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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태엽 Mar 10. 2019

요르고스 란티모스 탐닉하기

비정상적인 란티모스를 비정상적으로 파헤쳐 보자


 특정 감독이나 장르에 꽂히면 한동안 그 쪽으로만 깊게 파는 성향이다. 요즘은 요르고스 란티모스에 다시금 빠져있다. 뭔가 변태처럼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이상하게 란티모스의 영화를 보고나면(특히 극장에서) 일종의 영화적 쾌감이 몰려온다. 보고 있으면 너무 좋아서 극장에서 가만히 못 앉아있을 정도이기도 하고... 내가 봐도 정상은 아니다. 가장 좋아하는 감독을 꼽으라면 항상 마틴 스콜세지와 PTA라고 했었는데 이제 란티모스도 추가시켜야 할 것 같다.

 일단 우리나라에 정식 개봉한 란티모스의 영화들(<송곳니>, <더 랍스터>, <킬링 디어>, <더 페이버릿>)은 매우 열렬히 다 봤는데 감독의 다른 영화들을 보고 다시 보면 새롭게 보이는 면도 있고 재밌는 점도 많다. 조만간 영상자료원 영상도서관에서 <알프스>와 <키네타>, <내 가장 친한 친구>를 꼭 볼 예정이다.

 아무튼 이러한 란티모스 뽕(?)이 식기 전에 보면서 떠올린 란티모스 영화들의 특징을 대충 적어보려 한다. 뭐 연출방식이나 음악, 슬로우 모션 활용 같은 그런 거 말고... 일종의 자기 기록서. 나열 순서와 중요도는 큰 연관이 없다.

(어쩔 수 없이 스포가 조금씩 들어가 있을 수 있지만 최소화하려고 했습니다.)

배경의 측면사진이 매우 잘 찍힌 사진임을 알려주는 노골적인 정면 샷.



- 란티모스는 동물을 싫어하는 것이 분명하다. 영화마다 애꿎은 동물을 다양한 방식으로 죽여댄다.

 <송곳니>에서 고양이는 시방 위험한 짐승이라 정원가위로 찔러 죽이고, <더 랍스터>에서는 아예 오프닝부터 망아지를 총으로 쏴죽이며 시작해버리더니 개는 죽을 때까지 발로 차 죽인다(심지어 양발이 아니라 한쪽 발로만). 사실 짝을 못 찾으면 동물로 변해야 하는 설정부터가... <더 페이버릿>에선 새를 총으로 쏴 죽이는 걸 놀이로 즐겨한다. 아, 토끼 학대는 덤... <킬링디어>에선 그런 장면이 안 나오는 대신 아르테미스 사슴 죽인 신화를 모티브로 하고는 영화 제목(The Killing of a Sacred Deer, 직역하면 성스러운 사슴 죽이기)으로 마무리한다. 사실 마지막 방법이 제일 기괴하다.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동물 고양이



-꼭 한 명은 자해를 한다. 그것도 아주 기괴하게...

 일반적인(?) 손목 긋기 같은 건 취급하지도 않는다. <송곳니>에선 아령의 치과적 사용법을 보여주고(일명 원펀치 쓰리 강냉이), <더 랍스터>에서는 코피를 흘리려고 얼굴을 박고, <킬링디어>에선 예시를 친절히 몸소 보여주기 위해 자기 팔을 물어뜯고, <더 페이버릿>에선 맞은 거 침소봉대(일종의 전시행정)하려고 또 얼굴을 들이받는다. 그리고 자살도 빨리 죽여주질 않는다. <더 랍스터>에서 자살하려고 뛰어내린 여자는 하필 애매하게(?) 떨어져서 즉사하지도 못하고 고통을 길게 맛보며 죽는다. 그렇다면 이것은 단순 자살인가, 아니면 자해가 죽음으로 이어진 것인가...

