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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태엽 Oct 02. 2020

<헤븐>, 끔찍이 혐오하면서도 끔찍이 갈구하다

김사월 3집 <헤븐>

김사월의 정규 3집 <헤븐>은 여러 면에서 지난 2개의 앨범들과 결을 달리한다. 우선 앨범 제목과 동명의 트랙 위치부터. 1집 <수잔>과 2집 <로맨스>는 '수잔'과 '로맨스'를 1번 트랙으로 시작하며 각 앨범의 내용 또한 '수잔'이라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와 '로맨스'에 대한 완결성 있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수잔>에선 마지막 트랙 '머리맡'을 통해 '지금까지 우리는 수잔이라는 사람의 머리맡을 엿보았습니다'라 말하며 막을 내린다. <로맨스>의 마지막 트랙 '키스'는 사랑이 끝나고 홀로 남은 화자의 쓸쓸한 독백이다. 


그러나 <헤븐>에서 '헤븐'이라는 노래가 위치한 곳은 마지막 트랙이다. 이 이야기는 자신이 차라리 일회용품이면 좋겠다는 화자의 시니컬한 고백('일회용품')으로 시작한다. 어차피 모든 기쁨은 잠시뿐인 세상에서 한 번 쓰고 버려지는 물건이 낫다면서. 


화자의 고해는 여기서 더 나아간다. 화자가 느끼기에 세상이란 스테이지에서 여성인 자신은 그저 물건과 다를 바 없다고. 이런 프레임 안에서 잠시 일탈을 하려 하지만 돌아오는 건 자기혐오와 냉소뿐이다('스테이지'). 


자기 자신도 그저 물건에 불과하다고 말한 이 이야기에서 모든 것은 사고팔 수 있는 거래의 대상이다. 기억도('교환'), 심지어 영혼마저도('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상처 주는 키를 우리는 모두 가지고 있어(이하 '사상키')'). 아니, 사실 애초부터 기억이나 영혼 같은 비물질적인 것들은 없어도 그만이라 말한다. 


그러나 이러한 극단적인 표현은 화자의 심정을 표현해줄 하나의 장치이다. '교환'의 영어 제목은 'Devil'이다. 화자 또한 온갖 기억들 때문에 밤에 잠 못 이루는 사람에 불과하고 악마와 계약을 맺은 파우스트 박사처럼 기억을 갈아 넣어 잠을 만드는 연금술사가 되고 싶어 할 뿐이다. 정작 이렇게 순간에 집착하는 우리는 모두 <파우스트> 속 메피스토의 종이 될 대상이다. 

'끔찍이 혐오하면서도 끔찍이 갈구하다'

이는 이 이야기를 관통하는 문구면서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아이러니다. 스스로를 '도망자'라고 자위하며 세속적인 감정과 집착에서 쿨해지려는 우리지만 그마저도 자기변명 속에 갇혀 있다. 하룻밤을 보내고 이내 사라진 사람을 보며 '내가 먼저 가야 했는데'라며 후회하는 '나'('도망자')는 춤추는 자신을 만지며 흥분하는 '당신'('스테이지')과 별반 다를 바가 없다. 도망자의 내음이 남은 베개를 베며 그런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이미 진 것이니까. 


'나방'은 이러한 아이러니의 결정체라 할 수 있다. 화자가 그리워하는 것은 '더운 날 수박을 가져온 너'와 사랑을 나누던 순간이다. 즉 화자가 그리워하는 것은 너와 함께했던 기억이지만 현재 화자는 곁에 함께 수박을 먹다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사람도 없이 술이나 마시며 그 순간을 그릴뿐이다. 그런 현실에서 할 수 있는 건 논리의 왜곡이자 자기변명이다. 화자는 정작 그 기억 속에서 가장 중요한 '너'와 '나'를 애써 무시하고 그날의 '노란 오후'만을 남기며 그와 성질이 비슷한 노란 조명의 술집에서 술을 마시는 행위로 그 기억을 대체하려 한다. 


이야기 속 화자는 자신의 사랑을 경멸하면서도, 또 한 편으론 영원한 사랑을 꿈꾼다. 자신이 사랑할 사람의 모습을 미리 그려 보기도 하고('내가 사랑할 그 사람은') 그 사람과 여생을 함께 할 수 있기를 바란다('확률'). 이미 그런 사랑은 너무 오래전에 끝나버린 환상일 지도 모르지만 다시 한 번 사랑에 걸어보고 싶다. 그러나 곧 생각한다. 그런 사랑을 하는 사람들이 정작 서로에게 가장 큰 상처를 줄 수도 있음을('사상키'). 그리고는 이내 자신에게 영원한 사랑을 약속했던 옛 연인 또한 지금 이 순간 다른 사람에게 같은 말을 속삭이며 사랑을 나누고 있음을 깨달으며 분노한다('오늘밤'). 

김사월의 <헤븐>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천국'이라기보다는 '실낙원'에 가깝다. 사람들은 그런 곳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고 있으면서도 천국을 갈구한다. 자신이 겪었던 수많은 고통을 알면서도 끝내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다시 꿈꾸는 이유도 그것이다. 그러면서도 굳이 제목을 '헤븐'이라 지은 이유도 그런 우리의 모습에 보내는 위로가 아닐까. 잠들지 못하는 밤이 지나고 아침이 찾아와도 우리는 증발하거나 사라지지 않는다. 절망의 밤을 보내고 일어났지만 우리에게는 또 다른 하루가 기다리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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