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생활을 하면서, 대단한 사람은 누굴까
나의 오랜 보스는 업계에서 한 획을 그으신 분이다. 내가 아주 어릴 적 티브이에서 보던 멋진 광고들을 만드신 분. 광고는 혼자서 만드는 게 아니기에 그분이 다 만들었냐고 하면 분명 그건 아니지만 그 모든 프로젝트의 시디님이셨다. 그분의 최전성기를 함께 하지는 못했지만, 그 후로 제7의 전성기, 제8의 전성기 끊임없는 전성기를 계속 이어나가고 계시는 것을 목격해왔다.
내가 아는 한 광고를 가장 사랑하시고, 사랑하는 만큼 인정받은 분. 광고가 가장 아름다웠을적, 그 시절의 한 복판에서 가장 뜨겁게 광고를 하셨던 분. 한때는 밤낮없이 일하시는 것으로 유명했다. “2시에 리뷰하자”라는 말이 새벽 2시가 더 자연스러웠던 시절이 있었다. 어느날은 몇날며칠 회의를 하고 밤을 새다가 집에 가보니 가족들이 이사를 가버렸다는 일화도 있다. 한낱 신입 사원에게는 뭔가 범접할 수 없을 정도의 신화적 인물로 느끼게 하기 충분했다. 명절 연휴 직후에 경쟁 PT가 있어서 겨우 당일 하루만 쉬기로 했는데 사무실 근처에 사는 동료가 회사에 두고 간 물건을 찾으러 들렀는데 언제나처럼 맨발을 책상 위에 올리시고 그림처럼 앉아서 아카이브를 유유히 읽고 계셨다고. 명절이고 뭐고 없고 세상에 광고하고 나하고 둘만 사는 그런 분이 틀림없었다.
소위 잘 나가는 CD들은 일할 때 다혈질이거나 독하거나 무서운 사람이라는 소문이 무성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더 나은 크리에이티브를 향한 열정 같은 것이 그런식으로 치환 되는 듯 하다. 그러나 내가 아는 한 그분은 초조해하는 모습을 보인 적이 없다. 노발대발 성 내시는 모습 또한 본 적이 없다. 어떤 거지 같은 아이디어 앞에서도 “있을 수 있지” “그럴 수 있다”라고 말씀하시고 평정심을 유지하시는. 다급한 법이 없으신, 그야말로 고수의 화법. 신의 영역에 계신다. 내가 회사를 다니면서 만난 수많은 분들중에서도 가장 대단한 분. 대체불가의 존재. 자타공인 광고인의 삶. 그분이 신의 경지에 오르기까지 얼마나 대단하지는 않은 대단한 조력자들이 있었는지를 생각해본다. 작은 아이디어 팁을 가져왔을 인턴부터, 노련하게 양질의 레퍼런스를 선별하여 제공해주었을 아트 디자이너, 새로운 키워드를 끌로 팠을 카피라이터들까지. 그 모든 사람이 다 대단히 놀라운 광고인으로 남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의 대단하지 않은 대단함은 실제로 매우 중요하다.
나의 아들이 우리 회사에서 온에어 시키는 광고를 모조리 내가 만드는 줄 알고 있던 때가 있었다. 저것도 엄마네 회사에서 만든 거야? 저 광고는 우리 엄마가 만들었어요! 사람들에게 큰소리로 자랑을 늘어놓으면 무안했다. 우리 팀에서 한거긴 한데. 엄마가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 아닌데 말이다. 수많은 히트작을 낸 것이 아니라고 해서 무능력한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유명해지지 못한 것에 대한 변명같아보이지만, 사람들이 다 기억해주는 광고보다 더 멋진 아이디어들이 클라이언트 보고를 통해서 사라지고, 리뷰 과정에서 소멸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별볼일 없이 지내던 어느 날 나는 칸 광고제에서 수상한 작품의 카피라이터가 됐다. 아니지, 내가 참여한 프로젝트가 칸 광고제에서 수상의 영예를 안게 되었다. 대단하지 않았던 내가 대단한 일을 해낸것이다. 그렇다고 누군가 내 이름을 기억해준다거나 하는 신변에 변화는 없다. 여전히 평범하면서 유명하지 않은 카피라이터로 살아간다. 다만 광고회사에 다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씩 꿈꿔보는 그런 순간이 찾아와서 뭐든 말로 표현해야 직성이 풀리는 내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만큼의 엄청난 기쁨을 맛본 것으로 대단한 일은 수수하게 마무리됐다. 카피라이터로 살아가는 인생에 한 번쯤은, 꼭 갖고 싶은 그것. 칸 라이언 트로피의 개인 소장을 원할 경우 약 400만 원 정도의 비용을 별도로 지불해야 한다고 해서 사진으로만 남긴 트로피, 두 마리의 사자. 그런것도 선뜻 지르지 못하는 정도의 대단치 않은 사람으로 남았다.
아마 앞으로 남은 회사생활에서 운이 좋으면 10년 정도 더 카피를 쓰거나 브랜딩 관련 일을 하면서 딱히 대단하지 않은 사람으로 남는건가. 그건 싫은데. 대단하다는 것은 무엇일까. 누구나 다 나를 알아주고, 내가 한 일을 알아봐 주는 것인가. 그런 정의라면 조금은 바꿔볼 필요가 있다. 사람들이 나를 알아봐 주지 않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거니와, 수수하게 맡은바 역할을 해내면서 조용하고 묵묵하게 살아가는 것은 대단하지 않지만 몹시 대단한 일이기 때문이다.
영화 기생충이 칸영화제에서 수상을 한 것은 정말이지 위대한 일이다. 그렇다고 해서 봉준호 감독 외에 기억에 남는 다른 스텝들의 이름이 있냐 하는 말이다. 나는 없다. 그렇다고 그 영화의 스텝들이 대단하지 않은가? 대단하지 않은 사람들의 대단함이란 그렇게 이름이 기억되지 않는 점 같은 것. 이름이 기억되지도 않을 텐데, 그렇게 묵묵하게 자기 역할을 해내버리는 것.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제아무리 대단한 감독도 혼자서는 작품을 완성할 수 없는게 분명한 것이다.
멋지게 살아야겠지만 대단한 사람은 되지 않아도 좋다. 대단한 사람이 되지 않았다고 해서 내가 대단하지 않은 것은 아니니까. 말장난 같지만 꽤 진지한 진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