치과를 가야하는데 시간이 없다? 그러면 집에서 아령을 사용해보자



-마찬가지로 다양한 신체훼손법도 보여준다.

 얼굴을 들이받아 자해하고 칼로 베고 하는 건 예사다. 멀쩡한 이빨을 뽑고(아니 부수고) 비디오테이프•VHS플레이어•아령 등 다양한 도구로 다양하게 패고(<송곳니>), 연애 못한다고 동물로 만들어버리질 않나, 토스트에 빵 대신 손을 굽질 않나, 멀쩡한 눈 수술시켜서 장님을 만들지 않나(<더 랍스터>), 하반신 마비 상태로 집나가서 기어다니느라 애꿎은 무릎을 갈아버리고, 남의 팔 살점도 자기 팔 살점도 물어뜯고(<킬링 디어>), 양잿물에 손 집어넣고, 말 고삐에 묶인 채 끌려다녀서 얼굴 망가뜨리고(<더 페이버릿>)... 쓸 데 없이 이런 거에 창의적이다.

언어폭력도 심각하다



- ‘프로이드’적 관점에서 봤을 때, 란티모스는 성적으로 매우 문제가 많다.

영화에서 (표현이 이상하긴 하지만)정상적으로 섹스를 하는 장면은 나오지가 않는다. 이건 일일이 언급하기가 좀 그렇긴 한데... 섹스라고 해야할지 삽입이라 해야할지 모르겠는 섹스와 '눈 감고 촉감으로 섹스 상대 고르기' 및 '키보드' 핥기(<송곳니>), awful한 Dry-hump와 흥분한 거 들키면 큰일나는 섹스 (<더 랍스터>), '전신마취' 체위와 정보와 핸드잡의 물물교환(<킬링디어>), 불경한 의도의 마사지와 '노룩 핸드잡'(<더 페이버릿>)까지. 유사성행위까지 따지면 끝이 없다. 심지어 스티븐(<킬링디어>)의 어린 시절 형 핸드잡한 썰까지... 아마 가장 정상적이었을 레즈비언 섹스는 관객은 안 보여주고 등장인물만 관음하게 한다. 심지어 자식이 부모가 섹스하는 것을 본 걸 암시하기까지 한다. 이 정도면 심각하다.

자식은 부모의 거울...



- 란티모스는 춤을 이상한 데서 이상하게 배웠거나 아니면 춤을 드럽게 못 출 것이다. 아니면 그가 춤에 다른 의미를 부여하고 있던가... 가령 아프리카의 어떤 부족들이 주술적 의미로 춤을 추는 것처럼. 보기에 뭔가 이상한 춤을 아주 화려하게 추는 장면이 등장한다. 그것도 매우 엄숙하고 꽤나 길게. <킬링디어>에서는 등장하지 않는다. 하지만 춤 대신 노래를 이용하기도 하고(특히 킴이 나무 앞에서 노래 부르는 장면의 성질은 다른 영화들 춤 장면의 성질과 매우 흡사하다), 몸짓(‘전신마취’, 아이들의 ‘크롤 보행법’, 그리고 무엇보다 비니 쓰고 뱅뱅...)으로 대신한다.

언니네이발관 - 혼자 추는 춤



- 누구 한 명은 (잠시라도) 실종된다. 아님 실종된 걸로 여겨지던가. 대개 이 경우엔 탈출인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송곳니>의 브루스, <더 랍스터>의 스티븐, <킬링디어>의 킴(집 나가서 기어다니기)과 마틴(얘는 납치당한 게 맞긴 한데 엄마한텐 실종이니까...) <더 페이버릿>의 어쨌거나 말타고 사라진 사라까지.



 이밖에 더 있었던 것 같으나 적다보니 잊어버렸다. 란티모스 감독은 여러 정황상 변태가 분명하다. 하지만 잘 배운, 문명화된, 고급스러운 변태다. 그리고 난 그게 너무 좋다. 마무리가 이상한데 어쨌든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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