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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other branding Jan 01. 2021

디자인 프로세스가 없다면 무슨 (최악의)상황이 벌어질까

디자인을 접하는 '모두'가 디자인 프로세스를 '필수'로 알아야 하는 이유

"이 회사는 체계가 없어" "주먹구구 식이야" "매번 급하게 처리하기 바쁘지"

체계가 없고 매번 주먹구구식으로 업무처리를 하는 회사의 직원들은 <프로세스의 부재>로 많은 어려움을 호소한다. 심지어는 이 문제로 퇴사를 결심하는 사람도 많다. <프로세스의 부재>의 예시는 너무나도 많지만 실제로 내가 겪었던 대표적인 상황을 예시로 들어보았다.


1. 디자인 요청 가이드에 맞춰 업무를 전달해야 하는데, 정리된 문서 없이
"디자이너님, 제 생각은 이러이러한데 가능하죠? 오늘 안에 해주실 수 있죠?
2. 노트에다가 적은 글씨를 디자이너에게 전달하며
"원고 정리할 시간이 없어서.. 글씨 잘 알아보시겠죠? 이대로 디자인 진행해주세요"
3. 디자인 콘셉트를 논의하지 않은 채
"디자이너님, 그냥 심플하고 깔끔하게 임팩트 있게.. 느낌 아시죠?"
4. 수정사항이나 디자인 요청을 문서도 없이 유선상으로(구두로)
"~~ 하게 디자인해주시고요, 이거 빼고 이거 추가하고 이 내용은 변경해주세요"
5. "원고 기획 간단히 해주시고, 내용 검토도 해주시고, 오타 검수 및 교정교열까지 모두 해주세요"


아마 디자이너라면 누구나 위와 같은 상황을 겪어보았을 것이다. 물론 이런 상황은 디자이너에게 최악의 경우라 웬만해선 절대로 일어나지 않는 게 좋지만, 이러한 상황이 계속적으로 발생하는 이유는 바로, 대부분의 (디자인을 접하는, 디자인을 요청하는) 사람들이 디자인 프로세스를 모르기 때문이다.


디자인을 모른다는 건 절대 잘못이 아니다. 디자이너도 기획을 모를 수 있고, 마케팅을 모를 수 있기 때문에 서로의 영역을 모른다는 건 절대 잘못이라고 할 수 없다. 하지만 문제는 이럴 때 발생된다. 디자이너가 기획자의 프로세스를 전혀 모른 채 "기획자님, 기획은 자고로 심플하고 깔끔하게, 요즘 트렌드를 잡아야죠. 이건 별로네요" 혹은 마케터의 프로세스나 업무범위를 모른 채 "마케터님, 시장조사하는 거 얼마 안 걸리죠? 2-30대 트렌드 조사하는 거 오늘 안에 가능하겠죠?"


즉 상대의 업무내용과 프로세스를 전혀 모른 상태에서 그들에게 무턱대고 무리한 부탁을 한다거나, 혹은 조금이라도 자신이 아는 지식을 얘기하며 '당신이 한건 아니다'라고 얘기하는 상황들이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예전에 웹에이전시에 다녔을 때 가끔 큰소리를 오고 가며 싸우는 상황을 본 적이 있다. 프로젝트 일정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프로젝트 매니저가 개발자에게 [오늘 안에 전체 코드를 바꾸고 다시 개발을 할 수 있냐는] 즉 말도 안 되는 질문을 하였고, 개발자는 오늘 하루 안에 절대로 불가능하다며 일정을 다시 바꾸라고 항의하였다. 만약 매니저가 개발자의 프로세스를 알고 얼마나 오래 걸리는 작업인지 알았다면 절대 무리하게 업무를 강행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결국 그 개발자는 몇 번씩이나 개발 일정을 고려하지 않는 매니저의 행동으로 인해 퇴사를 결심하였다.


