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nother branding Oct 05. 2021

학생 디자이너와
실무 디자이너의 차이

같은 모양이지만 색은 전혀 다른, 학생과 실무 디자이너의 차이

나는 대학 4년을 거쳤고, 그 이후 실무에서 수년을 디자이너로 경험했다. 그리고 그동안의 경험에 의한 (감상에 불과한) 나의 생각을 적어볼까 한다. 즉 뚜렷한 이론이나 사실에 근거한 글은 아니며, 개인의 경험마다 생각은 다를 수 있다. 이 글을 학생 디자이너, 실무 디자이너뿐 아니라 디자인 업계에 종사하고 있는 기획자 혹은 클라이언트 모두가 보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학생 디자이너와 실무 디자이너'
모양은 같지만 색깔은 전혀 다른 두 디자이너는
어떤 맥락에서 어떤 차이점이 발생하고, 또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1. 학생 디자이너는 스스로 익히는 과정이 필수적이다.

디자인이란 분야는 기본적으로 '감각'을 익혀야 한다. 나는 디자인을 항상 음악에 비유하고는 한다. 음악에는 코드(chord)라는 것이 존재하는데, 세상에 존재하는 음들을 듣기 좋게 정해놓은 것을 바로 코드라고 한다. 악기를 처음 배우는 사람들은 이 코드부터 익힌다. 코드의 조합법을 머리로 익히고, 코드를 잡고 치는 방법을 손으로 계속 연습한다. 그러나 디자인 분야는 코드처럼 정해놓은 시각 조화가 없다. 예를 들어 '좋은 폰트'는 존재하지만 이 폰트를 '조화롭게' 쓰는 방법에 대해서는 정해진 규칙이 없다는 것이다. 그 어떤 디자이너도 이 규칙에 대해서 정리해 놓지는 않았다. 결국 디자인을 처음 공부하는 학생은 조화로운 디자인을 만들어내기 위해 시간과 공을 들여 많은 시간 스스로 고민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졸업을 하고 회사에 취업을 한지 얼마 안 된 상태에서 나는 이런 불만(?)을 가진 적이 있다. '왜 학교에서는 실무 프로세스에 대해 1도 알려주지 않았던 거지?' 사실 이 불만은 얼마 전까지도 해왔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왜 대부분의 학교에서 실무에 대해 알려주지 않았는지 비로소 알게 되었다. 내가 배웠던 교수님은 항상 정답을 말씀해주지 않고 아래처럼 대답하셨다.


"교수님 이 음악이 듣기 좋고, 인기가 있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교수님 : "일단 들어봐, 그리고 생각해봐"


교수님은 나의 질문에 항상 정답 대신 우회적인 대답을 하셨다. 학생 스스로에게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또 그런 생각들이 스스로 떠올랐을 때, 비로소 자신의 것이 된다고 믿으셨던 분이셨다. 내가 배웠던 이 교수님 뿐 아니라 대부분의 교수님들은 디자인을 스스로 할 수 있어야 한다 생각하고 그렇게 가이딩을 해주셨다. 어린 나이 때는 이런 가이딩조차 불만이었다. '책 보고 검색하면 다 나오고 찾을 수 있는데, 그냥 말해주면 어디 덧나나' 이런 생각이었다.(철이 없었던 시절) 그러나 지금의 나는 이런 불만을 가지고 스스로 찾는 과정이 있어야 비로소 <자기 것>이 된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즉 '디자인의 조화를 익히기 위해 디자이너 스스로 깨달아야 한다'는 것인데, 이는 많은 디자이너들이 공감할 거라 생각한다.


이렇게 학생 때는 모든 감각과 시각을 스스로 익히고, 누군가의 도움 없이도 아름다운 디자인을 만들어낼 수 있도록 습득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어떤 음의 조화가 아름다운 코드인지, 어떤 코드가 듣기 좋은 코드인지 스스로 깨닫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2. 실무 디자이너는 스스로 익힐 시간이 없다.

반대로 실무 디자이너는 스스로 익힐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 누구도 그 시간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실무는 여태까지 익혔던 디자인 감각을 가지고 주어진 시간 내에 결과물을 내야 하는 위치이다. 코드를 잡는 법에서 벗어나, 코드를 가지고 실제 연주를 해야 하는 상황이다. 연주자가 무대 위에서 연주를 해야 하는 것과 비슷한 상황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그 어떤 연주자도 관객들이 보는 무대 위에서 '연습'을 하지는 않는다. 관객들이 보지 않는 무대 뒤에서 피나는 연습을 하고, 관객들 앞에서 연주를 하고 평가를 받는다.


