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차리기만 했으면 나도 대박 났을 텐데
스타트업이 유행이기 전부터 우리 회사에서는 뭐만 있으면 “그거 팔아 봐”라는 말이 유행했었다.
내가 정말 팔아보고 싶었던 것들을 돌이켜 보면 말도 안 되는 것들 투성이긴 하지만.
처음에 회사에서 집에 가지도 못하고 밥도 못 챙겨 먹고 그렇게 일이 많은 시절에 둘러앉아서 두런두런 얘기를 하다가, 도시락 배달 업체가 생기면 정말 좋겠다는 이야기를 했다. 아침에 신선한 샐러드 같은 간단한 식사를 한 끼 분량으로 포장해서 배달해주는 거야, 그런데 배송은 어떻게 하지? 한 건물에서 여러 명이 많이 시키면 좋겠다. 그때 아이디어의 배경은 주로 “일인기업”이었던 것 같다. 내가 만들어서 내가 내 작은 차에 싣고 직접 배달을 하는 모습을 상상했다. 택배를 이용하는 방법에 대한 옵션은 고려해보지 못하는 일차원적인 시스템을 구상했다. (나는 그때나 지금이나 비즈니스 경영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그래, 신선하고 소스만 맛있으면 이건 대박이 날 것 같아!라고 너무 획기적인 것 같다고, 아침마다 우걱우걱 끼니를 때우면서 그냥 해보는 말이라고기엔 다소 진지하게 직장인 건강 샐러드 배송 사업에 대해 논의를 하다가 갑자기 바빠져서 그 이야기는 잊혀졌다. 2019년 현재는 새벽 배송이 난리이고, 누구나 새벽에 샐러드를 배송받아서 먹을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그 이후 “아무거나 파는 가게”에 대한 구상도 했었다. 이건 얼마나 트렌드를 앞서간 생각이었는지 모른다. 3개월 단위로 파는 물건을 바꾸는 획기적인 가게를 차리자는 것이었다. 맨날 똑같은 것만 파는 것은 지루하니까 3개월마다 업종을 바꾸는 가게를 차리는 것은 어떨지에 대해 주말 회의를 나와서 회의 대기 중에 선배와 마주 앉아 심도 깊은 아이데이션을 이어나갔다. 물건을 사는 소비자의 취향도 매번 바뀌는데 파는 사람도 한 가지만 팔면 질리니까 어떤 때는 커피를 팔다가 어떤 날은 꽃을 팔기도 하면 어떨까라며. 어떤 날에는 한 사람만을 위한 테이블을 차려서 멋진 식사를 제공하는 프로젝트 레스토랑도 했다가 하는 그런 가게를 차려보자고. 한 십 년 전의 일이니까, 어쩌면 그게 정말 사업화됐으면 라이프스타일 마켓이라던가 팝업샵, 혹은 원 테이블 레스토랑 같은 것의 전신이 되는 상점이 되지 않았을는지.
사진을 모아 책으로 만들어주는 사업도 구상했었다. 그때 당시 우리는 모두 DSLR에 빠져있었다.
카메라를 좋아했던 것이다. 그런데 사진이 너무 많아서 정말 소중한 사진이 뭔지 모를 지경이라고, 사진을 골라내고, 사진에 얽힌 이야기를 스토리로 손 봐주고, 사진 레이아웃도 조금 깔끔하게 정리해주고. 그렇게 한 권의 책으로 완성해주는 그런 사업에 대해서도 심도 깊게 구상했다. 이건 정말 이 시대가 요구하는 사업이 틀림없다고. 입으로만 건설적이었다. 그런데 한 명 한 명 직접 해주려면 시간이 오래 걸리겠다, 한 권당 얼마를 받으면 좋을지 가격정책이 서질 않았다. 굉장히 단순하고 원초적인 방식밖에 생각을 못했는데 차리기만하면 정말 잘될 것 같다고 진지하게 토론했다. 이후에 사진만 고르고 넣으면 멋진 책으로 만들어주는 간편한 사진책 어플과 시스템이 우후죽순 쏟아졌다.
회사를 그만둔다고 하고 뉴욕에 갔던 것은 2010년이었다. 그때 뉴욕에서 처음 먹어본 쉑쉑 버거는 정말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맛이 있었다. 지금까지 내가 먹어왔던 햄버거를 부정하게 만드는 맛이야! 와, 이거 한국에 들여가면 대박 나겠네. 한국에 공원이 있는 곳에 쉑쉑 버거 매장이 들어서면 정말 줄을 서서 먹을 거라는 확신이 섰다. 나는 자본이 없었고, 구체적으로 어떻게 쉑쉑 버거 미국 본사와 이야기를 나눠야 할지 모르겠다는 내용의 진지한 고민을 친구들에게 입에 침이 마르도록 했다. 몇 년 후 한국에 쉑쉑 버거가 상륙했고 연일 줄을 서서 쉑쉑 버거를 사 먹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sns에서 끊이지 않았다. 하, 한발 또 늦었네.
택시를 타면 내가 타기 전에 탔던 사람의 술냄새나 체취가 남아있는 것이 싫고, 택시기사님과의 대화는 정말 피하고 싶다는 이슈도 자주 거론됐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뭔가 분명 더 쾌적하고, 매너 좋은 택시 시스템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맞네 그거 사업하면 되겠네, 이거야말로 진짜 하기만 했으면 대박 날 것 같았는데 타다가 나왔다.
회사를 다니면서 수억 벌 기회를 놓친 거 아닌가. 아까워 죽겠네, 시작만 했으면 대박이었는데 누가 내 사업계획을 다 도용했냐고. 정신 못 차리고서 헛소리만 늘어놓고 있다. 오늘도 우리가 점심시간에 나눴던 사소하고 진지한 대화 속에서 누군가는 어마무시한 대박 아이템으로 실행시키는 사람들이 있을 텐데.
+번외.
우리 회사가 입주할 당시 이 동네는 정말 후미진 동네였다. 지금으로부터 8년전 내가 결혼을 준비하던 시기에 사람들이 신혼집은 어디로 얻느냐고, 회사 근처에 집을 얻지 그러냐는 말에는 콧방귀를 뀌어댔다. 제가 이 동네에서 왜 살아요! 저는 이 동네에 집을 얻을 생각이 전혀 없어요. 그 이후 회사 바로 뒤에 있던 그 허름해 보이던 아파트 값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고 두배 이상의 가격으로 절찬리 거래되고 있다. 회사를 다니면서 월급을 모을게 아니라 그 아파트를 샀어야 했다고, 가져보지도 않았던 돈을 까먹은 것 같은 기분으로 날마다 아까워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나는 회사생활이 체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