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nother branding Sep 15. 2020

디자인 피드백을 하는 올바른 자세

기분에 따라 피드백하지 마세요. 일기예보 아닙니다.

디자인 피드백을 하는 올바른 자세

"이 디자인은 뭔가 별로네요"
"느낌이 없어요 느낌이"
"이건 나도 디자인하겠다!"
"보면 볼수록 이상한 거 같아요. 어제는 괜찮았거든요? 근데 오늘은.. 영"



디자이너로서 위의 피드백을 단 한 번도 듣지 않은 사람이 과연 존재하는 걸까?

나는 디자이너이다. 신입시절 주니어 디자이너부터, 디자인 팀장, 총괄 디렉팅(PM) 역할을 차근차근 단계별로 밟아온 정석적인 디자이너 중의 한 명이다. 5~6군데의 에이전시를 걸쳐오며 4번의 사수와 팀장을 만났고, 그 외에는 내가 팀장이 되어 디자인을 디렉팅 하였다. 그 4번의 팀장을 겪어본 결과는 아래와 같다.




#1 - 주니어 디자이너 vs 팀장


처음으로 메인 시안을 잡게 되었다. 아직 신입이니 사수와 팀장의 피드백이 중요했고, 무엇이든 배우려는 의지와 열정이 가득했다. 그저 어떤 피드백을 받더라도 이게 잘못된 피드백인지 모른 채 받아들여야만 했다.

"음, 별로네" "어느 부분을 수정하면 될까요?" "그냥 임팩트가 없는 거 같아.. 다시 해봐 "

수정을 해야만 한다. 어떤 부분이 별로인지 더 이상 말해주지 않고 그저 별로라는 말에 수정을 해야 한다. 힘없는 신입 디자이너였던 나는 다시 수정을 해서 디자인 컨펌을 받는다. 그렇게 시안 1개가 나오기까지 4~5번의 디자인 수정을 거치며 야근을 밥먹듯이 했다. 그렇게 클라이언트는 나의 맨 첫 번째 시안을 채택하였다.




#2 - 2년 차 디자이너 vs 대표


웹디자인을 하며 편집디자인 업무로 넘어온 시기라서 한창 종이에 관심이 많은 시기였다. 디자인을 엄청나게 잘하진 않았지만 어느 정도 메인 시안을 잡아오며 자신감이 붙던 시기였다. 리플릿 디자인을 맡게 되어 열심히 시안을 잡아 대표에게 컨펌을 받았다. "~~ 씨 생각은 어때요? 어떤 생각을 가지고 디자인했어?" 구구절절 나의 디자인에 대한 설명을 하였고, 피드백을 받을 부분에 대해서 물었다. "이 부분은 이 폰트가 들어가면 훨씬 어울릴 것 같고, 여기는 이미지가 강렬하니 여기서 임팩트를 주고 이 부분을 살짝 톤 다운시켜볼까? 그러면 훨씬 더 좋을 것 같은데" 이와 같은 피드백을 들은 뒤 다시 수정하였던 결과물은 클라이언트에게 보낸 뒤 한 번의 수정도 거치지 않은 채 통과되었고 나중에 수정이 간혹 생겼지만, 디자인이 아닌 글자 교정이 전부였다.




#3 - 4년 차 디자이너 vs 20년 경력의 실장


3년 차를 지나면서 디자인에 속도가 붙고 자신감이 많이 늘면서 이제는 디자인 키워드와 컨셉만 들으면 대충 어느 정도의 디자인을 뽑아낼지 머릿속으로 그려졌다. 페스티벌 포스터 디자인을 하게 되었고 컨셉에 맞춰 젊은 느낌으로 디자인을 한 뒤 실장에게 컨펌을 받았다.


"이거 이렇게 디자인할 거야?"

