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히 '노'라고 얘기를 했어야 했다.
첫째가 한국나이로 다섯 살, 둘째가 세 살이 되었을 때 아버님은 명예퇴직을 하셨다. 일평생 평교사로 살아오셨는데 아직 예순이 안된 젊은 나이셨지만 왜인지 퇴직을 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면서 두 시간 거리인 우리가 있는 지역으로 오고 싶으시다고 했다. 같은 아파트에 살며 아이들을 돌봐주고 싶다고.
당시 우리 집의 상황은 내가 둘째를 낳고 복직한 뒤 저녁에 봐주시는 이모님을 구한 상황이었다. 평일엔 4시간쯤 봐주셨고, 우리 둘 중 한 명이 어린이집에서 아이들을 하원시키면(이모님은 뚜벅이셨다) 이모님이 4시쯤 출근하셔서 집정리를 하고 저녁준비를 하고 계셨다가 아이들 저녁을 먹이고, 목욕을 시켜주고 퇴근하는 식이었다. 처음에는 혼자 둘을 보는 게 힘드실까 봐 우리 둘 중 한 명이 번갈아가며 퇴근 후 옆에서 도왔는데, 이모님이 그냥 혼자 보는 게 편하다고 하셔서 둘 다 회사에서 밥을 먹고 8시에 맞춰 들어갔다. 때때로 둘 다 야근을 해야 할 상황이 되면 9시까지는 봐주시기도 했다. 우리 둘째를 특히 예뻐하셔서 우리 집에서 퇴직(?)할 의사를 넌지시 내비치시기도 했다. 58년생 개띠셨던 이모님은 오전에 일하던 집을 그만두고 우리 집에 올인하신 상황이었다.
거기에 우리 언니가 근처에 살고 있었다. 아직 미혼이고 조카사랑이 각별한 언니는 9시 넘어까지 우리가 집에 가지 못하면 자기가 종종 봐주곤 했다. 언니가 직장에 오전 근무만 했기에 도와줄 에너지가 있어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무튼 이렇게 내 나름대로는 세팅을 해놓은 상태였는데, 갑자기 오겠다고 하시는 거다. 그러면서 한 달 정도의 시간을 줄 테니 생각해 보라고 하셨다. ‘너희가 필요하면’이라는 단서를 붙이면서.
나는 한 달이 다 되어가도록 결심하지 못했다. 주변에서 만류하기도 했거니와, 나도 알쏭달쏭했기 때문이다.
세 자매를 키우며 시부모님과 같이 살던 직장동료는, 가까워지는 건 쉽지만 조금이라도 멀어지는 건 어렵다며 주의를 주었다. 우리 집에 오시는 이모님은 일자리를 잃게 되는 데 난색을 표하시며 ㅇㅇ엄마(나)를 위해서라도 거절하는 게 좋지 않겠냐고 말씀하셨다. 친정 부모님은 시부모님이 젊고 도와주시니 너무 다행이라며 나의 복이라고 하셨다.
나는 결국 오시는 걸 허락했다. 하지만 완전히 내켜서 한 것은 아니었다. 내가 조금 불편하더라도 참자는 마음이었다. 어린이집에서 7시 가까이 까지 있는 아이들이 좀 더 일찍 하원하여 원하는 것을 배우고, 이모님이 해주시는 만두만 든 멀건 만둣국 대신 시어머니가 해주시는 더 영양가 있는 저녁을 먹을 수 있을 거라 기대했다. 남편도 더 맘 편하게 직장생활을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무엇보다 거절했을 때 관계가 안 좋아질 것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난 역시. 이번에도. 내가 조금 불편하지만 모두가 편한 길을 선택했다.
그러나 내가 불편하면 모두가 편할 수가 없는 것이었다.
원래 그런 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