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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열린 Oct 30. 2022

INFJ는 ~의 약자인가요?

성격 유형 검사의 한 종류인 MBTI는 이제 상대를 대강 파악하는 용도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원래부터 심리에 지극히 관심 많던 나였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치랴. 툭하면 성격이나 심리 테스트를 찾아봤던 나라서, MBTI가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한 초반에 잽싸게 검사를 받았다. 지금은 익숙하지만, 그때는 외우기도 힘들었던 16개의 유형 중에 바로 INFJ가 나라는 것을 확인받았다.

그 후로 몇 번의 재검사를 시도했고 여전히 화면에는 INFJ라는 글자가 뿌려져 있다.



INFJ는 전 세계의 1.5% 미만을 차지하는 극 소수의 유형이라고 한다.

내가 극 소수라고? 흔치 않다는 말을 싫어할 이가 어디 있겠는가. 누구나 여기저기에 수두룩하다는 말보다는 특별하다는 말을 반길 터이다.

어딜 가나 눈에 띄지 않게 행동하는 것이 본능인 것처럼 나는 늘 평균을 유지하고 평범을 수호하는 삶을 살았다.

한탄을 하려 치면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상대방은 정작 눈물 없이 들을 수 없는 본인의 기구한 삶을 살고 있어서 약한 고난을 불평할 수도 없었고, 자랑을 하려 치면 내 앞에 앉아 있는 상대방은 아우토반을 달리는 호화로운 스포츠카의 삶을 살고 있어서 나를 뱁새라고 여길 것 같았다.

늘 고만고만했던 내가 MBTI에서는 극히 보기 힘든 성격 유형의 삶을 영위한다는 게 만족스러웠다.

습관적으로 나를 포장할 말을 찾던 나에게 조금의 특이점이 발견된 날이었다.




언제나 평균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내가 첫 소설을 쓰게 된다면 그건 시중에 유통되기 쉬운 특이한 인생 이야기도 아니었으며, 아픔 또한 반짝거리는 포장지로 덮는 해악적인 이야기도 아니고 나와 같은 선상에 선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독특하고 힙한 것들이 주류를 이룬 세상처럼 보이지만 주위를 둘러보면 많은 숫자는 평균값결집되어 있다.

월급쟁이 인생에 만족한 척을 하지만 가슴에 공허를 품고 사는 사람들,  당장 5년 후가 그려지지 않는 사람들, 크게 사치하지 못하지만 작은 술자리에 만족하는 사람들.

다들 위나 아래의 이야기를 하면 우리의 이야기는 누가 해주는지 궁금했다.

우리의 자랑거리는 '고작'이라는 부사로 내리 깎아졌고 슬픔 거리는 '겨우'라는 부사로 위로 당했다.

쪽수로는 어마어마하지만 아무도 주목해 주지 않는 삶을 사는 것이다.



인생이 주는 지독한 고통에 몸부림치는 주인공의 이야기를 읽으며 눈물과 웃음을 흘렸다. 그렇지만 나는 책을 딱 덮고 나서 반복되는 일과로 돌아가야 한다. 다시 평균치의 소형 바퀴가 되어 이 세상이 움직이게끔 끊임없이 내 몸을 둥글게 굴려야 한다. 어릴 때는 한 번도 그려보지 않은 어른의 모습으로 자라, 하루의 약 1/3을 국가의 일원으로 헌납한다. 친구들은 인생의 노잼 시기가 이렇게 빨리 찾아올 줄은 몰랐다고 말한다.

갯벌에 빠진 발을 열심히 들어 올리려 노력한다. 힘이 빠져 잠시 고개를 들어보니 너도나도 전부 다 장화를 들어 올리려 애를 쓰고 있다. 그렇게 서로의 눈을 보며 공감을 나누고 위안을 받고 싶다.

언젠가는 이 시기가 지나갈까?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밀물만이 들이닥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직진의 거리를 걷고 있는 것 같지만 우리는 나름 구불거리는 언덕을 오르고 있다. 신발에 돌이 박히고 무릎이 꺾여도 묵묵히 스트레칭 한 번으로 버티고 있다.

- 동네 뒷산은 등산 수준도 아니고 그냥 산책 아니야? 그걸 바로 평지라고 표현하는 거야!

이런 훈수를 두는 사람들의 인생은 얼마나 범상치 않은 지 궁금하다.

내 MBTI는 그들 말마따나 오르막도 내리막도 없는 평지를 걷는 심심한 인생에서 나는 지금 평평치 않다고 답해주고 있다.


I'm Not Flat, Just now!



(말도 안 되는 영어지만 이야기적 허용(?)이라고 눈 감아주시길^^;;;)






Photo by Felicia Buitenwerf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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