"어느 부분을 어떻게 수정할지 피드백을 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내가 그런 것 까지 말해줘야 해? 알아서 잘할 수는 없어? 다음엔 내가 이런 말 안 하도록 해"

혹시 기분이 안 좋았던 것일까? 디자인이라는 것은 피드백을 받아야 하는 직업이고 보는 눈마다 제각기 다르기 때문에 나에게 '멋진 디자인'도 누군가에겐 '못한 디자인'일 수 있다. 그런데 "이런 말 하지 않도록 해"는 즉 컨펌받을 때의 기분에 맞춰 알아서 잘하라는 말이나 다름이 없다. 실장은 결론적으로 어떤 부분을 수정할지 정확하게 말은 해주지 않았다. 마치 기분 안 좋으니 건들지 말란 듯이 말이다.





과연 위의 피드백 중에 잘못된 피드백잘된 피드백은 어떤 걸까.

여러 명의 사수와 팀장, 대표들을 만나오며 느낀 것이 있다. "아 이 사람은 디자인을 모르는구나"

디자인을 모르는 상태에서 피드백을 하는 사람은 이렇게밖에 말을 할 수 없구나, 하고 말이다.


가장 피드백을 잘해준 경우는 두 번째이다. 그 대표님은 디자이너 출신으로서 디자인 회사의 대표가 되었고, 디자이너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디자인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에 효율적인 피드백을 하였다. (꼭 디자이너 출신이 이니라고 해도 충분히 피드백을 잘 할 수 있다.) 단지 '별로네요' '느낌이 영..' 하는 두리뭉실한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디자이너들이 피드백을 반영할 수 있도록 디자인 전문용어를 활용하여 디테일한 포인트를 발견하고 성장하도록 이끌었던 것이다.


시간이 지나 내가 디렉터의 역할로서 디자이너들에게 피드백을 하는 시기가 되었고, 신입 디자이너가 처음 내게 디자인 컨펌을 요청하였다. 디자인 컨셉은 잘 맞췄지만 디테일적인 요소가 부족하다는 느낌을 받았고 말로서 설명하긴 복잡할 것 같아서 부분적으로 고칠 부분을 이미지로 보여주며 "이 부분은 이런 요소를 활용하면 좋을 것 같다"는 피드백을 하였다. 물론 내가 해온 피드백이 100% 옳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최소한 내가 그 디자이너의 입장이 되어서 실질적으로 듣고 싶은 피드백, 듣고서 반영할 수 있는 방법들을 제시하였다. 예를 들면 폰트, 컬러, 자간 행간, 톤 앤 매너, 이미지의 강약 조절 등의 수정 등

만약 디자인을 한 담당자에게 정확한 피드백을 하지 못한 채 그저 감정적인 느낌으로 얘기를 한다면 디자이너는 피드백을 들은 뒤 책상에 돌아와서 그 어떤 것도 할 수가 없다. 과연 나의 팀장(사수)은 나의 어떤 디자인이 별로였을까? 내가 사용한 도형이 별로인가, 컬러가 별로인가, 아니면 그냥 내가 별로인가? 하는 생각까지 하게 되는 것이다.



항상 강조해도 모자란 말은, 디자인에 대한 의견을 주고받을 때는 기분과 감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방법을 제시해야 하는데 바로 아래와 같은 피드백이 될 수 있다. *아마 디자이너들은 사수와 팀장, 대표에게 이런 피드백을 원하지 않을까.


"(지금 내 기분에 맞춰) 알아서 해봐" (X)
→ 이 컨셉에 맞는 디자인은 이러한 것들인데, 이렇게 디자인하면 좋겠다.
"어제는 괜찮았는데 다시 보니 별로네.." (X)
→ 그날그날의 기분에 따라 피드백하지 마세요. 일기예보 아닙니다.
"느낌이 영.. 임팩트가 없어.." (X)
→ 피드백에 있어서 당신의 '느낌'이 중요하진 않으니 실질적으로 반영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할 것
"이건 나도하겠다. 이게 디자인이야?" (X)
→ 무작정 비판할 것이 아니라, 이 디자인이 컨셉에 맞는지 맞지 않는지 두 가지를 파악하고 피드백할 것






수많은 역경과 고난을 겪고 디자이너를 지나쳐서 팀장이 되었지만 아직도 피드백을 하는 단계는 신입 디자이너에 멈춰있다면 과연 그들은 올바른 디렉터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귀찮아하지 말고, 명확하고 확실한 방법을 제시하는 능력 또한 디렉터로서의 역할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함께 읽으면 좋은 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