디자인도 마찬가지로 회사에서는 결과물을 내야 한다. 그렇기에 생각할 시간이 아닌 정답을 말해주는 사람이 필요하다.(사수의 중요성 혹은 기획자, 클라이언트의 중요성) 그리고 밀린 다음 일을 쳐내기 위해 지금 주어진 일을 해결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바로 '프로세스'이며 '협의'라고 할 수 있다. 학생 때처럼 하나의 결과물의 퀄리티를 높이기 위해 밤을 새우며 고민하는 게 아니라, 이 디자인의 비용은 얼마인지 언제까지 해야 하는지 파악한 뒤 그에 맞는 시안과 프로세스로 업무를 해야 한다. 그렇기에 실무 디자이너는 스스로 익힐 시간이 없다. 예를 들면 내가 5만 원 받고 로고 하나를 만드는데, 학생 때처럼 날밤 새며 퀄리티에 대해 고민을 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반대로 내가 엄청난 고액을 받고 브랜드 컨설팅을 진행한다면, 날밤을 새서라도 그 가치에 맞는 결과물을 내야 한다.


그러나 디자이너를 대하는 사람들, 혹은 디자이너 스스로도 <학생 디자이너>의 마인드로 대하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회사에서 디자이너에게 너무나도 쉽게 "퀄리티가 안 나오네?"라고 말하며 디자이너를 판단하는 건 정말로 잘못된 행동이다. 회사 내에서 디자이너가 퀄리티를 못 낼 수밖에 없었던 환경을 생각하지 않고, 작업할 수 있는 시간을 고려하지 않고, 프로세스를 고민하지 않고, 작업 비용을 생각하지 않고 쉽게 판단해 버리는 건 정말로 잘못된 행동이다. 누군가는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

"야근 안 해? 다른 디자이너들은 퀄리티 높이기 위해서 야근하던데" 그럼 나는 이렇게 대답하고 싶다.

"야근보다 중요한 게 근무 협의 아닌가요? 밤낮 가리지 않고 일을 시킬거라면 경력자 말고 학생인턴 뽑아서 고민시키세요."


물론 디자인 결과물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 사람은 존재한다.

1) 돈을 주는 클라이언트 혹은 대표이사 2) 함께 기획에 참여한 모든 자

그러나 업무를 의뢰하지도 않은, 참여하지도 않은 제 3자는 절대 디자인에 대해 왈가왈부할 수 없다.


*자신이 회사를 다니고 있지만 능력이 없다고 판단되면 퇴근 후 어떤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스스로의 실력을 키워야 한다. 그리고 이건 스스로가 깨닫고 발전시켜야 할 문제이지 상관없는 누군가가 간섭하고 통제할 문제는 아니다.


그런데 최근 참 재미있는 일이 있었다. 어떤 외주 프로젝트에 우연히 참여를 하게 되었다. 당시 마감기한은 너무나도 촉박했고, 며칠밤을 새서라도 진행을 해야 하는 긴급 프로젝트였다. 그 외주 담당자도 내가 아니면 당장 업무를 진행할 사람이 없었기에(지금 생각해보니 그 담당자와 왜 다들 일하기 싫어하는지 알 것만 같다) 거절을 할까 하다가 어쩔 수 없이 프로젝트를 응하게 되었다. 물리적으로 힘든 일이었지만, 중간에 소개해준 지인을 생각해서 최대한 열심히 진행했고 프로젝트 완료 후 지인도 결과물이 잘 나왔다며 좋아했다. 그런데 한참 뒤 외주 담당자에게서 연락이 왔다. 그 당시에는 결과물을 보고 피드백조차 하지 않고, 결과물을 고객사에게 보내서 고객사조차 디자인을 잘 사용하고 있는데


"소개받아서 한 거니 어쩔 수 없이 진행하긴 했지만, 아직 OO님은 배울 부분이 참 많네요."

디자인을 할 때 그 어떤 단계도 참여하지 않은 사람이, 긴급 일정으로 밤을 새우고 업무를 한 사람에게 한다는 말이 '고맙다'가 아닌 가르치는 듯한 '평가'라니... 정말 재밌고 신선한 충격이었다. 나중에 지인에게 이 사실을 말하니 지인도 너무 미안해하며 다시는 사람을 소개하지 못할 것 같다며 연신 사과를 했다. 그 뒤로 들은 소식은, 매번 긴급 프로젝트가 쌓여가는데 안 좋게 소문이 났는지 디자이너도 채용되지 않고, 일해줄 프리랜서조차 없어서 회사가 망해가고 있다는 소문뿐이다.





간략하게나마 학생 디자이너와 실무 디자이너의 차이를 정리해 보았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실무 디자이너를 학생처럼 대하고 여기는 게 참 씁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디자이너는 정해진 비용을 받고 정해진 기간 안에 일을 해야 하는 근로자일 뿐, 예술가가 아닌데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디자이너는 예술가가 아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