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을 '개인적인 영화' 카테고리 안에 넣을지 말지 고민을 좀 했다. 이건 사실 영화 얘기보다는 그냥 푸념에 더 가깝다. 그런데 말 그대로 '개인적인' 얘기니까...
보는데 꽤 오래 걸렸다. 반년이 훌쩍 넘었으니... 초반 30분이 지나고 인우(이병헌)가 선생님이 된 시점부터 왠지 오그라들어서 그 이상을 못 넘겼다. 학교가 배경이고 교복 입은 무리들이 잔뜩 나와서 그런가. 나는 청소년기의 영향인지 중‧고등학교 배경에 교복 입은 학생들이 메인으로 나오면 일단 거부감이 느껴진다. 거기에 학생들의 발연기에 2000년대 초반 서울 말씨가 거슬리는 것도 한몫했다. 그러다가 오랜 시간 끝에 결국 다 보게 됐다.
(스포일러가 있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의 가장 큰 의의는 '(시대적 기준상) 사회적으로 파격적인 소재를 택하면 정작 진짜 비현실적인 소재(전생, 윤회 등)나 덜 파격적인 소재(사제 간 불륜, 동반자살)는 어물쩍 받아들여진다'가 아닐까 싶다.
'아니 남남(男男)이면 마흔 가까이 된 선생이 17살짜리 학생한테 대놓고 집착하고 그래도 되는 거야?', '아니 원래 전생이니 윤회라는 게 죽자마자 바로 환생하는 개념이었어...?', '아니 이 영화 불교적 개념에 바탕을 둔 영화야? 근데 불교도 자살 금기시하잖아' 등등의 것들보단 '동성애'란 키워드만으로 기억되니. 그때는 <은행나무 침대> 같은 영화도 나오고, 전생 체험 같은 것도 유행하던 시절이었으니 차라리 전생 개념이 동성애보다 더 잘 받아들여졌었나..
풋풋(?)하던 30대 초반의 이병헌 보면서 점점 더 의아해지는 내가 이상한 건가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영화에 대해 너무 지나치게 하나하나 따지거나 맥락을 보지 않고 특정한 부분 하나를 가지고 비판하면서 접근하진 않았다. '40살 선생이 순진한 제자 가스라이팅해서 동반 자살하는 영화'라는 식으로 가고 싶지는 않다는 얘기다.
일단 2000년대 초반이라는 시대적 배경을 고려(?)해서 선생의 학교폭력('체벌'이 아니라 '폭력'이다)이나 지저분한 음담패설 등의 요소는 대충 넘어갔다. 이어폰도 안 꼈는데 한적한 도로를 달리는 화물차 소리도 못 듣는 사람이 넘쳐나던 그 시절 감성도 당연히 귀엽게 봐주고.
<번지점프를 하다>라는 제목은 사실 <동반자살을 하다>를 매우 빙빙 돌려 표현한 결과다 난 아직도 어릴 적에 TV에서 남자가 여자를 강간했는데 '이렇게 된 거 결혼해라'는 식의 내용이 방송되는 걸 본 기억이 난다. 그때는 법적으로 '구강성교'와 '항문성교'는 섹스가 아니었던 시절이다. 근데 그렇다고 '인우'가 본인의 남성성을 증명하려고 아내를 강간하려 하는 게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건 아니다. 물론 그때는 부부간 성폭행 개념 자체도 없었을 때였으니...
그 땐 신경정신과에서 동성애를 비정상이라 진단하던 시절이었지. 근데 인우는 사실 정신과에서 동성애 말고 다른 걸 먼저 상담했어야 되는 거 아니었나? '죽은 첫사랑이 환생한 것 같아요. 근데 걔가 17살이고 제가 걔 담임선생이에요'라고 했어야지. 신경정신과 말고 절에 가던가.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故 이은주 배우를 영화에서 만나는 건 언제나 반갑다.
사실 이렇게 욕만 했지만 고등학생을 연기할 정도로 어렸던 남궁민과 홍수현, 젊은 이병헌, 그리고 아름답던 故 이은주 배우를 볼 수 있었으니 이 영화는 그걸로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