나 또한 비슷한 일이 있었는데, 한 번은 상사가 내게 80p나 되는 애뉴얼리포트를 3일 만에 완성시키라는 업무를 주었다. 도저히 이 일정은 불가능하다고 1주일 정도의 여유를 달라고 하였지만 그는 내게 프로젝트 일정은 이미 고객사와 협의하였기 때문에 변경할 수 없고 그냥 3일 만에 디자인을 하라는 말만 하였다. 결국 그때 나를 포함한 동료 디자이너들은 그 업무를 해결하기 위해 밤샘과 철야를 3일 동안 해가며 80p가 되는 디자인을 완성하였다. 사실상 이는 너무나 무리한 일정이라 할 수 있고, 상사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부하직원에게 할 수 있는 업무적 폭력이라고 할 수 있다. 만약 그가 디자인이라는 게 디자인만 하는 게 아니라 소스를 찾고 이미지를 보정하고 하나하나 세밀하게 편집하는 과정이 얼마나 오래 걸리는지 조금이라도 알았다면 절대로 그런 무리한 일정을 강행하진 않았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라도, 이런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프로세스를 잡아야 한다. 디자이너의 옆자리에 와서 말로 대충 설명하고, 수많은 수정사항을 문서도 없이 전화 한 통으로 해결하고, 디자이너의 영역이 아닌 부분에 대해서도 요청하고, 업무상 무리한 일정을 강행하는 일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우리에겐 프로세스가 필요하다.



그렇다면 도대체 디자인 프로세스는 어떻게 진행될까?

디자인 프로세스는 디자이너, 기획자뿐 아니라 디자인을 의뢰하는 클라이언트의 경우도 필수로 알고 있어야 효율적인 업무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디자인 회사에 근무하던 시절, 고객사가 업무를 의뢰하면 나는 가장 먼저 <디자인 프로세스>에 대해서 안내를 하였다. 그리고 협의된 기획과 작업 일정에 맞춰 프로세스 가이드를 제시하였고, 간 단계마다 서로의 업무를 확실히 분장하여 프로젝트를 리딩 하였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디자인 업무가 진행될 예정이니 이 단계에서는 어떤 자료를 준비해주시면 됩니다.”
“이 단계에서는 디자인 콘셉트가 확정되니 더 이상의 콘셉트 변경은 어렵습니다.”  

각 단계별로 디자이너와 기획자 클라이언트가 어떤 역할을 수행해야 하고, 또 서로가 어떻게 소통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안내하였다. 이 가이드는 향후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서로 간의 뒤틀림 혹은 오류를 방지하기 위함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 이제 각 단계별로 어떠한 수행과 소통을 해야 할까?


<시각디자인 프로세스>

시각디자인 프로세스는 크게 다섯 단계로 이루어져 있다. 이는 많은 디자인 회사(디자인을 전문으로 하는 회사)에서 진행하는 디자인 프로세스라고 할 수 있다. 물론 회사마다 세부적인 프로세스가 다를 수 있고 소통하는 방법이 다를 수 있지만 큰 맥락에서 아래와 같은 과정을 벗어나지 않는다.

계약 - 콘셉트 기획 및 제안 - 디자인 시안 작업 - 디자인 시안 확정 - 디자인 수정 - 검수 및 최종 제작

1. 계약

업무를 시작하면 가장 먼저 계약 단계를 거친다. 합리적인 가격으로 디자이너와 클라이언트 사이의 믿음을 약속하는 단계이다. 디자인 계약을 할 때에는 시안 개수에 따라 금액이 달라지기 때문에 시안을 몇 개로 할지 확실하게 기재하고 상호 협의된 내용(프로젝트 일정, 기타 협의사항) 등을 기재하여 클라이언트와 대행사가 각각 한 부씩 나눠갖는다.


2. 콘셉트 기획 및 콘셉트 제안

디자인을 어떻게 해나갈지 전체 방향성을 협의하는 단계이다. 클라이언트가 방향성과 콘셉트를 정해놓고 디자이너에게 의뢰하는 경우에는 이 단계가 생략될 수 있겠지만, 방향성을 어떻게 할지 정하지 않은 상황에서는 디자이너(혹은 기획자)가 콘셉트를 기획하여 클라이언트에게 제안을 한다.

