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가 트렌드라고 했다. 나는 생각보다 트렌디하지 못했다.
고등학교 1학년이 되면서 우리는 불현듯 이과와 문과의 갈림길에 놓인다. 아 우리가 아니라 나만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나는 너무 갑자기 그런 상황이 닥친 기분이었다. 줄곧 높은 성적을 유지해왔던 것에 비해 딱히 학구파 스타일이 아닌 것이 슬쩍 봐도 티가 나는 애였다. 뚜렷한 장래희망도 없이 공부를 막연히 잘해온 것이었다. 그 당시에는 공부를 잘하면 이과, 라는 공식이 암암리에 존재했다. (지금도 그런가?) 수학을 잘하는 것이 공부를 잘하는 기준이었다. 사회나 가정, 지리 같은 과목만 특별히 잘한다고 공부가 뛰어나다고는 해주지 않았다. 생각해보니 이상하다. 그런 이유로 성적 좋은 아이들은 대부분 이과로 분류되는 시대적 배경 속에서 고등학교에 진학한 터. 고등학교 1학년 담임이셨던 국어 담당 신병두 선생님께서 교무실로 나를 부르셨고, 나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으셨다. 성적은 좋은데 희한하게 산만한 편이구나. 엉덩이가 의자에 붙어있는 스타일이 아니라서 이과에 가서 공부를 끌로 파는 학과로 진학하는 것은 아무래도 옳은 일이 아닌 것 같다, 라는 이야기를 하시 동안에도 나는 다소 산만했다. 그런 나에게 "신문방송학과"가 어울릴 것 같다고 슬쩍 운을 떼셨다. 놀라운 일이다.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던 일이었는데 듣자마자 아. 뭔가 그게 바로 내가 가야 할 길인 것 같다고, 그 순간 곧바로 결정을 내리는 경험을 그때 처음으로 했던 것 같다. 그 이후 그 어떤 흔들림도 없이 관련 학과에 단번에 진학해서, 졸업과 동시에 광고대행사에 입사하기에 이르렀다.
대학을 다니면서 카피라이팅 수업을 듣자마자 나는 카피라이터가 되야겠다고 정했다. 광고대행사에 들어갔지만 카피라이터가 안 되는 상황은 옵션에 없던 일이었는데 카피라이터가 바로 될 수는 없었다. 프로모션 부서로 발령이 났기 때문에 나는 프로모션 기획자가 되어버린 것이다. 받아들일 수가 없었는데 월급은 받고 싶고, 그만두겠다고 다짐할라 치면 월급날이 돌아오고 그런 시간이 반복됐다. 그때는 나이도 아주 어렸는데, 왜 그렇게 시간이 무서웠는지. 과감하게 그만두고 나가서 작은 회사에서 카피라이터로 다시 시작해본다는 생각을 하면 그게 뭐라고 내가 이미 나이도 있고 그런데 받아줄 회사가 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부터 끝을 모르는 걱정이 줄을 이었다. 자존감이 많이 낮았던 시절이었다. 그렇게 한 1년쯤 쪼그라들 대로 쪼그라들었을 때, 팀장님에게 용기 내어 말을 꺼냈다. 말을 꺼내기는 겁이 나서 이메일을 보냈다. 그날 밤 야근을 마치고 마지막까지 남아 한참동안 이메일을 썼다 지웠다 반복했던 기억이 난다.
아침 일찍 출근하신 팀장님이 이메일을 확인하시는 듯 했다. 파티션 너머로 팀장님의 정수리가 붉어지신 것 같았다. 평소 무섭기만 했던 거대한 팀장님이 나를 회의실로 불렀고, 이메일의 내용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셨다. 말이 시작하기가 무섭게 눈물 콧물이 줄줄 나왔다. 나는 생각보다 카피라이터가 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던거다. 카피라이터가 되고 싶어서 나가야겠다는 말을 하는데 눈물 콧물이 멈추지를 않았다. 팀장님이 각티슈를 가져다주셨다. 꺼이꺼이 울음반 콧물반으로 내가 하는 이야기가 다 전달되었는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나는 첫 번째 퇴사를 실패했다. 카피라이터는 내가 꼭 시켜줄 테니, 일단 이 일을 한 번만 더 해보자. 일 년 후에도 아니면 그때는 내가 널 보내줄게. 지금 준비하고 있던 프로젝트 그만두기에는 너무 아쉽지 않니, 이거 마무리되고도 아니면 다시 얘기하자. 입사이래 쭉 고민해왔던 시간이 무색하게 15분 면담으로 나는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 열심히 일했다. 그런 식으로 눈물의 면담을 두어 번 더 반복한 후에 나는 마침내 카피라이터가 되었다.
