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에서 세계여행 선배들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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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배낭 여행을 다녀온 이 후의 삶에 대한 이야기도 블로그에 쓰고 있으니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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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탄불은 유럽과 아시아 사이에 있는 곳이라 세계 여행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머물다 가는 곳이라고 했다. 유럽 여행을 다 돌고 아시아로 넘어가기 전이나 혹은 아시아를 다 돌고 유럽으로 넘어가기 전 터키에 와서 쉬어간다고 했다. 한두 달씩 지내면서 체력도, 멘탈도, 여행 정보도 재충전하고 간다고 했다. 특히, 이 숙소에서는 장기로 투숙하면 사장이 단기 일거리도 연결해 주고 숙박비도 할인해 줘서 여행자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퍼졌다고 했다.
까맣게 그을린 피부의 청년은 군대 전역 후 여행을 시작했다. 혼자서 9개월 동안 자전거로 유라시아 대륙을 횡단하고, 본격 유럽 여행을 앞두고 터키에서 쉬고 있는 중이었다. 그가 가리키는 곳으로 고개를 돌리자, 창문 너머로 낡은 자전거가 보였다. 그의 까만 피부와 자전거에서 그 간의 고생한 흔적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체력도 정신력도 정말 강해야 할 수 있는 일일 터였다. 나는 진심을 담은 존경의 의미로 그에게 엄지를 치켜세웠다.
사람 좋아 보이는 서글서글한 미소를 띤 40대 초반 정도 되어 보이는 커플은 세계 여행 6개월 차 새내기 여행자라고 자신들을 소개했다. 삼성전자 사내 커플이었다. 딩크족이었던 그들은 결혼 후 함께 퇴사하고 여행을 시작했다. 얼마 전 헝가리에서 카메라와 노트북이 든 가방을 도둑맞아서, 이스탄불에서 잠시 쉬어가는 중이었다.
모든 이들이 취업하고 싶어 하는 그 삼성전자를 어떻게 그만둘 수 있었을까. 연봉도 복지도 엄청났을 텐데 말이다. 부부가 함께 세계 여행을 한다는 것도 부러웠지만, 그 연봉과 복지를 포기하고 떠나올 수 있었던 용기가 더 멋있게 느껴졌다. 나도 언젠가 저렇게 남편이랑 같이 세계 여행을 하고 싶다는 낭만적인 꿈을 품게 되었다.
아까 나의 시선을 강탈했던 뮬란을 닮은 소녀의 이름은 장미였다. 봉오리가 반쯤 핀 붉은 장미와 그녀의 이미지가 참으로 잘 어울려서 뇌리에 박혀버렸다.
그녀는 고등학교 때 한비야의 책을 읽고, 졸업 후 1년 간 아르바이트를 해서, 1천만 원을 모아 배낭여행을 떠났다. 6개월 간 중국과 동남아를 여행하고, 이후 호주에서 1년 동안 워킹홀리데이를 한 후, 유럽을 6개월 정도 돌고 터키에 왔다. 이스탄불에 온 지는 3주쯤 됐고 내일 조지아로 떠난다고 했다. 그녀는 파워 블로거로서, 홍보 조건으로 이 숙소에도 공짜로 묶고 있다고 했다.
나보다 한참 어린 그 소녀가 정말로 멋있게 보였다. 나도 똑같은 책을 읽고 감동을 받았었지만, 그걸 실천할 용기는 없었다. 하지만 이 스물두 살 남짓한 소녀는 꿈을 살아내고 있었다. 그 용기와 열정이 참으로 부러웠다. 훗날 활짝 핀 장미는 어떤 모습일까 벌써부터 궁금해졌다.
사장의 이야기도 인상 깊었다. 사장은 취업에 유리하다는 경영학과에 진학하여 4년 동안 치열하게 대학 생활을 했다. 막연하게 다른 사람들이 좋다고 하는 금융권 대기업 취업이라는 목표를 향해 열심히 달렸다. 막상 그 목표를 이루고 나니 원하는 삶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그는 삶의 의미를 잃어버렸고 한참을 방황했다. 그러다 서른 살이 되기 전에 오랫동안 꿈만 꿔오던 세계 여행을 해보고 싶어졌다. 왠지 서른을 넘기면 더 용기가 나지 않을 것 같아서였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데, 기분이 묘했다. 왠지 내 이야기를 듣고 있는 듯했다.
사장은 여행을 하면서 틈틈이 블로그에 여행기를 올렸는데, 그 블로그가 인기가 많아지기도 했다. 우여곡절을 겪으며 이스탄불까지 왔는데, 돈이 거의 바닥이 났다. 남은 돈 긁어서 어느 식당에서 밥을 먹고 있었는데, 어떤 중년의 커플이 사장에게 말을 걸어왔다. 블로그에서 그의 사진을 봤다는 거였다. 그들은 그렇게 얘기를 나누게 되었다.
