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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포선라이즈 Nov 16. 2019

스타벅스 이프리퀀시를 모으는 열정 같은 것

나는 그 다이어리를 끝까지 써본 적이 없는데도 왜 이렇게 집착했나





바야흐로, 올해도 스타벅스 이프리퀀시 시즌이 돌아왔다. 2004년에 시작된 전통과 역사의 스벅 다이어리 증정 프로모션은 미션 음료 3잔을 포함해서 총 17잔의 음료를 기간 중에 마시면 스타벅스 로고가 선명한 다이어리를 획득하는 단순하고 확실한 마케팅이다.


그 어떤 쿠폰 도장 찍기에도 집착해본 적이 없던 내가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그 다이어리를 받고 싶어서 열심히 프리퀀시를 모았다. 제대로 취향저격당한 사람 중에 한 명이 나였다. 매해 거르지 않고 다이어리 획득에 열을 올렸다. 어떤 해에는 디자인 결정장애로 갖고 싶은 게 너무 많다며 두 번이나 프리퀀시를 모아 두 권의 다이어리를 기어이 받았던 적도 몇 번이나 있었다.



초반 1주일 동안 미션을 완수하면 무려 두 권의 다이어리를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은 조바심을 자아냈다. 어떻게 일주일에 음료 17잔을 소비해야 좋을지, 어느 커뮤니티에서 그 방법을 자세히 공유한 글을 보고 그 천재성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이프리퀀시 첫날에 매장을 방문해서 아메리카노 숏 사이즈 17잔을 에스프레스로 주문하고 보온병에 따로 받아온다. 그 샷은 고이 집으로 모셔와 얼음틀에 옮겨 냉동실에 넣는다. 그렇게 아이스 큐브가 된 커피를 하루에 한 개씩 꺼내서 뜨거운 물에 넣으면 그대로 다시 아메리카노로 부활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3일 동안 미션 음료를 사 먹으면 3일 만에 다이어리 두 개 획득 완료. 이후 한 달간은 저장된 아이스커피큐브로 아메리카노 수혈이 가능하고 다이어리 두권 중에 한 권은 중고나라에 팔아서 추가 할인 개념의 수익을 창출한다.



미쳤다.



아무튼 나는 그런 천재성을 실전에 적용해보지는 못하고 그저 묵묵하고 성실한 방식으로 미션을 완수해 나갔다. 그 값이면 다이어리를 하나 사겠지 싶은데 마시던 대로 커피를 마시면 마치 공짜로 받는 기분에 매료되어 십오 년간 이프리퀀시의 세계에서 출구를 찾지 못했다. 홀린 듯이 커피를 마셔댔다. 계산대에서 내 바로 앞에 손님이 "이프리퀀시 적립"을 하지 않겠다고 하면 그거 저 주시면 안 되냐는 말이 여러 번 튀어나올 뻔도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다이어리는 쓰는 것보다 모으는데 더 열정적이었다. 다이어리를 받는데 공들인 열정과는 다르게 3월 이후에는 다이어리를 쓸 시간이 점점 없었다. 빈칸이 많아지고 그렇게 책상 한편에 가지런히 방치되어 갔다. 나는 스타벅스 다이어리를 12월까지 만기 사용한 적이 없다. 그러나 10월 말 공개되는 스타벅스 새 다이어리를 보면 여지없이 가슴이 뛴다.



그 사이 여러 커피 프랜차이즈와 패스트푸드 브랜드에서 이와 유사한 프로모션을 전개했지만 이상하게 다른 다이어리에는 눈도 마음도 가지 않았다. 이런 게 사랑인가. 이런 게 호갱인가.




올해는 스타벅스 코리아 20주년을 맞이해서 라미 펜 세트가 추가되었다고 했다. 내심 기대가 컸다. 이프리퀀시 다이어리 호갱 생활 15년 차에게 내려주는 선물인가. 역시 스타벅스는 뭘 아는 집이야. 그런데 그게 라미 만년필이 아니라 볼펜이라니. 밑도 끝도 없이 서운한 감정이 몰려왔다. 볼펜이라니. 몰스킨 다이어리의 가격대에 상응하려면 볼펜이 아니라 만년필 아닌가 싶은 것이다. 이런 게 도둑놈 심보인가. 떡줄사람의 의사와 상관없이 김치국을 마셔버렸다.



서운하면 그거 안 받으면 그만인데, 그게 내내 마음에 걸려서 이렇게 글로도 적고 있다. 이제는 좀 열정이 식은 것도 같은데 아직은 갖고 싶은 스벅다이어리나 받아야겠다. 일종의 습관처럼, 그렇게 올해 연말 이프리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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