카피라이터가 된 행복으로 걸음걸이가 달라졌다. 언제나 투스텝으로 신나게 방방 뛰어다녔다. 카피를 잘 쓰는지는 모르겠는데, 그냥 카피라이터 명함을 받아서 좋았고, 내가 쓰는 몇 줄의 글이, 조잡한 컨셉이, 말 같지도 않은 아이디어 비슷한 것을 나누는 일이 직업인 것이 좋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사생활에는 시련이 찾아오기 마련이다. 불공평한 상황에 여러 차례 놓이게 됐다. 시대적 배경이 금융위기였고, 나를 좋게 봐주셨던 상사들은 회사를 나가게 됐다. 회사가 어수선했고, 거대한 조직에서 작디작은 점 같은 나에게 돌아온 상처를 견딜 수가 없었다. 가만히 있어도 눈빛이 초롱초롱 빛나던 시절이었는데, 무슨 일을 해도 신나고 즐겁던 내가 어두운 표정을 하고서 다시 한번 퇴사를 결심할 수밖에 없었다. 시디님에게 이미 의사를 전달드렸고 시디님이 봐도 너무 억울한 상황들이 반복된 것을 인정, 말리지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내 자리의 짐을 정리해서 모두 집으로 보내버린 후, 제작본부에서 제일 높은 분을 찾아가 퇴사 결정에 대해 말을 꺼냈다.
약간 정신과 의사처럼 자리에 앉아 내 얘기를 들으며 "그럴 수 있지" "그럴 수 있어" 그 말만 몇 번 반복하시던 그분은 "너는 일단 마음이 너무 많이 다쳤구나"라고 하시면서 퇴사보다는 두어 달 휴직해 볼 것을 권하셨다. 우선 마음을 치료한 후에도 여전히 아니다 싶으면 그때 퇴사해도 늦지 않는다는 말씀을 하시고는 나를 내보내셨다. 선배들이 흔치 않은 기회라고 일단 좀 쉬고 오라고 해서 얼떨결에 그 주 주말 바로 뉴욕으로 가버렸다. 퇴사를 성공하면 어학연수를 가겠노라 노래를 불렀었는데 형식적으로나마 두달짜리 어학연수 프로그램을 신청한 것이다. 두 달은 순삭으로 지나갔고, 마음은 많이 나아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퇴사를 번복한다고 말하는 것이 무안해서 그냥 저는 회사를 그만두겠습니다, 말씀드리러 찾아갔다가 "어, 이번에 새로 온 아주 새로운 시디가 있어. 너 어차피 회사 그만두면 다른 회사 가서 다른 시디랑 일할 거잖아. 근데 여기서 아주 새롭게 새로운 시디랑 일하면 그게 그거야" 그렇게 그만두지 못하고 또다시 회사생활이 이어졌다.
몇 년쯤 지나 한번 더 퇴사를 시도했는데, 그때 나에게 장문의 문자를 보내주셨던 상무님은 여자분이셨다. 여자 임원 특유의 부드러운 카리스마라는 것을 그때 처음 경험했다. 내가 당한 그런 부당한 이유로 회사를 나가겠다는 마음에 얼마나 공감을 하고계신지, 하지만 익숙했던 출근길과 익숙한 자리, 가깝게 지내던 동료들을 의도치 않게 포기하는 것이 얼마나 아까운 것인지에 대해 조곤조곤 이어지던 문자. 그러니 한번 더 생각해보고 본인과 같이 일해보는 것이 어떻겠냐는 이끌림에 역시나 퇴사를 실패했다.
그때가 아마 마지막이었던 것 같다. 나는 인정했다. 이직도 관심이 없었고, 퇴사에는 재능이 없었다. 그냥 한 회사에서 이렇게 십수 년째 일하고 있다. 이직을 하면 연봉이 뛴다던데 풍문으로만 들었고, 퇴사 트렌드를 10년 앞서갈 수도 있었는데 족족 실패하고 이렇게 트렌드에서 한참 벗어난 사람으로, 살고 있다. 이제와 고백하건대 나는 여전히 나의 직업이 마음에 든다.
퇴사 욕구가 사라진 후 몇 년-
연차가 높다고 일을 더 잘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안정된 흐름으로 일할 수 있는 사람이 됐다. 광고주나 같이 프로젝트를 준비하는 동료 누군가를 안심시켜줄 수 있는 수준의 아이디어를 준비할 수 있었다. 후배들이 일에 대해 팀에 대해 인생에 대해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는 선배가 됐다. 퇴사에 대한 고민을 갖고 찾아오면 확실한 퇴사 경험이 없는 선배로써 신빙성 떨어지는 피드백밖에 해줄 수는 없는, 퇴사에 관해서는 무능력한 선배라, 멋이 없을 수도 있는데 그렇게 화석 같은 선배가 되어간다. 인간이 살아가는 동안 10년 넘게 꾸준히 매일매일 반복하는 일이 그렇게 많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지. 초등학교 6년,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 대학교도 4년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학사경고 좀 맞았다 쳐도 6년쯤. 그런데 한 회사를 10년 넘도록 다녀버렸다. 잘 나가는 카피라이터라면 3년에 한 번씩 이직해야 하는 거 아니야? 한때는 이직을 못해본 사실이 부끄러웠던 적도 있었다. 헤드헌터의 연락을 받고 가슴이 두근거린 적도 있었지만, 게을렀고 만족했다. 무엇보다 우리 집에서 가장 가까운 대행사라는 이유로 이곳에서 더더욱 벗어날 수가 없네.
나의 퇴사 실패기를 돌아보니
나의 퇴사를 실패로 돌아가게 만든 사람들은 모두 다정하고 유능한 분들이셨다.
퇴사를 했더라면 어땠을까, 스타트 업할 수 있었을까, 더 멋진 인생이 있었을까,
잘 모르겠다.
그렇게 긴 시간에 걸쳐
나는 퇴사에 실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