“이 방향성에는 이 콘셉트가 맞는 것 같은데 어떠세요?”
“네 좋습니다. 이 방향대로 작업 요청드립니다"

즉 콘셉트 기획 단계는 디자인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고 만약 이때 콘셉트가 모호하고 불확실하게 정해진다면 향후 모든 게 원점으로 돌아오는 일이 생길 수도 있다. 앞으로 작업할 디자인의 지표가 되는 만큼 중요한 단계이니 클라이언트와 디자이너, 디렉터가 모두 참여하여 함께 협의하고 설계해 나가야 한다.


3. 디자인 시안 작업

협의된 콘셉트로 디자이너가 시안을 제작하는 단계이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디자인할 때 가장 중요한 건 앞의 기획단계에서 협의된 콘셉트로 정해진 시안의 개수만큼만 디자인을 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ex) 미니멀한 콘셉트로 2안을 제작하거나, 미니멀한 콘셉트에서 1안 역동적인 콘셉트에서 1안 ㅡ 물론 정해진 시안 개수보다 더 많고 좋은 시안이 나온다면 서비스 측면에서 제안을 할 수도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협의된 시안 개수에 맞추어야 디자이너와 작업자들이 효율적인 업무환경 아래 일을 할 수가 있다.


4. 디자인 시안 확정

디자인 시안은 같은 콘셉트 아래 두 가지로 제시할 수도 있고, 각각 다른 콘셉트로 한 가지씩 제시할 수도 있다. 이렇게 디자인 시안이 나오면 클라이언트는 디자인 시안에 대해 확정을 짓는다. 이 단계에서 많은 클라이언트들은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 시안이 모두 마음에 들어서 어떤 게 가장 좋은 디자인인지 선택하지 못하거나, 반대로 마음에 드는 게 없어서 선택하지 못하는 경우일 것이다. 이때 어떠한 말도 없이 수동적으로 기다리는 건 작업이 처음으로 돌아갈 확률이 높기 때문에, 클라이언트가 생각을 확실하게 정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보다 구체적인 근거를 제시하면서 그저 눈에 예쁘고 멋진 디자인이 아닌, 올바르게 잘 된 디자인으로 클라이언트를 리딩 할 수 있어야 한다.


5. 디자인 수정

여러 개의 시안을 보고 최종적으로 디자인을 확정했다면 디자인 수정 단계를 거치게 된다. 이 단계에서는 <기획 단계에서 협의된 콘셉트> 아래에서만 수정을 해야 한다. 다시 말해 정해진 콘셉트를 바탕으로 <디테일 요소>만 수정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디테일 수정이 아닌 아예 다른 콘셉트의 디자인으로 수정 요청을 한다면 클라이언트와 작업자 모두가 정신적 육체적 감정적으로 지쳐버리게 될 것이다. 물론 마음에 들 때까지 디자인 시안을 받아보기 위해 추가 계약을 하고 다시 처음부터 디자인을 할 수도 있겠지만, 작업시간이 딜레이 되어 계약 시 논의했던 프로젝트 일정을 맞추기가 매우 힘들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앞의 기획 단계는 너무나 중요고, 디자인 수정 단계에서는 <콘셉트>이 아니라 오로지 <디테일 요소>만 수정되어야 한다.

*디테일 요소: 폰트, 컬러, 요소들의 크기 및 배열, 명도와 채도, 자간과 행간, 내용 수정 및 교정


6. 디자인 검수

디자인을 실제 적용하기 전, 혹은 인쇄하기 전 검수하는 단계이다. 잘못된 내용 및 오탈자와 같은 아찔한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 꼭 검수 단계가 필요하다. 이 때는 디자이너가 혼자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디자이너, 기획자, 그리고 클라이언트가 여러 번의 더블체크를 하여 오탈자 및 내용을 교정해야 한다.

