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nother branding Jun 28. 2020

일할 때 호칭이 얼마큼 중요할까?

나도 모르게 작용하는 호칭의 심리적 요인

많은 회사들을 거쳐오면서 다양한 호칭들을 경험해보았다.


신입시절에는 "~씨" 혹은 "~님" 
직급이 있는 회사에서는 "주임님" 혹은 "대리님" 
직급이 없는 회사에서는 "~님" "~디자이너님" 
디자인팀 팀장일 때에는 "팀장님" 혹은 "본부장님" 
스타트업, 미국계 회사에서는 "디자이너님"

사실 그동안은 '업무를 함에 있어서 호칭이 과연 중요할까?'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지만 최근 들어서 업무를 할 때 상대를 대하는 것에 있어서 '호칭'이 가장 먼저 작용한다는 점을 느낄 수 있었다. 




01.

한 미국계 스타트업에 단기로 근무를 한 적이 있다. 7년 차의 경력으로 디자인팀의 팀장직으로 입사를 하였고 호칭은 이름+팀장님이었다. 한국어가 서투른 대표(미국 출신)와 가끔 업무 문제로 깊은 심층대화를 나눈 적이 있는데, 대표는 기분이 좋을 때면 내게 "팀장님"이라고 불렀지만, 가끔 의견이 충돌되거나 자신의 의견과 다를 경우 묘하게 기분이 안 좋은 티를 내며 "디자이너님" 하고 분위기를 잡았다.

'팀장님'이라며 호칭을 할 때에는 '그 어떤 의견도 당신의 의견을 존중하고 받아들이고, 경력자로서 인정을 한다'는 신뢰 가는 표정으로 나를 대했지만 '디자이너님' 이라며 호칭을 부를 때에는 '당신의 의견은 옳지 않으며, 대표자인 내 말이 옳다.'라는 행동으로 나를 대했다. 처음 겪었을 때에는 그저 한국말이 서툴러서 그런 거라고 생각했지만 매번 업무회의를 할 때 그가 호칭에 따라 직원을 우대 혹은 하대하는 모습을 보며 호칭과 사람을 대하는 태도의 상관관계를 어느 정도 생각하게 되었다.


02.

스타트업에 잠시 상주하여 단기 프로젝트를 진행한 적이 있다. 자유분방한 분위기 속에서 호칭 또한 각자 편하게 "~님"으로 통일하였다. 프로세스 결과물이 잘 나오고 그들이 원한 요청사항을 단 한 번의 질문도 없이 바로 이해하고 완성하였을 때에는 "~님" 하는 호칭으로 업무에 대한 얘기를 나눴지만, 가끔 어떠한 질문을 하거나 불합리한 업무 프로세스에 대해서 얘기를 할 때에는 귀찮다는 표정과 "~씨"라는 호칭으로 나를 대하곤 했다.


03.

에이전시에서 디자인팀을 총괄하였을 때 대외적인 호칭은 "팀장님" 혹은 "본부장님"이었다. 많으면 매일같이 클라이언트를 대면하며 미팅을 해야 했는데 그때마다 클라이언트들의 반응은 제각각이었다. 20대 후반의 젊은 주니어 디자이너인 줄 알았다가 명함에 적힌 직함을 본 뒤 정중하게 행동하는 사람도 있었고, 오히려 역으로는 온라인상으로 예의 있게 행동하다가 실제로 대면한 뒤 젊어 보이는 얼굴 때문에 신뢰를 하지 못하겠다는 사람도 있었다. 실제로 업무를 진행할 때에 일정이 급하다며 부탁을 하는 경우에는 나를 포함한 모든 디자이너들에게 정중한 호칭을 사용하다가도, 본인들의 부탁을 들어주지 않거나 다른 불편사항이 생기면 즉시 호칭을 바꾸며 하대를 하는 경우를 종종 보았다.


마치 식당에 갔을 때 종업원에게 "저기요" 혹은 "사장님"이 아니라 "이봐요" "어이 학생, 아가씨"라고 하는 것과 비슷한 경우이다. 친구랑 "~야" 하고 부르다가도 조금 싸우기라도 하면 성을 붙여가며 "야 OOO" 하듯이 우리들은 알게 모르게 호칭에 따라 사람을 대한다는 것이 어찌 보면 맞는 말이기도 하다.



최근 팀을 총괄하고 디렉터 역할까지 한 친구가 많은 경력과 능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디자인은 직급이 아니라 실력이 중요하다'는 생각으로 직급에 연연하지 않고 일반사원으로 입사를 하였다. 주위 친구들도 능력과 경력 대비 하향 이직을 하는 친구를 뜯어말리긴 했지만 '디자인 실력으로 보여주면 된다'는 자신을 가진 그 모습을 보고 조금은 안도를 하였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서일까 친구에게서 도저히 다닐 수가 없어 퇴사를 하겠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 이유는 자기보다 경력이 적은 사람들이 그 회사에 오래 다녔다는 이유로 대리, 과장을 달고 있었고 심지어는 아무런 직급이 없다는 이유로 회의 때 그 어떠한 발언권 조차 주지 않고, 일을 할 때에는 마치 막내 사원을 부리듯 업무를 주곤 한다는 것이다. 본인은 신경을 안 쓰고 사람들을 대했지만 정작 다른 사람들은 그 사람의 경력이나 능력을 보기도 전에 직급에 따라 사람을 하대하는 모습이었고 그러다 보니 자신의 역량을 발휘하려 해도 회사에서는 막내 취급을 받으니 도저히 역량은 무슨 오히려 도태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고 한다. 능력이 있었기에 항상 인정을 받고 대우를 받으면서 일을 하다가 갑작스레 막내가 되니 느낀 것은 회사에서 혹은 사회적으로의 호칭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다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보다 호칭이라는 것이 업무에 있어서 꽤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내 의도와는 상관없이 남들을 대할 때 태도가 달라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나 또한 이런 호칭의 중요성을 그동안 단 한 번도 신경 써본 적이 없지만 최근의 나의 경험과 주위 사람들의 경험을 빗대어 보면 우리가 겪은 것은 물론 어쩌면 우리도 남에게 '호칭'에 따라 다르게 대한 경우가 생각보다 아주 많이 있을 것이다.




호칭이 어떻게 불리던지 그 사람을 하대하지 않고 그 사람 자체로 존중한다는 것이 

사람을 대하는 가장 좋은 태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회사를 판단하는 데에 3일이면 충분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