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역사가 되어버린 그 그룹 언니네 이발관, 가장 좋아하는 가수가 누구냐고 물으면 난 바로 언니네 이발관이라고 답하곤 했다. 음악의 경우, 다른 것들과 다르게 한 번에 느낌이 와서 좋아지기 보다는 오래 꾸준히 듣다가 천천히, 깊게 빠져드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좋아하게 된 아티스트는 정말 깊이 좋아하게 된다. 언니네 이발관의 5집을 처음 접했을 때는 별 감흥이 없었다. 앨범 내내 단조로운 트랙에 권태에 빠진 듯한 비음섞인 이석원의 목소리까지. 하지만 어쩌다보니 내 재생목록에 계속 남아 몇 개월간 듣게 되었고, 어느 순간부터 처음에 거슬렸던 것들까지 다 좋아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결국엔 전 앨범을 찾아듣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가수가 되었다.
<홀로 있는 사람들> 발매 직후부터 6집을 중심으로 언니네 이발관 전 앨범을 돌아보는 리뷰를 쓸 생각이었다. 하지만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것에 대해 글을 쓰는 것이 오히려 가장 어려울 때가 있다. 언어의 한계로 인해 내가 대상에게 가지는 감정과 느낌을 다 담아내는 것이 힘들기 때문이다. 그렇게 퍼즐 조각처럼 내용들을 흩뿌려놓기만 해놓고 장장 2년만에 이 글을 완성해서 올린다.
9년, 인디계의 전설로 남은 명반인 5집 <가장 보통의 존재>가 발매된 후 6집이 나올 때까지 걸린 시간이다. 한때 공식 홈페이지에 6집을 내고, 반 년쯤 지나 마지막 앨범 7집을 발매할 계획이라고 구체적인 시기까지 공지를 했지만 이석원답게 발매일은 미뤄지고 또 미뤄지고 계획되었던 두 개의 앨범은 하나로 줄었다. 그 9년 사이에 나는 10대 중반에서 20대 중반이 됐다. 내 기억으론 내가 5집을 처음 접한 게 2012년이었으니 그 이후로만 따져도 재수생활을 하고, 대학교에 입학하고, 군대까지 갔다 왔다. 원래 내가 복무 중이던 시기에 나와야 했을 6집은 2곡이 선공개만 되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9년간의 기다림 끝에 나온 6집은 정말 이석원이 그의 영혼을 갈아넣어 만들어 낸 것 같다. 9년간의 공백, 9개의 트랙. 곡 한 개당 1년을 쏟아부었다고 해도 믿음직한 퀄리티의 앨범이다.
5집 ‘가장 보통의 존재’는 앨범 전체가 하나의 유기체 같은 느낌이었다. 그만큼 곡 전체의 분위기와 느낌에서 비슷한 느낌을 주었고, 마치 한 편의 이야기를 듣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에 비해 이번 6집 앨범은 곡 하나하나가 독립적인 유기체로 존재하는 느낌이다. 곡 하나하나가 각자의 이야기와 완결성을 가지고 있고, 다른 느낌을 준다. 하지만 그러면서 그가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들은 서로 연결성을 가진다.
2017년 발매 당시 운이 좋게도 김작가 분이 카페 ‘벨로주’에서 진행한 청음회 행사 덕에 이석원이 전해주고자 하는 그 사운드를 온전히 다 느낄 수 있었다. 그때 기억에 남는 건 김작가에게 이석원이 앨범 공개 전 트랙을 처음 들려줄 때, 아무데서나 들려줄 수가 없다고 자신의 차에 데려가서 들려줬다는 이야기였다. 또한 청음회 당일에도 이석원은 김작가에게 문자를 보내 음질도 중요하지만 소리 크기도 중요하다고 신신당부를 했다. 그의 편집증적인 완벽증을 엿볼 수 있는 사례였다.
앞서 말한 것처럼 5집이 미니멀하고 비슷한 사운드 속에서 한 편의 이야기 같은 느낌을 풍겼다면, 6집은 트랙 하나하나가 각자의 완성된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 일종의 옴니버스 영화 같은 느낌이다. 비슷한 주제를 공유하지만 스타일과 표현의 방식에서 다른 것들의 집합체인 것이다.