1) 내용 기획자: 잘못 기입된 내용 혹은 오탈자가 없는지 검수하여 최종 확정된 원고를 넘긴다. 수기로 작성된 기획안의 경우 디자이너가 하나씩 입력하느라 오탈자가 발생될 확률이 높기 때문에, 기획자는 디자이너에게 오탈자가 없는 한글(워드) 파일로 넘기는 것이 가장 안전하고 효율적이다.

2) 디자이너: 최종 확정된 원고로 디자인을 진행하고, 디자인이 완료되면 기획원고와 디자인을 대조하여 내용을 체크한다. 이때 누가 봐도 오타인 부분(ex 앙녕하세오. 새 해보 많이 받으세요.)에 대해서는 디자이너가 먼저 제시하여 고치는 것도 좋지만, 그렇지 못했다고 해서 잘못된 건 아니다. 최대한 원고와 대조하여 잘못된 부분이 없는지 체크하도록 한다.

3) 클라이언트: 디자이너와 기획자가 모두 내용 검토를 완료하였다면, 클라이언트도 자사 결과물에 잘못된 내용이 없는지, 오탈자는 없는지 다시 한번 체크를 하여 최종 검수를 완료한다.


7. 최종 제작

웹상에 올라가는 콘텐츠라면 이미지를 사이즈에 맞게 저장하고 사이즈별로 바리에이션 하는 게 될 수 있고, 인쇄물이라면 인쇄용 파일로 출력하여 인쇄 교정을 한 뒤 납품하는 것까지가 최종 제작이라고 할 수 있다.



만약 프로세스가 없다면 대부분의 디자이너들은 아래와 같은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1) 완료된 기획안으로 디자인을 진행했는데 전혀 다른 콘셉트로 수정 요청이 들어와 처음부터 새로 디자인을 해야 한다. → 콘셉트 및 원고 기획이 모두 완료된 상황에서 디자인을 진행하는 것이 맞고, 디자인 수정은 콘셉트 수정이 아닌 디테일 요소를 수정할 수 있도록 협의해 나간다.
2) 정해진 콘셉트가 없다 보니 마음에 들 때까지 디자인을 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고, 디자이너는 자신의 실력보다 훨씬 평가절하 된다. → 마음에 들 때까지 디자인을 하는 것보다는, 기획단계를 명확하게 하여 정해진 일정 안에 효율적으로 업무를 할 수 있도록 협의해 나간다.
3) 상사에게 컨펌을 받고 진행했는데, 갑자기 나타난 대표님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콘셉트를 바꾸라고 한다. → 디자인 콘셉트에 대해 논의할 때 상사와 대표님까지 함께 참여하여 함께 논의해야 한다. 디자인이 모두 완성되고 갑자기 제삼자가 컨펌을 하여 원점으로 돌아가는 건 매우 비효율적이다.
4) 디자이너가 내용 검수 및 오탈자 교정까지 하도록 권유한다. → 디자이너는 기획원고와 디자인을 비교하며 검토하고, 기획자는 잘못된 내용이 없는지 원고 자체를 검토하여 서로 확실한 업무분장을 한다.






모두 디자인 회사에 근무할 때 실제로 겪었던 상황들을 예시로 들어보았는데, 이는 아주 대표적인 상황일 뿐 세세한 문제는 아마 생각보다 더 많을 거라 생각된다. 주위의 많은 디자이너 지인들이 이와 같은 문제로 힘들어하고 퇴사를 결심한다. 이유는 단 한 가지, 프로세스가 없기 때문이다. 물론 디자인적 욕심으로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여 더 많은 시안과 퀄리티를 뽑아낼 수 있겠지만 개인적인 경험 상 뿌듯함보다는 프로세스의 부재로 인한 감정적 리스크가 더 크게 다가왔었다.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디자이너는 물론 디자이너와 소통하는 모든 사람들이 프로세스에 대해 정확하게 알고 있어야 하고, 프로세스가 제대로 잡히면 업무의 효율성은 물론 결과물의 퀄리티까지 자연스럽게 따라온다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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