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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포선라이즈 Nov 19. 2019

그중에 제일은 글이라

믿음, 소망, 사랑 다 글로 써야 정리가 되곤 했다





숙제로 더이상 일기를 쓰지 않아도 된다고 했을때부터 본격적으로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잠들기전의 일기. 하루의 일과에서 빼놓지 않고 쓰던 일기장 속에는 그날 그날 나만 아는 평범한 일상이 빼곡히 기록됐다. 얼마뒤 읽어보면 그게 또 좋았다. 아무도 읽어주지 않는 글인데 그 어떤 글보다 정성스레 적었다. 일기 쓰는 걸 좋아했다. 그러다가 교환일기라는 것을 썼다. 구독자가 있는 글을 쓰게 된 것이다. 친구와 날마다 노트 한 권을 돌려가며 서로에게 편지처럼 일기처럼 채워나갔다. 할 말이 너무 많아서 노트 교체주기가 심하게 자주 돌아왔다. 몇 년 동안 한 친구와 그렇게 교환일기가 이어졌다. 만나서 온종일 수다를 떨었는데, 돌아서면 또 일기장에 써넣던 얘기들.


쉬는 시간이나 수업 중 딴짓을 할 때 나는 편지를 썼다. 공책이나 연습장을 빼곡하게 써 내려간 편지. 고등학교 2학년 때는 날마다 열명 정도의 친구에게 편지를 보냈다. 행운의 편지도 아니고 하루에 왜 열명씩한테 편지를 보냈냐고 물으면 딱히 이유를 말할 수는 없는데 각각의 친구들에게 다 다른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 그당시 친구들은 뜻밖의 편지를 받으면 좋아했다. 그때 나는 뭔가 적지 않으면 근질근질했다. 하염없이 뭔가를 적어내려갔다. 공부를 하다가도, 책을 읽다가도 중간중간에 갑자기 쏟아지듯 편지를 썼다.


누군가 좋아지면 그럴때도 나는 글이 먼저였다. 그 사람에게 보낼 수 없는 마음에 대한 글, 설렘을 주체할 수 없어 끄적이던 글, 마음을 전하지도 못하고 지울 수도 없어 울면서 쓰던 글. 장래희망에 대한 바람도 글로써 많이 소망했다. 밖으로 드러낼 수 없었던 마음은 죄다 글이 되었다. 그리고 그 글의 열혈 독자는 나였다.


종이일기장의 시대는 스물 여덟 살 무렵 중단됐다. 아마도 스마트폰 때문이다. 그때부터는 블로그에 글을 남겼다. 여행기라던가 일상, 책이나 영화 후기 같은 것도 썼다. 파워블로거가 될 만큼 활동은 못했지만 개인적으로 기록적 가치가 있다. 메모장에 순간순간의 감상을 적었다. 일기장을 사용하지 않았지만 이런 저런 방식으로 글은 계속됐다.


한동안은 라디오에 사연을 보내는 일에 매료되어 자판기처럼 사연을 뽑아내고 적어 보냈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나의 사연을 듣는 일은 야릇했다. 광고회사에 다니다 보니 내가 쓴 글이 매체를 타는 일은 처음이 아님에도 사연으로 소개되는 내 글은 느낌이 달랐다. 소개팅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우울한 마음을 담아 보냈던 글을 성시경이 읽어줬고, 육아휴직 중에 맞이한 아들의 생일날 쓸쓸한 마음을 스윗소로우가 읽어줬다. 신혼여행까지 가서 컬투쇼나 듣고 있었던 남편에 대한 실망을 컬투가 읽어주기도 했다. 아 그러고보니 한때 잠깐 심야 라디오작가를 동경했던 적이 있었다.


아이를 낳고 육아일기는 책으로 만들었다. 출판 같은 것을 할 만큼 대단한 내용은 아니지만 아이가 나중에 커서 보면 좋을 것 같아서 실물 책으로 만들었다. 첫 아이를 키우다보면 하루하루가 놀라운 일로 가득하고, 모든 순간이 에세이였다. 언제 다시 들춰봐도 행복할 이야기들로 가득한 책이 완성됐다. 오늘은 큰 아이의 여덟 살 생일이다. 전에는 그 책을 꺼내어 보여줘도 본둥만둥 하던 아이가 이제 첫 장부터 마지막 장까지 사진과 함께 찬찬히, 글을 읽는다. 제법 진지한 표정이다. 그러더니 "이거 좋은 책이네"라고 말해줬다.




카피라이터라고 해서 회사에서 하는 일이 딱 글 쓰는 일만은 아니지만, 글을 쓰는 일의 마무리는 주로 나에게 온다. 아이디어를 낼 때에도 비주얼보다 글로 표현하는 것을 선호한다. 브랜드 스토리를 쓰고, 슬로건을 만들고, 광고 시놉시스를 쓰기도 한다. 글로 시작하고, 글로 끝나는 일을 하는 것이다. 날마다 글 쓸 일이 있는 삶인데도 나는 무슨 글이 그렇게  쓰고 싶어서 브런치에도 글을 쓰고 있다.



사랑할 때도, 믿음이 필요할 때도, 무언가 소망하고 바랄 때도 글로 써야 정리가 되는 인생




내게 그중에 제일은 글이라

여전히 글이 제일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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