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이너 스스로 가져야 할 마인드, 디자이너를 대해야 할 마인드
디자이너는 예술가가 아니다. 디자이너다.
“디자이너는 예술가가 아니다”
디자인 공부를 수년 동안 한 학생들 혹은 실무에서 많은 경험을 쌓은 디자이너들에게 이 말은 너무나 익숙한 말이다. 그렇기에 '왜 이토록 당연한 말을 하고 있는 거지?'하고 의문이 들 수 있다. 실무에서 8년 가까이 일해본 경험을 빗대어 보면 (혹은 주변인들의 일하는 방식을 보고 있으면) 10명 중 7명 정도는 <예술가>처럼 일을 하고 있다. 디자인을 공부한 사람들, 혹은 실무에 있는 모든 디자이너들도 디자이너가 예술가가 아니라는 걸 알고 있지만 정작 실무에서는 생각하는 것과 다르게 행동했다.
그럼 정확하게 무엇이 예술가처럼 일 하는 것이고, 무엇이 디자이너처럼 일 하는 것일까?
흔히 통용되어 있는 '예술처럼' 말의 속 뜻은 ‘마음대로 하는 것’ 혹은 ‘주관적인 해석으로 이루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즉 '예술처럼 디자인을 하지 마라'는 디자인에 너무 자신의 해석을 담으면 안 된다는 뜻이다. 디자이너로서 충분한 소통을 하고, 합의된 소통을 바탕으로 예상할 수 있는 논리적인 결과물을 만드는 것이 디자이너가 가져야 할 역할(마인드)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예상할 수 있는 디자인을 하기 위해서는 기획자 혹은 클라이언트와 합의하는 과정 또한 정말 중요한 부분이다.
디자이너는 개인의 취향과 해석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목적에 맞는 결과물을 만들어야 한다. 조금 더 자세히 얘기해보면, 개인 취미로 하는 디자인이 아닌 경우, 즉 <상업 디자인>은 대부분 이윤을 목적으로 한다. 이렇다는 것은 결국 디자인에는 <목적>과 <콘셉트>가 꼭 필요하고, 목적에 맞는 디자인을 협의된 금액 아래 협의된 시안 개수로 만들어야 한다는 뜻이다. 또한 협의된 수정 횟수만큼 수정을 하여 디자인을 완료해야 하는데 현실에서는 이 부분이 잘 지켜지지 않는 부분이다.
이와 같이 '상업 디자인'을 잘 진행하기 위해서는 기획이 정말 중요한데, 현실의 많은 클라이언트들은 이러한 기획의 중요성을 너무나 간과하는 경향이 있는 듯하다.
모든 디자인은 기존에 완성된 레퍼런스를 바탕으로 '유에서 또 다른 모습의 유를 만들어내는 것'이지 무에서 유를 창조해내는 업이 아니다. 그러나 디자인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디자인이 철저한 과정 속에서 이루어지는 '일'이라 생각지 않고, 구체적인 레퍼런스 없이 막연한 요구를 하며 협의된 시안과 수정 횟수를 신경 쓰지 않고 계속적인 업무를 요청하고 있다. 좋은 결과물을 얻기 위해서는 명확한 협의와 기획이 필요하다는 것인데, 현실적으로는 디자인을 하고 있는 대다수(디자이너, 기획자, 클라이언트)가 이 사실을 모르고 있다. *디자이너를 예술가로 생각하지 말아야 할 사람은 디자이너뿐 아니라, 디자이너와 일을 하는 클라이언트/기획자도 포함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렇기에 그저 막연히 “해줘” 하며 요청을 하고 "막연히" 작업을 하고 있다. 정말 별거 아닌 요소 하나로 공들인 시간만큼 재작업을 해본 디자이너라면 이 글이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이해될 거라 생각한다.
"디자인 퀄리티가 낮은데 프로세스가 소용이 있나요? 그냥 디자인 쳐내면 되죠"
라고 말하는 분들이 종종 있었다. 이 말에 나는 되묻고 싶다. '디자인을 평가할 수 있는 자격이 있는지'
그리고 자격을 갖추려면 기획과 디자인에 들인 시간이 어느 정도인지, 어떠한 소통 과정이 있었는지 그 과정 속에 함께 있었어야 한다. 또한 평가 한마디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위치에 있어야 하는데 과연 본인은 그 과정에 함께 있었고 그러한 위치에 있는 사람인지 궁금하다.
물론 정말 디자인적 기본이 부족해서 예상 밖의 수준 낮은 디자인이 나오게 된다면 그 디자이너는 디자이너로서 자격이 없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런 디자이너라면 애초에 포트폴리오에서 탈락되는 게 맞고, 이미 서류전형에서 통과가 되었다는 건 <디자인적 기본>은 있다고 볼 수 있다. 스스로 본인의 판단하에 디자이너를 선택해놓고 그 결과물에 아무런 참여도 없이 단순한 불만을 표시하는 건 프로세스에 의한 논리적 판단이 아닌 개인적 감상에 의한 가벼운 말 한마디일 뿐이다. '일'에 자신의 감정과 감상을 섞지 말기를, 그리고 쉽게 판단하지 말기를 바란다.
에이전시나 대행사에서 아트디렉터가 아닌 경우, 디자이너 스스로 주도권을 가지고 리드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대부분 디렉터나 클라이언트의 요구에 맞춰 이루어진다. 디자이너가 디자인을 정확하게 잘하기 위해서는 그만큼 첫 단추를 잘 꿰어야 하며, 클라이언트와 소통하는 자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앞서 얘기했지만 디자이너의 역할은 막연한 시각적 감성을 채우기 위한 역할이 아니다. 상업 디자인은 철저하게 목적이 있고, 그 목적에 맞는 성격과 콘셉트가 존재하기 마련이고, 이 기반을 잘 닦는 것이 소통하는 자의 역할이다. 물론 자세히 더 따져야 할 문제로 <원고 기획>과 <디자인적 기획>은 다른 부분이며 후자인 <디자인적 기획>은 디자이너가 대부분 진행하기도 한다. 디자인을 하기 위한 '앞단의 작업'을 누가 하든 간에 기반을 잘 마련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또한 이 과정이 디자인 결과물에 큰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어야 한다.
디자인은 클라이언트 혹은 기획자와 합의된 내용을 바탕으로 철저한 프로세스 아래에서 일이 이루어져야 하는데 이러한 과정 없이 일을 한다는 건 '디자이너의 노동을 가볍게 여긴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디자이너 스스로도 '가볍게' 일하지 않기 위해는 어떤 과정을 통해 일을 해야 하는지 인지하고 클라이언트에게 자신감 있게 소통을 시도하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 <좋은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 막연히 끊임없는 수정을 반복하는 것보다는, 어떤 과정에서 오류가 있었는가를 먼저 고민해보고 직접 나서서 소통을 시도해야 한다는 뜻이다. 기획에 대해 잘못된 점을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용기도 필요하며, 원활하게 대화를 이끌어나갈 수 있는 능력 또한 필요하다.
그렇기에 디자이너는 막연히 불특정 다수의 만족을 위해 존재하는 예술가가 아니다.
디자이너는 다른 무엇도 아닌, 디자이너이다.
오늘도 예술가인척 하느라 모두 수고 많으셨습니다
(과거, 스스로를 예술가라고 생각했던 나 스스로를 반성하며, 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