 미니원피스처럼 길게 입곤 해서 임부복을 따로 살 필요가 전혀 없었다.
남편이 본인보다 체구가 크다는 가정 하에 남편 옷을 빌려 입는 것도 임부복 구매를 줄일 수 있는 훌륭한 선택지다. 사실 나는 임신하기 전부터 남편 옷을 자주 뺏, 아니 빌려 입곤 했는데 임신 후에는 더 당당하게 입있다. 티셔츠, 맨투맨, 남방, 가디건, 아우터 등 내가 입었을 때 오버핏으로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옷이라면 가리지 않고 믹스매치해 입었는데 그러다 보니 선택의 폭이 넓어져 굳이 임부복을 살 필요성을 느끼지 않은 것 같다.
하의에 대한 언급이 적은 것은 내가 평소에 레깅스 외에는 바지를 거의 안 입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나도 집앞에 잠깐 나갈 때 대충 걸치는 츄리닝 바지는 있다. 허리 신축성이 좋아서 배가 나와도 입을 수는 있는데 걸을수록 자꾸 흘려내리는 게 문제였다.
그래서 이번에도 배 나온 우리 아빠를 보고 영감(?)을 얻어 바지 상단을 훌훌 말아 허리가 아닌 골반에 걸쳐 입었다. (아빠가 바지를 그렇게 입으시진 않는데 바지를 걸치는 위치는 딱 거기다.) 그랬더니 흘러내리지도 바닥에 끌리지도 않고 딱 좋더라. 그 위에 힙을 덮는 긴 상의를 걸치니 티도 안 난다. 맨날 이렇게 입고 다니라는 건 아니지만 진짜 잠깐 막 입는 용도라면 이런 방법도 있다는 거.
보통 임신하면 가슴과 배가 커지면서 기존 브라와 팬티가 불편해져 교체하게 되는데 나는 원래부터 극도로 편한 (대신 디자인은 조금 포기한) 속옷을 주로 입어서 그런지 출산 직전까지 속옷 교체의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브런치에 구체적인 상품명을 적기는 좀 뭣하고(정 궁금하면 블로그에 적어두었으니 거기서 보시길), 아무튼 굳이 임산부 전용 속옷이 아니더라도 그런 편하고 조이지 않는 속옷을 사면 임신/출산과 무관하게 쭉 입을 수 있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