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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태엽 Mar 10. 2022

어떤 정치 무관심론자의 무효표

양자역학적 정치와 정치적 무관심

*난 아나키스트며 진보면서 동시에 보수이기도 하며 중도다. 정치적 동시 존재 같은 거라 말할 수 있지만 입에서 나온다고 다 말이 아니니까 정치 무관심론자라고 하는 게 맞는 듯하다.


말 많고 탈 많은 20대 대통령 선거가 끝났다. 사실 이전의 17·19대 대통령 선거는 이미 투표 전부터 결과가 예상이 됐다. 그나마 17대 대선은 사실상 결승이었던 대통령 후보 경선이라도 치열했던 반면, 19대 대통령 선거는 이미 애진작에 결과가 정해져 있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이번 선거는 18대 대선 이후 (중간에 불가피한 사정으로 몇 달이 줄은) 10년 만에 펼쳐진 박빙 승부였다.


나는 투표 짬이 오래되지는 않았지만 나름 선거권을 획득한 후부터 한 차례도 투표를 빼먹은 적은 없는 개근 투표자였다. 아무리 뽑을 사람이 없어도 투표는 하고 왔다. 그런데 솔직히 이번에는 거의 마지막까지 투표하지 않겠다는 마음을 굳게 먹었었다. 이번엔 뽑을 사람이 없다는 내 의견을 굳이 투표장에까지 가는 수고를 들여 알리고 싶지가 않았다.

주호민은 위 트윗에 대해 "저런 소리를 모두가 볼 수 있는 공간에 써서 무식하다고 한 건데 이제 생각하니 저런 말을 한 내가 무식한 거 같다"라고 했다(웃자고 한 말이니 진지X)

투표에 대한 생각 중 하나를 말하자면, 과거엔 커지는 정치적 무관심과 낮은 투표율에 대해 '선거는 차악을 뽑는 것'이라며 비판하는 내용의 글이 인터넷에 많이 나돌았다. 그런데 조금만 생각을 해봐도 알겠지만 이런 말을 하는 건 자기네가 차악이라고 믿는, 일명 '겨 묻은 개' 쪽이다. "우리가 깨끗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똥 묻은 개'보다는 낫잖아? 그러니까 투표해(서 우릴 찍어)."라는 논리다. 도덕의 상대성 원칙을 주장하는 일종의 정치적 아인슈타인인 셈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이런 내용은 크게 줄었다.


대신에 정치적 양자역학자들이 크게 늘었다. "우리가 더 나쁘다고? 그걸 어떻게 알지? 대상을 직접 관찰하기 전까지는 그것이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슈뢰딩거의 정치가(정당)처럼 상자를 열어서 그 대상의 상태를 직접 관측하기 전까진 대상이 부패했는지 아닌지 알 수 없는, 그러니까 부패한 정치와 부패하지 않은 정치가 공존하는 상태라고." 그런데 또 불확정성의 원리에 따라 어떤 대상은 우리가 관측하려는 행위 자체만으로 그 성질이 변해서 본질을 알아내기 힘들다. 그러니까 사실상 어떤 정치가와 정당이 부패했는지의 여부를 본질적으로 파악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얘기인데 그 상태에서 어떻게 차악을 따질 수 있을까?(지극히 문과적 양자역학 해석이다. 하지만 정치인 중엔 문과가 훨씬 많은데 어쩌겠는가. 이 개똥논리에 대해 문제제기하고자 하는 이과들의 적극적인 정치 참여를 독려한다) 그래서 요새는 확증편향의 강화를 통해 지지층을 더욱 굳건히 하고, 차악의 논리는 상대방을 최악으로 만드는 것으로 극단화됐다.


내가 적고도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는 이 개똥논리는 지금 적어도 내 머릿속에선 확실하게 일어나고 있다. 그리고 언론사에서 인턴 기자로 일하면서 절실히 느꼈다. 어떤 정치적 논란에 대해서 아무리 신중히 정보를 걸러내 핵심만 파악해 분석하려고 해도 그 자체가 불가능한 경우가 많았다. 아니, 애초에 이런 본질 자체는 전혀 중요하지 않은 게 대부분이다. 사람은 본능적 혹은 필연적으로 자신에게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을 어떻게든 끼워 맞추려 하고 인과율을 부여하려고 한다.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채로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련의 우연적 사건의 연속을 필연적 현상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수많은 가짜뉴스도, 인생의 개 같은 아이러니도 다 여기서 비롯된다. 신이나 종교를 찾게 되는 것도 어찌보면 이해할 수 없는 세상을 어떻게든 이해하기 위해서다(그런데 이렇게 찾은 신이나 종교가 다른 이로 하여금 세상을 더 이해하지 못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러니 더 많이 알려고 노력하면 더 혼란스러워지게 된다. 자신도 모르게 확증편향이 더해지고 정보를 취사선택하게 되기도 한다. 그 누구보다 열심히 이 과정을 반복하던 난 결국 언론이고 정치고 뭐고 다 접게 됐다. '진실' 자체가 허상이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다만 아직 젊고 살 날은 많으니 이 생각은 언제든 바뀔 수 있다.

세상에 선거로 뽑을 수 없는 게 있다면 혹시 득표수가 부족한 건 아닌지 확인해보라.

결론부터 말하자면 결국 투표하러 갔다. 점심시간쯤에 잠깐 집 밖을 나왔는데 오랜만에 날이 너무 좋았다. 게다가 의무교육을 쓸데없이 성실히 받은 탓에 투표할 '권리'를 '의무'처럼 받아들여 투표를 하지 않으면 몸과 마음이 버틸 수 없게 세뇌된 듯하다. 투표하는데 몇 시간이 걸리는 것도 아니고 길어봤자 고작 몇십 분인데... 그래서 투표했다. 뽑을 사람을 정말 못 정했을 때 사용하던 방식으로. 사퇴한 후보 포함해서 후보 12명에게 골고루 한 표씩 주고 왔다. 뽑을 사람이 없어도 투표장에 가서 그러한 의견을 표현하는 게 정치적 참여라고, 그게 직선제 국가에서 정치적 무관심을 가장 적극적으로 어필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선거에서 무효표가 30만 표 넘게 쏟아졌는데 이것이 1,2위간 득표수 차이보다 더 크다고 한다. 일부 후보들의 뒤늦은 사퇴 같은 게 영향을 미쳤을 수도 있고 정말 '잘못' 찍어서 무효표가 나왔다거나 하는 여타 다른 이유들이 많겠지만 그중에는 실수나 오해가 아닌 적극적인 무효표도 있다는 사실을 알리고자 글을 적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임금 '정조'가 아닌 인간 '이산'을 엿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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