그 커플은 아내의 건강이 악화되어, 게스트하우스를 철수하고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상황에 처해 있었다. 게스트 하우스를 믿고 넘길 수 있는 사람을 찾고 있었는데, 마침 식당에서 사장을 만났다. 블로그 운영도 잘 해왔으니, 게스트 하우스 홍보도 잘할 것 같다고 했다. 몇 년 간은 수익의 반을 떼어주고 나중에는 아예 인수하는 조건으로 넘겨받았다.
해외에서 게스트 하우스 운영은 쉽지만은 않았다. 생존을 위해 터키어를 밤낮으로 공부했고, 이슬람권 문화에도 적응해야 했다. 가부장적인 터키에서 강인하게 보이기 위해 수염도 기르고 두건도 쓰게 되었다. 그렇게 무일푼의 여행자는 지금 이스탄불에서 인기 있는 게스트하우스 사장님이 되어 있었다.
‘역시 좋아하는 일을 하니까, 인생이 이렇게도 풀리는구나’. 수많은 자기 계발서에서 말한 “신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라는 말이 바로 이런 것일까.
그때 장미가 물었다. “여기 커플분들도 마찬가지로, 퇴사할 때 고민이 많았겠어요. 왜, 저처럼 아무것도 없을 때 훌쩍 떠나는 거랑은 좀 다를 것 같아요. 어렵게 취업해서 사회적 지위나 경제력도 갖춘 상태에서는 그 모든 걸 버리고 떠나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거든요.”
“맞아요. 저도 정말 어렵게 취업을 해봐서 아는데, 이 모든 걸 다 놓고 떠난다는 게 가능한 일인지 아직은 잘 모르겠어요.” 하며 내가 덧붙였다.
이에 사장은 대답했다. 퇴사를 하고 세계 여행을 가느냐 마느냐 한창 고민 중일 때, 인터넷에서 돌아다니는 어떤 만화의 일부를 보게 되었는데, 그게 자신의 마음을 크게 울렸다고 했다.
“한 노인이 취준생한테 꿈이 뭐냐고 물어요. 그 하숙생이 금융권 대기업 직원이라고 대답하죠. 그걸 보니 제 대학 시절이 생각나더라고요. 노인이 다시 한번 물어봐요. 어떤 직업을 갖는 것이 꿈일 수는 없다면서. 그러자 그 취준생이 ‘꿈이 밥을 먹여주진 않잖아요.’ 이래요. 그때 노인이 이렇게 말해요.”
“아, 저도 이거 봤어요. 꽤 유명하죠.” 라며 그을린 피부의 청년이 맞장구치더니, 목소리를 낮추고 근엄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나갔다.
죽기 전에 못 먹은 밥이 생각나겠는가, 아니면 못 이룬 꿈이 생각나겠는가?
가느다란 탄성이 흘러나왔다. 감탄으로 가득한 내 표정을 보며, 사장은 미소를 띠며 덧붙였다. “그때 죽기 전에 후회 없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세계 여행을 하지 않으면 눈 감기 전에 후회할 것 같았거든요. 전 아직도 그때 퇴사하고 여행을 시작한 게 제 인생 최고의 선택이라고 생각해요.”
그때 장미가 말했다. “맞아요. 죽음. 인간은 죽음을 직면하고서야 자신의 삶을 더 깊이 있고 진지하게 성찰하게 되는 것 같아요. 저도 세계여행을 결심하기 전에 읽었던 기사가 있는데, 그게 저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어요. 한 요양원의 간병인이 수년간 말기 환자들을 돌보며 알게 된, 죽기 전 가장 후회하는 일들에 관한 내용이었죠.”
그녀의 말에 따르면 죽음을 앞둔 환자들의 후회는 이랬다. 너무 열심히 일하는 것보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시간을 더 많이 보냈어야 했다. 자신의 감정 꾹꾹 누르며 솔직하게 표현하며 살지 못했다. 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었는데 겁이 나서 변화를 선택하지 못했고, 튀면 안 된다고 생각해 남들과 똑같은 일상을 반복했다. 결국 행복은 자신의 선택이었음을 뒤늦게 깨달았다.
무엇보다도 가장 큰 후회는 스스로에게 정직하지 못했고, 자신이 살고 싶은 삶을 사는 대신 주위 사람들이 원하는 삶을 살았다는 것이었다. 그 누구도 “돈을 더 벌었어야 했는데, 궁궐 같은 집에서 한번 살아봤더라면, 고급 차 한번 못 타봤네, 더 좋은 커리어를 쌓았어야 했는데”라고 하지 않았다고 한다.
부부 중 아내가 맞장구치며 말했다. “저희도 한창 직장 생활에 지쳐있을 때 그런 내용의 글을 어딘가에서 우연히 보게 되었는데, 그 여운이 오래 남았어요. 덕분에 살고 싶은 삶에 대해서 한번 더 돌이켜 보게 되었죠.”
‘만약 당장이라도 교통사고나 급성질병 등으로 죽게 된다면, 나는 무엇을 후회할까? 내 행복을 선택할 수 있는 삶의 주도권을 가지고 있는가? 난 스스로에게 정직한가? 내가 살고 싶은 삶을 살고 있나? 아니다. 그럼 난 어떤 삶을 살고 싶은 거지?’ 여러 가지 질문들이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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