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생활의 끝에서 어떤 모습을 하고 싶은지를 생각해봤다.
내가 회사에 입사했을 때부터 부장님이셨던 부장님께서 이번에 퇴사를 하셨다. 긴 시간 다녔다고 해서 미련 없이 회사를 나가는 것은 아닐 것이다. 되려 더 어려운 일 아닐까. 아주 오랜 시간 한 회사를 다니다가 떠나는 모습은 생각보다 몹시 초라했고 언제일지 모를 나의 마지막도 그려봤다.
한때는 같은 팀에서 일을 했는데 내가 그 팀을 나오면서 아는 후배가 그 자리에 들어가 일을 하고 있어 종종 부장님의 소식을 전해 들었다. 부장님은 애가 둘이다. 출근하면 일단 아이들과 통화하는 시간이 많았다. 아이가 학원을 마치고서 통화하고, 학원에서 나와 편의점에 들렀을 때 통화하고, 그래서 요구르트를 두 개 사서 친구랑 나눠먹는 일에 대해 통화하고, 집에 도착했는지를 통화하는 일이 일과에 포함되어 있었다. 내가 있을 때도 그랬는데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고 했다.
나도 아이가 있다 보니 집에 있는 아이들과 통화상으로 연결되어 있어야 하는 상황에 대해서 전혀 이해를 못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항상 자리에서 통화를 하기 때문에 팀의 다른 동료들이 그 상황을 세세히 인지하게 되는 것에 대해서는 과연 괜찮은 건가 하는 의문이 있었다. 아니, 다시 말하자면 사실상 프로페셔널해 보이지 않았고 더 느낀바대로 말하자면 "멋있지 않았다"는 게 정확한 표현이겠다.
부장님은 회의에 앞서 늘 앓는 소리를 베이스로 깔았다. 우리가 맡게 되는 프로젝트들은 새로운 제품이거나 어려운 제품이다. 새로 출시하는 제품이니까 잘 모르는 것이 당연하고, 마케팅적으로 잘 안 풀리는 어려운 제품이니까 경쟁피티를 하게 되는 것이다. 프로젝트 규모가 작고 크고를 떠나서 어떤 일을 받아도 일단은 투덜거림으로 시작하시던 것이 인상에 남아있다. 그리고 여전하시다는 얘기를 종종 전해 들었다.
팀 내 최고 연장자이자 최고 연차인 부장님을 두고 아래 애들이 조심스레 수군거렸다. 팀에서 연봉은 가장 높게 받으실 텐데, 일은 진짜 안 하신다고. 나 같으면 저렇게 연봉 많이 받으면 신나서 일 할 텐데.라는 말들이 오갔다. 일은 다른 사람이 하는데 왜 부장님은 연봉을 많이 받으시냐, 이런 얘기였다. 지금 수근대는 친구들은 모르겠지만, 분명한 건 부장님에게도 전성기라는 것이 있었다는 거다. 그 시절의 부장님은 많은 일을 잘 해내는 사람이었다. 그때도 투덜거리거나 일을 경계하는 태도는 다르지 않았만.
부장님의 회사생활에 대한 태도가 요즘 친구들로 하여금 인정받지 못했던 것이다. 조금 더 유쾌하게 일했다면 어땠을까. 어렵지만 같이 해보자. 내가 너희들을 구원해줄게, 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용기를 내어주는 사람이었으면 그랬으면 마지막은 좀 달라졌을까. 일의 결과를 떠나 일의 태도가 아쉬웠다.
사실 그렇게 기분 좋고 재미있는 일은 많지 않다. 연휴를 앞두고 들어오는 경쟁피티라던가, 주말을 반납해야 하는 프로젝트 보고 일정들이 유쾌하긴 쉽지 않다. 오래 다닌다고 해서 더 좋은 아이디어를 낼 수 없는 구조의 직업에 종사하고 있다 보니 연차가 높다고 꼭 제일 좋은 아이디어를 가져오라는 법도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년 차의 경력에 기대하는 태도라는 것이 있는 것 아닐까. 그저 일하기 싫다는 태도로 일관하시다가 최근 몇 년간은 일을 많이 안 하신 것 같았다. 그러다 보니 연말에 평가가 좋았을 리 없었고. 그렇게 마침내 회사를 나가기로 결정당하셨다. 어쩌면 본인 스스로의 결정이라기보다는 상황이 그렇게 결정하도록 만들어졌다.
회사에 오면 선배도 있고 후배도 있다. 팀장도 있고 팀원도 있다. 옆팀 사람들도 있고, 아무튼 보는 눈도 듣는 귀도 많다. 누군가 내가 일하는 모습을 보고 있어서 열심히 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게 인정받으며 일 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이 일을 함께 해서 즐거운 멤버가 되는 그런 사람. 함께 일하고 있어서 영광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떻게든 이 일을 해 낼 수 있을 것 같다는 믿음이라던가 안심을 하게 해주는 역할. 능력이라는 말과의 차이점을 변별력 있게 설명하기는 그렇지만 그 능력까지도 하나의 태도라고 본다.
부장님이 회사를 나가는 날, 그 마지막 퇴근을 함께 해준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고 했다. 나는 같은 팀이 아니라 전해 들은 이야기지만, 그 팀 팀원들이 연말에 바쁜 일정으로 전날 늦게까지 일을 했고 다들 뿔뿔이 외근 중이거나 출근 전이거나 해서 부장님의 마지막 출근과 퇴근을 함께 할 수 없었다고 했다.
그런 상황을 다 감안하더라도 매우 쓸쓸한 마지막 장면이다.
부장님이 좀 더 멋졌다면 어땠을까. 무의미한 상상을 해본다. 더 멋있는 태도를 가졌더라면 이렇게 갑자기 회사를 그만두는 일은 없었을까. 박수칠때 떠나라는 말이 생긴 이유가 이런 상황 때문인 걸까. 하지만 박수칠때 자리를 뜨는 것이 쉬운 일일까. 박수가 잦아들고, 어느덧 여운만이 감도는 자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두리번거리며 불이 다 꺼진 후에야 조심스럽게 퇴장하는 이유는 나를 향한 갈채, 그때 그 울림이 쉽게 사라지지 않아서, 두고두고 그 속에 남아있고 싶은 것 아닐까.
100명이 입사를 하면 그중에 1명이 임원으로 정년퇴임을 할 수 있다고 어디선가 주워 들었다. 그게 100명 중에 1명인지 1000명 중에 한 명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평범한 회사원이 전부 임원이 되어서 대대적으로 퇴임식을 하면서 회사생활을 해피엔딩으로 마무리할 수는 없다는 이야기다. 언제가 될지 모를 마지막의 나를 떠올려본다. 함께 일해서 즐거웠다는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그런 사람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