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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포선라이즈 Nov 04. 2019

브이로그를 포기했다

차마 좋아요와 구독을 눌러달라는 말을 하지 못했다



브이로그가 유행이라고 했다. 인스타그램에서 한 명 두 명 브이로그를 보려면 유튜브로 오라고, 미끼를 던졌다. 바야흐로 브이로그가 제철이었다. 여행 브이로그, 육아 브이로그, 캠핑브이로그, 직장인 브이로그, 일상 브이로그. 브이로그만 붙이면 뭐든 콘텐츠가 되는 거네, 쉬워 보였다. 그리고 잘만 하면 돈도 된다고 했다. 이미 마음속엔 실버 버튼 하나를 품었다. 우선 브이로그의 매력이 뭔지 알아보기로 했다. 실버 버튼아 기다려.



조회수가 평균 20만이 넘어가는 브이로그로 가득 찬 그녀의 유튜브를 정주행 했다. 아침에 일어나서 아스라이 밝아오는 창문으로부터 시작되는 앵글이 감성적일 때 브이로그 1일 차, 라는 자막이 떴다. 세수, 셀카, 화장으로 이어지는 출근 준비와 지하철 타러 가는 발걸음 샷, 잠시 후 사무실 도착. 사무실에서는 카메라를 고정해두고 45도 각도에서 얼굴을 앵글에 묶어둔 채로 일을 했다. 점심시간 먹방이 이어지고 다시 사무실, 퇴근, 친구와 만나서 술 한잔, 이어서 집으로 가는 발걸음으로 구성된 하루하루가 반복되는 일주일치 일상이 브이로그에 담겨있었다.  오, 은근히 별 내용 없는 것 같은데 끝까지 보게 된다?! 이 말도 안 되는 집중력은 어디서부터 오는 걸까. 이 영상의 힘은 도대체 무어란 말인가. 생각해보니 별건 아니고 연예인은 아니지만 연예인보다 예쁘다는 점인 것 같았다. 그 외에 영상에서 보여주는 특별한 스킬도 없고, 내용도 평범하다(라고 생각했다). 그녀의 조회수가 탐이 났다. 브이로그 별거 없네, 라는 맥락 없는 결론을 내렸다.



예쁜 그녀는 없지만 귀여운 아들들이 있어서 육아 브이로그를 하면 될 것 같아 그날로 유료 동영상 어플을 깔았다. 아이의 일거수일투족을 찍어서 나름 감각적(?)으로 편집해봤다. 일상이 온통 컨텐츠인데 하루하루 이 귀여움을 방치했다니 내가 도대체 뭘 얼마나 낭비하며 살아온거야! 마구잡이로 찍었다. 오케이 컷을 고르는 것이 가장 힘들었고 무엇보다 시간이 무지하게 많이 소요됐다. 다 귀여운데 어느 부분을 잘라낸단 말인가. 몇 번을 돌려보면서 한 땀 한 땀 자막도 넣고 이런저런 효과도 추가했다. 음악도 깔았다. 오오 그래 이 정도면 됐어! 는 개뿔. 몹시 어설펐다. 새벽이 밝아오고 있었는데 망했네.



다시 인기 브이로그를 돌려봤다. 이번엔 여행 브이로그. 나도 여행은 좀 다니는 편이라 이쪽이 좀 더 쉬울 수 있겠네. 그런데 보니까 여행 도중에 저렇게 스스로를 인터뷰하면서 돌아다니다니, 요즘 애들은 혼자서도 잘 노는구나. 그런 측면에서 나는 요즘애들이 아니었다. 해맑게 내 카메라를 보며 내가 말하는 장면을 천역 덕스럽게 찍을 수 없었다. 그것도 사람들 다니는 길거리에서. 나는 셀카도 눈치 보면서 찍는 구세대가 되어버렸다는 것을 깨달으며 여행 브이로그도 포기.



그렇다면 감성적인 온더테이블을 브이로그로 옮겨볼까, 싶었는데 우리 집 언더더테이블에는 늘 아들 둘이 북적여서 그런 감각적인 샷을 담는 것은 현실적이지가 않았다. 촛불을 켜 두면 서로 끄겠다고 난리인 남자애 두 명이랑 내가 뭘 하겠나.



무엇보다 브이로그의 엔딩에 모두들 공식처럼 좋아요와 구독을 눌러주세요 라며 수줍게 웃던데 그 말이 차마 나오지 않았다.



유투브 수입공개 하던 사람들은 다 그만한 수입을 받을 자격이 있었음을 인정하게 됐다. 다들 별 큰 수고로움 없이 돈을 버는 줄 알고 다소 배가 아팠던 것 같다. 그런데 배 아플일이 아니라는 걸 직접 해보고서야 알았다.




나는 브이로그를 할 수 없는 사람이었구나, 깨닫는데 한 달이 걸렸다. 그리고 다시 브런치 작가 신청 버튼을 눌렀다. 나는 여전히 글로 쓰는 게 좋고, 글로 이야기하는 게 편한 그런 사람이다. 나는 브이로그를 (시작도해보지 못하고) 접기로 했다.






굿바이 실버버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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