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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태엽 Nov 17. 2020

<바닷가 작업실에서는 전혀 다른 시간이 흐른다>

1년을 넘게 끌어온 부채 의식의 탕감

*이 글은 출판사 21세기북스에서 리뷰를 위해 제공받은 책입니다. 그때가 2019년 7월이었습니다. 출판사 분들에게 진심으로 죄송합니다...


<바닷가 작업실에서는 전혀 다른 시간이 흐른다>는 책을 쓴 김정운이 여수에 자신만의 공간(작업실)을 마련하고 그곳에서의 이야기를 적은 책이다. 단순히 자신만의 공간의 필요성에 대해서만 강조하는 것이 아닌, 사회의 여러 모습에 대한 작가 자신만의 느낀 점을 두루 말한다.


책에서 가장 강조하고 넘어가는 슈필라움(Spielraum)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독일어인 슈필라움은 한국어로 '여유공간' 정도로 직역할 수 있겠으나 주로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율적 공간'의 의미로 사용한다. 물리적으로나 심리적으로나 남의 방해를 받지 않는 공간이란 뜻이다. 


김정운은 여수의 바닷가에 자신만의 슈필라움인 ‘미역창고(美力創考)’를 만들었다. 이제 구시대적인 단어가 돼가고 있지만 이러한 작업공간은 모든 '남자의 로망' 중 하나가 아닌가. 혼자 사는 집이 있음에도 굳이 작업실을 따로 마련해 매일 그곳으로 '출근'해 작업을 하는 사람들이 많듯이 일상의 것들과 구별할 수 있는 공간에 대한 욕구를 가진 사람이 많다. 그렇기에 수많은 예술가들이 작품 활동을 할 때는 익숙한 곳을 떠나가 자신만의 공간으로 찾아드는 것이다. 


누구나 자신만의 공간이 필요하다는 것과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그러한 슈필라움이 부족하다는 작가의 의견에는 한없이 동의한다. '광장'과 '밀실'의 조화는 모두에게 필요하다. 반강제적이기도 했지만 나 또한 이러한 조화를 찾아 자취방이라는 '중립국'으로 이주했으니까. 오죽하면 '수방사(수컷의 방을 사수하라)'라는 아내의 뒷목을 잡게 하는 프로그램이 생겨났을까. 


다만 작가는 한국 남자들에게 자기만의 공간이 없음을 지적하며 여성은 지친 하루를 성찰하며 자신과 대화할 수 있는 화장대라는 최소한의 공간이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난 이 주장엔 전혀 공감하지 못하겠다. 내가 겪어온, 내가 봐온 수많은 경우들을 봤을 때, 가부장적인 가정에서 어머니는 자신만의 공간이 거의 없다. 이러한 말은 대개 남편들의 철없는 소리인 경우가 많다. 게다가 남편들은 집에는 자기 공간이 없다며 바깥으로 나돌아 다니니까.


<바닷가 작업실에서는 전혀 다른 시간이 흐른다>는 슈필라움에 대한 예찬으로만 가득 찬 것이 아니라 그 공간에서 작가가 사유하고 느낀 것들의 집합체라 할 수 있다. 남들이 볼 때 굉장히 사소한 일에 대해서도 작가만의 독특한 의견을 풀어내는 것이 자존심 상하게도 꽤나 유쾌하고 공감이 간다. 


특히나 내가 재밌게 읽고 공감한 부분은 독서에 대한 내용이었다. 작가는 더 이상 독서의 중요성에 대해 집착할 필요가 없고 굳이 모든 책을 '완독'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 말은 요즘 시대에 격하게 공감하는 말이다. 물론 나는 종이책과 아날로그를 사랑하지만 계속 독서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은 시대와는 맞지 않다. 그건 손으로 잡고 볼 수 있는 최고의 '미디어'가 종이뿐이었을 때의 관념이다. 


책보다 재밌는 이동식 콘텐츠는 이제 쎄고 쎘다. 책을 보는 건 교양 있는 것이고 스마트폰을 보는 건 현세태의 문제인가? 게다가 요즘엔 SNS에서만 봤으면 좋겠는 것들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시대인데. 그리고 현대인들은 과거의 누구보다 많이 읽고 많이 쓴다.


또한 이야기는 영상매체를 통한 것이 훨씬 더 직접적인 전달이 된다. 쓸데없이 다양한 분야에 대한 잡다한 지식을 요구하는 세상이다. 이런 판국에 두꺼운 양장본을 사서 무조건 다 봐야 할 이유도 없다.


사람들은 더 이상 화장실에서 대변을 볼 때 샴푸 뒤편의 설명을 읽지 않는다. 스마트폰을 본다. '읽는다'와 '본다', 사람들이 미디어를 접하는 방식은 예전의 '읽는다'와 현재의 본다'의 차이로 극명히 나타나지 않을까.


우리는 SNS를 사용한다. SNS에 쓰고 읽고 댓글을 달고 누군가를 팔로우하는 걸 다 통틀어서 '사용한다'라고 표현한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인기가 있는 책들 중 SNS에서 볼 법한 글들로 이루어진 게 많다. 그렇다면 우린 그 책을 읽는 걸까 아니면 사용하는 걸까. 


나만의 슈필라움이라 할 수 있는 내 작은 자취방에서 이 책에 대한 기나긴 사유를 끝냈다. 다만 이러한 '생활공간의 밀실화'에 따른 문제도 통감 중이다. 언젠가 나도 작가처럼 '내 작업실 마련'의 꿈을 이룰 수 있기를 바란다. 



*이 책의 리뷰 부탁을 받은 지 1년 하고도 몇 개월이 훌쩍 지났다. 리뷰를 부탁한 담당자분은 아마 진즉 나를 포기하신 것 같다. 이게 첫 리뷰 부탁이었고, 그 이후에 내가 한동안 브런치도, 연락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뻔뻔하게 나는 얼마 후부터 브런치에다 글을 썼다. 

물론 작년 한 해가 나에게 매우 격동의 해였고, 그래서 난 기본적으로 늘 정신이 없었다. 수업을 들으면서도 기본적인 일상이라도 살려면 돈을 벌어야 해서 새벽에 시작해 다음날 새벽에 끝나는 연출부 아르바이트를 병행했다. 7월부터는 인생의 청사진을 완전히 새로 그려야 했고, 되는 대로 아무거나 그렸고, 가장 빨리 돈을 벌 수 있는 곳으로 취직했다. 그리고 그 일의 압박감은 반년 동안 일하면서도 전혀 적응이 안 됐고 난 활자를 생산하는 기계가 됐다. (나도 이게 다 변명인 거 알고 있다)

그러면서도 이 책에 대한 의무감과 미안함이 계속 자리 잡고 있었다. 이 책은 나에게 '보지도 않으면서 계속 들고 다니고 침대맡에 둔 기간이 가장 긴 책'이 됐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그만큼의 정성을 들인 글을 써야 한다는 의무감이 생기고 혼자 만든 기대를 부합하지 못할 것을 두려워해서 글을 더 못쓰게 되는 것이다. 특히 이런 에세이는 어떤 식으로 리뷰를 써야 할지 나는 사실 지금도 잘 알 수가 없다(참고로 책은 아주 여러 번 읽었다). 내 모자란 글이 어떠한 보탬이 될지 모르겠지만 묵은 약속을 기어이 지키기 위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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