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시간을 확보하는 것은 나의 몫

고독함과 충만함이 공존하는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고 싶다

by anonymous H

어렸을 때부터 혼자 있는 것을 두려워했다.

지금의 나는 혼자 있는 시간이 고독하고도 충만하다.



일 년에 한 번씩 재미로 사주를 보러 간다. 사주를 신봉하는 사람도 아니지만 신년을 기념하는 의미로 간다. 사주를 보러 가면 나는 ‘수’ 기운이 많아 차분하지만 걱정이 많고 외로움이 많다고 하였다. 대부분 흘려듣고 그다음 날 까먹기는 하지만 이 말은 내 성향을 완벽히 대변하는 말이기에 그분의 말씀이 아직 내 기억 속에 남아있다.


그렇다면 내가 너무 예민하게 느끼는 이 외로운 기분은 선천적으로 갖고 태어난 걸까?

물론 내가 ‘수’ 기운이 많다는 것이 위 질문의 1/4 정도는 영향이 있을 수 있겠지만 난 이러한 성향은 대부분 내가 살아온 환경에 의해 만들어진다고 생각한다. 사회적 편견에 동조하고 싶지는 않지만 첫째로서의 책임감으로 나는 내 문제를 그 누구에게도 털어놓는 걸 잘하지 못했다. 물론 나도 힘들 때 말하고 싶고 부모님 앞에서 펑펑 울고 싶었던 적도 있지만 나는 막상 그러고 싶은 날에도 내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지 못하고 묵혀두었다.


초등학교 때 미국에 갔을 때는 물론 엄마와 동생이랑 같이 있었지만 아빠가 같이 없었기에 내가 느끼는 공허함이 생각보다 컸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 보면 엄마와 아빠가 나에게 채워줄 수 있는 부분은 달랐기에 그렇게 느끼지 않았을까 싶다. 그리고 한국에 돌아와서 다시 학교를 다니고 대학교 때 다시 나는 미국으로 유학을 갔다. 이때 나는 혼자 미국에 가서 가족은 내 곁에 있지 않았지만 같이 대학교에 다니는 한국 유학생 친구들이 많아 소속감을 느끼며 학교에 다닐 수 있었다. 물론 조금의 후회는 있다. 나는 유학생 친구들과 주로 어울렸기에 미국 대학생활을 100% 경험할 수 없었다고 생각한다. 갑자기 글이 산으로 가지만 내 동생한테는 항상 어떠한 그룹에 소속되는 것은 편안함을 주지만 우물 안 개구리가 될 수도 있는 환경을 조성하기에 조금 더 다양한 친구들과 관계를 조성하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 같다고 말해주었다. 당연히 판단은 자기 몫이니 그 이상 말하지는 않았다. 다시 원래 얘기로 돌아가자면 내 미국 유학생활은 그렇게 수월하진 않았다. 동아리 활동을 열심히 하고 친구들 & 선배들과 술자리도 가지며 재밌게 놀기도 하고 남자친구도 있었지만 나는 외로웠다. 혼자 있을 때 여전히 불안했고 그러기에 혼자 있는 시간을 기피했다. 이렇게 기피를 하는 상황 속에서 혼자 있는 시간이 오면 더 힘들었다. 그때는 막상 내가 왜 이런 기분을 느끼는지 나 자신과 깊게 대화한 적이 없는 것 같다.


나도 정확히 어떤 계기로 내가 점차 바뀌기 시작한 지 정확히 모르겠다. 하지만 유럽에서 석사를 하기 시작한 시기부터 나는 점차 '혼자 있는 시간 = 외로움'이 아닌 '혼자 있는 시간 = 고독하고도 충만하게 나 자신과 함께 하는 소중한 시간'이라는 것을 깨닫고 있다. 조금 더 성숙해진 시기에 간 대학원에서는 다양한 유럽 국가에서 온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고 미국에서의 대학 생활 때보다 전공의 특성 때문인지는 몰라도 더욱더 개성 넘치는 친구들이 뭉친 학교 생활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나도 어떤 면에서는 조금 더 자유로웠고 꼭 어떤 그룹에 소속되어야 한다는 압박감도 내려놓게 되었다. 이렇게 자연스럽게 내 환경이 바뀌면서 내 생각이 바뀌게 된 걸까..? 아니면 나이가 들면서 조금은 더 성숙해지면서 그런 걸까? 나는 내 혼자만의 시간이 와도 무섭기보다는 내가 좋아하는 걸어서 20분 거리의 카페에서 플랫화이트를 테이크아웃해서 산책을 할 생각과 그룹 운동 수업을 가서 땀을 낼 생각에 행복했다. 가고 싶은 새로운 전시가 열 때는 더욱더 나 혼자만의 시간이 기다려지기도 했다. 그렇다고 내가 혼자만의 시간만 보낸 것은 아니다. 나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시간과 내 혼자만의 시간의 밸런스가 잘 이루어지면 내가 그 두 상황을 더 행복하고 자유롭게 보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면서 나에 대해 더 잘 알게 되고 내 정체성이 조금씩 더 확립되면서 남들과 같이 있을 때도 나를 잃지 않는 모습이 너무 좋다. 한국에 돌아와서 사회생활을 시작하며 혼자 있는 시간이 자연스럽게 줄어들었지만 이렇게 글을 쓰며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지금을 우선 즐기고 앞으로의 시간 또한 내가 만들어갈걸 알기에 행복한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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