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아라, 팔고 또 팔아라
생각해보면 나는 글로 먹고 살아왔다. 반평생 정도 됐을 것이다. 이 회사 저 회사에 매문(賣文)을 했다. 입에 풀칠하기 위해서였다.
1.
글을 팔아 먹고 사는 직업. 매문이라고 해서 고깝게 볼 필요는 없다. 글솜씨가 뛰어나다는 뜻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저 수요자가 필요로 할 때 그 필요한 글을 써주는 것이 바로 매문이다.
우리 모두는 날마다 크고 작은 매문을 한다. 신성함은 간데없다. 후배가 초벌 작업해서 올려두는 기사, 사환이 책상에 올려두는 휴가 기획안, 선배가 부장에게 올리는 보고서, 동기가 제출하는 기획안도 전부 매문의 일종이다. 그들과 내가 달랐던 점은 하나다. 단지 내 일이 매문'만'을 전문으로 하는 직종이었을 뿐이다. 그땐 보고서부터 리포트, 자기소개서, 광고문, 기사까지 아무 글이나 닥치는 대로 대신 써 주었다. 영혼을 지옥 밑바닥까지 박박 긁어모아 써준 글들이다. 대가는 돈이었다. 많은, 아주 많은.
2.
아주 옛날부터, 굳이 따지자면 글을 잘 쓰고 싶어 했던 건 중학생 때부터다. 독후감을 잘 쓰고 싶었던 게 계기였던 것 같다. 어색한, 과거분사 따위의 말투로 말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아직 글을 잘 쓰지 못하기 때문이다. 잘 쓴 글이란 문장의 자간, 글자의 크고 작음, 장평의 좁고 넓음, 폰트의 개성과 세련미, 문단의 간격 같은 외형의 분칠과는 상관없이 독자의 시선을 예리하게 잡아챈다.
늘 욕망했다. 내 글이, 마상(馬上)의 탈라스 부리바가 굳게 쥐어잡은 곡도마냥 사람의 시선을 끌길 원했다. 매일같이 더 자극적인 소재를 찾아 글을 썼다. 굶주린 들개처럼 밤마다 거리를 헤매었다.
중학생은 자신의 얼굴을 누구보다 새하얗게 화장하고, 새색시는 콩나물국을 끓일 때 다시다 맛밖에 안 나도록 조미료를 친다. 내 실수도 그때였다. 하자(malpractice)다. 제보자에게 속아서다. 극소수지만 알 만한 사람들은 아는 실수였다. 조직의 누구도 내 탓을 하지 않았지만, 그 순간 스스로 알았다. 세상을 상대로 사기를 쳤다. 치열하게 걸러냈어야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하자가 있는 상품을 판 매도인은 책임을 진다. 파는 글의 가치를 잃었다고 생각했다. 당분간 매문을 그만두기로 했다. 일 년인가 지나, 회사를 떠났다. 그저 쉬고 싶었다.
3.
그 뒤로 매문을 사오 년 정도 쉰 것 같다. 도둑놈이 제 버릇 못 준다고, 최근에 다시 매문을 시작했다. 누군가를 부양한다는 건 혼자일 때보다 열세 배쯤은 어깨가 무거워지는 얘기다. 변명거리라는 걸 안다. 하지만 이번엔. 다른 이름으로, 다른 직업에서, 다른 모습으로, 더 이상 실수를 하지 않겠다는 자세로.
이 글은 아무도 모르는, 자기반성과도 같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