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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포선라이즈 Nov 25. 2019

12월, 리플레이

다시 찾아온 12월에 우리가 반복하는 것들








꼭 이런다.


12월만 되면 꼭 이러더라. 기억 속에서 나는 중학생 무렵부터 12월에 이런 증상이 나타났다. 지난 한 해를 반성하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을 꺼낸다. 거의 비슷비슷한 것들을 계획했고, 사실 아주 특별한 계획 같은 게 있을 리 없었다. 좋은 성적, 멋진 남자 친구, 다이어트, 책 많이 읽기. 주로 그런 것들을 조금 다른 말로 수정해서 새로 장만한 다이어리 맨 앞장에 적는 일은 일종의 의식처럼 진지했지만 미션석세스 한 적은 없었고, 하여 12월이 되면 마치 처음인 것처럼 새롭지만 새롭지 않은 계획을 끄적인다.



올해에도 다시 한번 12월이 찾아와 주었다.




이생망이라는 말이 아직 세상에 존재하기 훨씬 전에도 뭔가 망하는 기분을 느끼는 건 어렵지 않았다. 툭하면 망했다. 그럼에도 하루는 24시간이라 다행, 일주일이라는 시간 단위가 있어서 다행, 한 달이 있고, 일 년이 있어서 매번 감사한다. 영화에서는 테이크로 끊어가는 것처럼 인생도 끊어서 산다. 오늘 망하면 컷! 내일부터 그러지 말자고 다짐할 수 있고, 한주가 너무 허무하게 지나가버리면 컷! 다음 주부터는 잘해야지. 이번 달엔 카드값 폭탄에 컷! 다음 달부터는 절약하자 다시 해볼 수 있는 거다. 올 한 해, 다이어리 맨 앞장을 장식했던 계획이 달성된 게 거의 없다. 컷컷 컷! 안타깝지만 내년엔 더 열심히 살아봐야지 어쩌겠어, 할 수 있는 기회. 12월이 돌아왔다.



그렇다고 12월에 꼭 다음 해를 기약하기만 하는 것도 아니다. 지나간 사진첩을 순회하고, 내가 썼던 다이어리, 내 페이스북, 내 인스타그램 히스토리를 다시 한번 훑어보면서, 그게 다 나고, 다 내가 있던 장소이고, 모조리 과거의 나일뿐인데 그때의 내가 그렇게 또 좋아 보여서 한참을 그 시간 속에 서성인다. 특히 연말이 찾아오면 지난날, 정확히는 지난날의 나를 더 열심히 찾아본다. 들여다본다. 어쩐지 지금보다는 피부가 좋아 보이는 그때의 나, 지금은 찾아볼 수 없는 표정을 지을 줄 알던 나, 조금이나마 상냥했던 나.



10대에는 방학을 하는 이유 하나로 설렜다. 학교를 안 가는 게 그렇게 좋은 일인가? 그래 봤자 집에서 만화나 보고 추운 날씨에 볼이 빨개져서 길거리를 배회하다가 떡볶이나 사먹고 그런 게 마냥 좋았던 그 당시의 겨울. 크리스마스 카드를 직접 만들기도 했다. 산타를 그리고, 오리고. 반짝거리는 것들로 꾸몄다. 우표를 붙여서 카드를 보냈던 것은 그때가 마지막이었다. 춥고 소소하게 한해를 마무리하고, 새학기를 준비했다. 20대의 12월은 여러 가지로 분주했다. 첫눈이 오는 날을 기다리는 설렘, 그날 누구와 어디서 만나서 얼마나 로맨틱한 시간을 보내냐 하는 것이 관건이었는데 막상 그렇게 로맨틱한 사건은 없었고, 매번 그 얼굴이 그 얼굴인 친구들과 왁자지껄했다. 크리스마스를 기다리고 보신각에서 종소리를 듣고 밤새 둘러앉아 술 마시는 일을 그저 낭만으로 여기던 나날들. 젊으면서도 젊은 줄을 모르고 한 살 더 먹는다고 하소연을 늘어놓곤 했다. 30대, 지금의 12월은 설렘보다 걱정이 앞선다. 나라 걱정, 집안 걱정, 아이 걱정, 주름 걱정. 나이 먹기 싫은 걱정.




12월 리플레이



사람들은 반복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다. 나는 특히 더 좋아한다. 세월이 흐르고, 시대가 변해도 고전이 사랑받을 수 있는 이유는 사람들이 반복을 좋아하기 때문이 아닌가. 그런 맥락에서 기념일을 기념한다던가, 함께 갔던 장소에 다시 찾아가 보는 일에 의미를 두는 것은 모두들 어떤 식으로든 "반복"을 하면서 안심하고 그로 인해 위안 삼으며 익숙함을 즐기는 것이다. 겨울이 되면 어김없이 반복해서 듣는 플레이리스트는 20년이 넘도록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머라이어 캐리와 마이클부블레, 김동률의 크리스마스 앨범. 핑클이나 터보의 겨울 노래들도 간간히 흘러나온다그런 게 리플레이돼야 12월답다.



결혼 후, 나의 12월 리플레이 로망 중에 하나는 해마다 트리 아래서 가족사진을 남기는 것이었다. 그해 연초에 결혼을 하고 연말에는 아기가 있었다. 그래서 결혼 후 모든 크리스마스를 함께하고 있는 아들이 있다. 나름대로 그 로망을 실천해가며 살았는데 아들이 둘이 된 이후에는 쉽지 않다.




1년차, 2년차, 3년차 순서대로의 크리스마스





해마다 첫눈 오는 날이면 그때 함께 거닐던 홍대 어느 골목에서 만나자던 약속은 희미해졌지만. 귀여운 아들이 조생 귤처럼 작은 손으로 내 손을 꼭 잡아주니 12월, 지금까지 몇십 번 반복해온 자기반성과 새해 결심을 다른 듯 비슷하게 수립할 때다. 12월은 그런 걸 반복하면서 보내는 것이 제일 좋다. 몇천 몇만 번은 반복해서 들어온 머라이어 캐리의 캐럴을 들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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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머라이어 캐리를 대체할 캐럴 음반을 이번 생에 만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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