"왜 이따위니 인생이 그지
그래서 뭐 난 행복해
난 아무것도 아냐 원래
의미 없이 숨쉴 뿐이야"
"아주 먼 길이었지. 나쁜 꿈을 꾼 것 같아. 꿈속에서 만났던 너처럼."
1번 트랙 ‘너의 몸을 흔들어 너의 마음을 움직여’는 언니네 이발관의 23년을 돌아보는 노래인 것 같기도 하다. 그동안의 세월을 꿈같은 시간(그것도 나쁜 꿈)이었다고 표현한 것은 시간을 거슬러가는 영화 <박하사탕>의 마지막을 보는 듯하다. 그 꿈이 좋은 꿈이 아니라 나쁜 꿈이었던 것마저도.
앨범전체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꿈, 마음 그리고 혼자다. 이 앨범은 결국 홀로 남은 이들을 위한 노래다. 마음을 움직이긴 위해선 몸을 움직여야 한다고 시작하는 첫 곡(너의 몸을 흔들어 너의 마음을 움직여)에서부터 나쁜 꿈같은 시간을 지나서 홀로 남아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건네는 위로 말이다.
“이 곡은 항상 ‘나’를 노래해오던 이발관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우리, 홀로 있는 각각의 우리에 대해서 노래한 곡이다. 그것만으로도 팀의 마지막 앨범의 마지막 곡으로써 부족함이 없다고 보았다. 긴 세월 우리를 지지해준 팬들과 이 땅에서 함께 발 딛고 살아가는 이들에게 바치는 언니네 이발관의 마지막 송가이다.”
마지막 트랙 ‘혼자 추는 춤’에 대한 앨범 설명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곡은 선공개한 싱글 두 곡 중 첫 번째였다. 최초로 공개한 곡 ‘혼자 추는 춤’을 마지막 앨범의 마지막 트랙에 배치해버리는 것을 보라. 싱글앨범에서 들을 때와, 정규앨범에서 모든 노래를 다 듣고 마지막으로 이 노래가 나올 때의 느낌은 확연히 다르다.
1집의 1번 트랙 <푸훗>에서부터 6집의 마지막 트랙 <혼자 추는 춤>까지. <푸훗>에서 어제와 다를 바 없는 하루가 반복되는 권태를 느끼던 화자는 <혼자 추는 춤>에 이르기까지 그 권태를 벗어나지 못한다. 하지만 이제는 ‘우리’에 대해 이야기한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이따위’ 인생에 홀로 남은 것 같은 ‘나’를 넘어 하루하루 견디는 삶속에서 홀로 춤을 추는 ‘우리’ 모두에게. 비록 사람들은 우리를 썩은 눈으로 쳐다보지만 그럼에도 춤을 춰라.
가네시로 가즈키의 <GO!>의 마지막 구절이 떠오른다. “너는 고된 인생을 살지도 모르겠다. 상처받아 좌절하는 일도 있겠지, 라고 말이야. 하지만 무슨 일이 있어도, 끝까지 춤추는 거야.”
의미없는 모든 존재들에게, 비록 언니네 이발관은 이것이 마지막이지만 그럼에도 춤추는 것을 멈추지 마라고 말하며 언니네 이발관의 역사는 막을 내린다. 이것은 언니네 이발관만이 전할 수 있는 가장 염세적인 위로가 아닐까.
‘훗날 언젠가
세월이 정말 오래 흘러서
내가 더이상 이 일이 고통으로 여겨지지도 않고
사람들에게 또 나 자신에게 죄를 짓는 기분으로
임하지 않아도 되는 날이 온다면..
그때 다시 찾아 뵐게요.’
이석원이 언니네 이발관의 해체를 알리며 남긴 글이다. 물론 그가 지금껏 그래왔던 것처럼, 해체를 번복하고, 앨범 날짜를 번복해왔듯이, 다시 한 번 이걸 번복하고 돌아왔으면 좋겠다. 절대로 욕하지 않을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