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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태엽 Jan 23. 2020

구정·신정, 우리나라는 왜 새해를 두 번 맞을까?

우리 민족 최대 명절인 설날은 정월 초하루, 즉 음력 1월 1일이다. 우리나라는 '신정(新正)', '구정(舊正)'으로 양력과 음력 각각 1월1일을 두 번 맞아왔다. 우리는 왜 새해 명절을 두 번에 걸쳐 지내는 것일까.


'구정'이란 표현은 양력 1월 1일의 상대적 개념으로 붙은 이름인데 이 단어가 일제 치하의 잔재로 설을 폄하하는 의미가 담겨 있다는 주장도 있다. '옛날 설'이란 의미를 붙이며 음력설의 의미를 깎아내렸다는 것이다. 전통명절은 설날이며 구정이란 용어 자체가 적절하지 않다는 것이다. 실제로 '설날'이 그 이름을 되찾기까지는 오랜 세월이 걸렸다.



탄압받은 음력설

구정 귀성객 귀성 광경(1970)/사진 저작권=국가기록원

1896년 대한제국 고종황제가 공식적으로 태양력을 도입하며 '양력설'도 이때 처음 생겨났다. 하지만 여전히 대부분의 가정은 계속 음력설을 챙겼다.


그러나 음력설은 일제강점기 시절 민족 전통을 말살하려는 일제에 의해 탄압을 받았다. 일제는 양력 1월1일을 '설날' 공휴일로 지정하고 음력설 쇠는 것을 아예 금지했다.

 

일제는 일본의 명절·행사의 의식을 한국에 이식하여 강요하는 한편 음력설 쇠는 걸 막기 위해 공권력 억압은 물론, 물리력까지 행사했다. 신정 때는 학교에 방학을 주고 관공서와 기업은 그날을 공식 휴일로 지정했으나 음력설은 공휴일로 정하지 않음은 물론이고 관청과 학교에서 조퇴하거나 늦게 출근·등교하는 것도 금지했다.


또 지역별로 부역이나 청소 활동을 시켜서 음력설을 쇠는 것을 방해했다. 음력 설 부근에 강제적으로 방앗간의 조업을 금지해 상차림에 필요한 떡을 만들지 못하게 하고, 설빔을 해 입은 아이들에게 먹물을 뿌리기도 했다.


현재 신정과 구정이라는 단어가 사용된 것도 일제강점기부터다. 또한 이 과정에서 양력·음력 설을 모두 쇠는 이중과세(二重過歲)(과세過歲 : 한 해를 넘김) 풍속도 생겨났다.



광복 후에도 계속된 음력 설 탄압

구정 귀성객 (1977)/사진 저작권=국가기록원

일제의 식민지배가 끝난 뒤에도 음력설은 여전히 대접을 받지 못했다. 이승만 초대 대통령 당시 정부는 1949년 공휴일을 지정할 때 양력설은 1월1일부터 3일까지 3일간 연휴로 지정했음에도 음력 설은 공휴일에 포함되지도 못했다.

 

이중과세 풍속은 낭비와 국제화 역행이라는 이유로 음력설의 박해는 박정희 정권까지 이어졌다. 그러나 대다수 국민들은 여전히 음력설을 쇠는 경우가 많았고 음력설의 공휴일 지정 문제로 오랜 논란이 있었다.

 

여러 우여곡절 끝에 1985년 음력설은 '민속의 날'이라는 이름으로 공휴일로 제정됐다. 그리고 민주화 항쟁 후 노태우 정부 집권기인 1989년 음력설은 마침내 '설날'로 완전히 복권됐다. 1989년 2월 노태우 정부는 '민속의 날'의 명칭을 '설날'이라는 명칭으로 명문화하고 휴일도 설날 전후를 포함한 3일로 개정했다. 공식적으로 정부가 음력설을 인정한 것이다.

 

이후 1991년부터는 신정 휴일이 3일에서 2일로 줄었고 김대중 정권 때인 1998년에는 양력설을 '설'이 아닌, '1월 1일'로 규정하고 공휴일도 하루로 축소했다. 이로써 우리의 본래 설인 음력설은 추석과 함께 우리 민족 최대의 명절로 자리잡게 되었다.



"음력설은 구시대 유물" 헌법소원도


그러나 다시 부활한 음력설은 2001년 헌법재판소까지 가기도 했다. A씨가 음력설은 위헌이라면서 헌법소원을 제기한 것이다. A씨는 "구시대의 유물인 음력설을 정통 설인 것처럼 취급해 공휴제를 실시하는 것은 과세풍습 양분화를 야기하고 국가경쟁력을 약화시키는 등 폐단을 초래한다"며 "이는 헌법 전문의 ‘모든 사회적 폐습과 불의를 타파하며’라는 규정에 위배된다"고 주장했다.


또 "설 연휴 기간 공공기관 이용이 불가능하고 교통난과 불필요한 지출, 물가난을 겪게 하는 등 행복추구권도 침해된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헌법재판소는 "양력설만 공휴일로 하여야 한다는 견해를 가지고 있는 청구인에 대해서는 불쾌감이나 기타 생활상 불편을 가져다 주는 것"이라면서도 "해당 조항이 행복추구권의 보호영역과 관계되는 것이라고 보이지 않고, 그밖에 헌법상 보장된 기본권을 침해받을 여지가 없다"며 '각하' 결정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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