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이너를 존중하지 못하는 말들
디자이너들은 왜 이렇게 예민할까?
나 또한 디자이너로서 스스로 예민하다는 생각을 해본적이 있고, 주위 동료들로부터 직접 들어본 적도 있다. 그런데 과연 디자이너들이 예민한건지 상황이 예민한건지, 혹은 나를 향한 가시돋힌 말들이 나를 예민하게 만드는 건지 여러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정답은 '위의 세 가지 상황 모두 해당된다' 는 것이다.
말 그대로 디자이너의 성격 자체가 매우 예민하고 섬세할 수도 있으며, 매 순간 1 pixel 1 pixel 씩 꼼꼼히 검토하고 수십 페이지의 타이포그래피들을 교정하느라 상황이 예민할 수도 있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디자이너들은 보통 감정적으로 타격을 입거나 힘들어하지 않지만 마지막 상황인 ‘나를 향한 가시돋힌 말들’ 은 디자이너를 예민하게 만드는 것은 물론 감정적으로 타격을 주고 디자이너로서 자존감을 하락하게 만들어버린다.
디자이너라는 직업은 필연적으로 누구와 의사소통을 해야하는 직업이다. 가장 밀접한 관계는 기획자와 마케터가 될 수 있고, 더 나아가서는 내가 피드백을 듣지 않고 싶은 사람이나 피드백할 권리가 없는 사람에게조차 디자인을 평가(간혹 저평가) 당하고 감정적으로 상처되는 말을 들어야 한다. 가장 대표적인 말로는 “이 디자인은 나도하겠다” “이게 디자인이야?” 등의 말들
업무를 하면서 팀장, 사수, 대표이사 그리고 동료들과 피드백을 주고받는 것은 전혀 문제가아니다. 디자이너의 업무는 수직적이 아니라 수평적이어야 상호 피드백을 주고받으며 훨씬 더 좋은 결과물로 발전할 수가 있기때문이다. 만약 주니어 디자이너라면 사수와 팀장의 피드백을 통해 업무스킬과 프로세스 측면에서 더욱 성장할테고, 팀장이라면 팀원들과 피드백을 주고받으며 자신이 발견하지 못한 부분을 발견해 좀 더 좋은 결과물로 완성시킬 수가 있을것이다.
이때 중요한 건, 서로 피드백을 주고받을 때에도 팀장이 직원에게 강압적이고 명령적인 어투로
“이렇게 해” “내 생각이 맞아” “네 디자인은 틀렸어” 라는 식의 의사소통은 결코 업무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러한 강압적인 말들은 결국 윗사람의 기분을 맞추고 윗사람의 스타일대로 디자인을 맞추는 것이기 때문에 디자인적인 발전을 전혀 할수가 없을것이다.
그렇다. 피드백은 필연적이다. 하지만 디자이너를 향한 가시돋힌 말들은 절대 필연적이지 않다.
이전에 누군가 나에게 “OO씨는 누가 자기 디자인에 대해 피드백하는 것에 대해 되게 싫어하더라?” 라고 말한적이 있는데 나는 피드백을 하는 것 자체를 싫어한 것이 전혀 아니다. 단지 그들이 피드백을 할 때 나에게 대하는 태도가 싫었기때문에 예민함을 표출하였다.
예를들면 홈페이지와 아이덴티티를 맞춰 회사소개서를 제작해야 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힘껏 홈페이지에서 디자인 컨셉을 추출하였더니 “홈페이지랑 좀 비슷한데? 그냥 갖다 붙인 거 아니야?” 라는 말을 하고, 미니멀한 컨셉에 맞춰 심플한 디자인을 하였더니 “이거 박스는 누구나 다 만들수있지 않나?” 라는 등의 디자인적 피드백이 아닌 그들의 감정을 표출하는 말들을 하곤 했다. 이런 피드백은 진심으로 디자인이 발전하길 바라는 게 아니라 일부러 지적할 거리를 만들어내서 디자이너를 깍아내리는 말로밖에 볼 수 없다.
“그냥 갖다 붙인 거 아니야? ” → “홈페이지에서 이 부분이 똑같은데 그대로 발췌한건가요?”
“이거 박스는 누구나 다 만드는거 아니야?” → "이건 좀 심플한것 같은데 조금 더 보완할 수 있나요?"
디자이너는 하나의 디자인을 위해 시장조사와 경쟁사 리서치까지 마친 후 어떻게 하면 현재의 내용이 디자인적으로 돋보일 수 있을지 여러번의 고민을 통해 결과물을 완성시킨다. 하지만 결과물만 본 사람들은 그 디자인이 얼마나 복잡한 과정을 통해 만들어졌는지 알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디자인을 피드백하는 사람은 무작정으로 디자인을 평가 하기전에 어떤 의도에서 이런 디자인을 하였는지 의사소통이 필요한 것이다.
"이 박스는 누구나 그리는거 아니야?" → 디자이너를 존중하지 못하는 대화
"이 박스는 어떤 의도에서 넣은거에요?" → “경쟁사와 트렌드를 분석한 결과 소비자들은 너무 임팩트 있는 디자인보다는 이런 심플한 스타일을 추구하고 이게 좀더 디자인적으로 가독성이 좋을것 같아요”
말투 하나가 달라지고, 디자이너가 어떤 의도에서 이런 요소를 넣었는지 묻는 것 자체로 디자이너는 그저 평가당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여러 관점에서 설명을 할수가 있다. 만약 누군가가 마케터의 트렌드결과 보고서를 보고 “이러한 분석은 인터넷 검색하면 나오는데” 라던가 기획자가 만든 기획안을 보고 “이 정도 기획은 나도 하지” 라고 말한다면 그들은 예민한 성격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상대의 가시돋힌 말(과정을 보지 못하고 하는 말)들로 인해 예민함을 표출할 것이다.
일이 힘들어도 사람 덕분에 버틸 수 있고, 사람이 힘들어도 일때문에 버틴다는 말이 있다. 그런데 대부분은 사람이 힘들어서 그만두는 경우가 훨씬 많고 나 또한 일은 너무나 힘들었지만 같이 일하는 사람들과의 좋은 관계덕분에 힘든 일들을 견뎌낼 수 있었다. 이처럼 동료간에 의사소통 능력은 이제 더이상 업무 외적인 요소라고 보기는 어렵다.
무심코 던진 피드백이 상대에게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질지, 상대가 예민한게 아니라 내가 예민하게 만든 것은 아닌지 한번 더 생각하고 대화하는 것이 좀더 나은 결과물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우리 모두가 꼭 기억하길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