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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포선라이즈 May 27. 2020

여름안에서

남편은 노래부르는 것을 좋아한다











연애가 시작됐다.




처음 만난 것은 7월 어느날이었고, 무척 더운 주말의 홍대였다. 이야기가 잘 통했고, 곧 다시 만나게 됐다. 두 사람의 공통점은 두말할 것 없이 술이었다. 만날때마다 술잔을 맞댔다. 만난지 몇번 안되었을때 자연스레 노래방에 가게 됐다. 훤칠한 키에 호리호리한 외모로 말주변도 좋고 목소리도 괜찮았던 남편, 그당시 남자친구가 마이크를 잡고 맨 처음 불러주었던 노래는 뜨거운감자의 "고백"으로 기억 된다. 유행가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좋아할만한 가사와 쉬운 멜로디의 곡이었다. 그 노래를 통해 그토록 멋진 내 남자친구가 말도 안되는 음치였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보통 음치의 경우 노래방을 꺼려하거나 사람들 앞에서 노래 부르는 것을 피하기 마련인데 내 남자친구는 노래부르는 것을 무척 좋아했고, 마이크를 멋지게 꺾어 들고서 노래를 했다. 나에게도 콩깍지라는 것이 씌여있었을 시기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콩깍지가 고막까지 커버를 해주지는 못했던 모양이다. 아무리 들어봐도 음치였고, 들을때마다 들어줄 수 없는 기분이 들었다. 사랑에 빠졌던 나를 누가 잠깐 집게로 집어서 사랑 밖으로 끄집어 내는 듯한 순간들이었다.


남자친구의 차에서 가장 많이 들었던건 제이슨므라즈 앨범이다. 아무튼 이 남자가 노래를 따라부르지 않았으면 하는게 나의 바램이었고, 내 바램이 무색하게 그 남자는 늘 흥얼거렸다. 나는 남자친구에게 아무말 못하고 그냥 라운지음악같은것을 틀면 좋겠다, 가사가 없으면 따라 부르지 않을텐데, 속으로만 궁싯 거리면서 먼 산을 바라보곤 했다.




4년전인가, 큰 아이의 친구 가족들과 여수로 여행을 떠났다. 여수 역에서부터는 스무명 남짓의 다섯가족이 스타렉스 두대로 이동을 했다. 단체관광 온 사람들처럼 우루루 횟집에서 저녁을 먹고 나오는 길에 계획에 없던 노래방에 갔다. 아름다운 여수밤바다가 창밖으로 보이는 노래방이었다. 여행이라는 상황이 빚어내는 특유의 신비로운 기운에 휩싸여 평소라면 하지 않았을 부부대항 노래자랑이 시작됐다. 그 당시 우리를 포함해 5쌍이 경연(?)에 참가 하게 됐다. 정말 놀라웠던 것은 엄청나게 체계적으로 잘 노는 아빠들이 많았다는 사실이었고, 노래를 못부른다거나 마이크를 마다하는 사람은 없었다는 사실이었다. 다들 어디서 좀 노셨군요의 주인공들. 음주가무를 즐기고 공기반 소리반을 아는 가창의 민족답게 노래 솜씨가 정말이지 대단했다. 본인의 노래실력을 평균적으로 생각하던 남편에게는 다소 충격적인 사건이었던 모양이다. 그날밤 노래방에서 어떤 미묘한 쭈뼛거림 같은 것을 것을 감지하게 됐다.



영업을 이유로 남편은 일주일에 두세번씩 술자리가 있다고 했다. 먹고 살기 위해서 마신다고 하니까 말릴수 없고 술자리가 있을때마다 12시가 넘어 귀가를 하는 남편에게 어디서 누구랑 뭘 마셨냐고 따져묻지도 않는다. 다만 자정이 넘은 시간에 항상 노래가 크게 틀어져있는 핸드폰을 들고서 흥얼흥얼 아직 채 가시지 않은 어떤 여운과 함께 방에 들어오는 것만은 자제해주었으면 싶었다. 처음엔 몰랐는데, 그럴때마다 대부분 노래방을 다녀 왔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얼씨구.



지난달 코로나로 인해 한동안 못만나던 그 멤버가 다시 뭉쳤고, 대부도의 독채펜션으로 1박 2일 짧은 여행을 떠났다. 2층에는 노래방 기계가 있었다. 바베큐를 먹고,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놀고 어른들은 어른들끼리 술도 한잔하고 그러다가 노래방의 시간이 도래했다. 여전히 다들 노래를 잘 부르는 어디서 좀 놀아본 구성원들과 함께 분위기가 무르익어갔다. 그날의 컨셉은 챠트역주행 이었다. 슬기로운 의사생활이 쏘아올린 추억의 노래들이 줄줄이 이어졌다. 최신곡을 잘 알지도 못하거니와, 노래방 책의 가장 마지막 최신곡 리스트는 2016년이었고, 그참에 오래전 좋아하던 노래들을 꺼내어 부르기 시작한 것이었다. 남편이 한참만에 나타났다. 마이크를 잡고, 노래를 부르는데 모두가 눈이 휘둥그레졌다.


“형님, 보컬 학원이라도 다니신거에요?”


동시에 모두가 놀랐다.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만 같았다. 지금 들었어?! 음정이 맞는거 들었어??! 두 귀로 듣고도 믿기지 않는 정상적인 노래였다. 남편의 노래 실력이 늘었던 것이다. 실력이 보통이 아니다, 라는 말을 하는데 실력이 보통이다, 도 엄청난 칭찬임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남편의 노래실력은 정말 보통이 되어있었다.


남편이 이런 날을 위해서 숱하게 노래방을 다니며 실력을 갈고 닦은건지의 진위여부는 알 수 없다. 정말 그런거라면 귀엽고, 그게 아니더라도 사십대가 넘어서 뭔가 실력이 향상될 수도 있는거구나라는 가능성을 보여준 점을 높이 평가한다. 칭찬은 음치를 노래하게 하고 으쓱해진 남편이 쑥쓰러운듯 몇곡을 더 불렀다. 마지막으로 선택한 곡은 듀스의 여름안에서.

 

언제나 꿈꿔온 그런 시간들이었을까,

그렇게 사랑했던 노래가 음치를 받아주었고

그 기분만큼 밝은 사이키 조명과

시원한 맥주가 함께 하면서

그는 그렇게 행복을 느끼고.



무언가를 이뤄낸 사람의 성취감 비슷한 아우라가

남편 주위를 감싸고 있었다.  










여름안에서

듀스



언제나 꿈꿔 온 순간이

여기 지금 내게 시작되고 있어
그렇게 너를 사랑했던

내마음을 넌 받아 주었어
내 기분만큼 밝은 태양과

시원한 바람들이 내게 다가와
나는 이렇게 행복을 느껴
하늘은 우릴 항해 열려 있어

그리고 내곁에는 니가 있어
환한 미소와 함께 서 있는,

그래 너는 푸른 바다야!




같은 시간 속에 이렇게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난 좋아
행복한 미소에 니얼굴

나 더이상 무얼 바라겠니
저 파란 하늘아래서 너와 나

여기 이렇게 사랑하고 있어,
나는 이렇게 행복을 느껴
하늘은 우릴향해 열려있어

그리고 내곁에는 니가 있어
환한미소와 함께 서 있는,

그래 너는 푸른 바다야!

더이상 슬픔은 없는 거야 지금 행복한 너와나
태양 아래 우린 서로가 사랑하는걸 알아
하늘은 우릴향해 열려있어

그리고 내곁에는 니가 있어
환한미소와 함께 서 있는,

그래 너는 푸른 바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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