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으로 합법적 휴가를 쓸 수 있어
1.
'아… 내일 아침에 아프지 않게 사고 나서 좀 누워 있고 싶다.'
나만 이런 생각 해본 건 아니라고 믿는다. 물론 부모님께는 말 못 할 생각이다만,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해보지 않을까 그거. 그런 생각을 하다가 결국 오늘 벌을 받은 모양이다. 약속이 있어 서울 교대역 인근 태국 음식점인 쿤쏨차이에 가던 길이었다. 내리막길을 급히 내려가다가 그만 오른쪽 발목을 접질려 버렸다.
마침 무거운 가방을 메고 있었는데, 체중이 거기 더해지면서 오른발목이 약 90도 안쪽으로 꺾이면서 정말 제대로 충격이 가해졌다. 억 소리를 내며 다시 땅을 짚었는데, 오른발목이 처음에는 시큰하더니 점점 뜨거워지는 느낌이 들며 눈앞이 까맣게 됐다. 빈혈기가 생긴 것처럼 시야가 암전됐다. 그대로 서 있을 수가 없어서 잠깐 비틀거리다가, 손만 땅에 짚으면 OTL 자세로 한참 동안 서 있었다.
약 20초쯤 휘청거리며 서 있었을까, 정신이 확 들었다. 행인들이 내 주변에 몰려 있는 것이 느껴졌다. 그대로 주저앉고 싶었는데 정말로 그랬으면 분명 스마트폰으로 동영상 촬영을 할 것 같았다. 그것은 분명 코로나 일구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곧 사망할 사람을 보는 눈빛이었다. 마스크 벗고 괜히 헛기침이라도 한번 해 줄 걸 그랬다.
미팅을 마치고 추가 미팅까지 마쳤는데, 오른쪽 발목이 심하게 아팠다. 보통 접질리면 가만히 좀 있으면 아픔이 가시고 낫는 게 정상인데, 쿡쿡 장대로 누가 찌르는 것 같았다. 추가 미팅은 5층 빌딩 꼭대기였는데, 엘리베이터가 검사 미이수로 전원을 꺼둔 상태였던 것도 컸다. 교대에 이런 빌딩이 있다니. 욕을 하면서 걸어 올라갔다.
병원에 가 엑스레이를 찍었다. 붓기가 이상하다면서 좀 빼보자고 주사를 꽂았는데, 피가 팍 하고 주사기 안으로 빨려 들어왔다. 피가 고여 있네요. 선생님 원래 이런가요. 아니요. 안에 뭔가 다친 것이 틀림없어요. 그건 저도 알겠는데 어디가 다친 걸까요. 모르겠는데. 좀 봐야 알겠네. 경과를 봅시다. 그렇게 생전 처음으로 깁스를 했다. 목발도 받았다. 단지 접질렸을 뿐인데, 왜 내게 이런 일이 벌어진 걸까. 마음을 곱게 먹어야겠다. 진단서 2만 원, 진료비 5만 5000원.
2.
쿤쏨차이는 지난해 미슐랭 더플레이트에 선정된 음식점으로, 쓰레기 같은 가격의 서초동과 교대역 앞에 이르기까지 나름 괜찮은 음식점이다(쿤쏨차이가 내게 돈 준 적 없다). 완탕 쌀국수, 뿌팟퐁커리 나쁘지 않고 괜찮다. 야채 춘권 비추. 순살 닭튀김은 그냥 평범했다.
3.
병가를 하루 냈다. 접질렸는데 깁스를 했다는 말에 다들 황당해하는 모습이었다. 아니 나라고 좋아서 병가 내는 것 아니다.라는 표정관리를 하면서 스팀에서 로로나, 토토리, 메루루의 아틀리에 패키지를 구매했다. 오늘 안에 깰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