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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드웨인 May 15. 2018

아들이 전한 부고

별아, 고마워

낯선 번호로 전화가 왔다. 한참 울려도 끊기지 않아 받았다. 낮고 익숙한 음성이다. 부대에 있어야 할 아들의 전화. 반가움에 목소리가 높아졌다. 휴가란 말에 저절로 하이톤이 된다. 그리웠다.      


- 아빠.

- 아들? 보고 싶다! 잘 지내?

- 나, 휴가 나왔어.

- 그래? 언제까지? 지금 어디야?     


- 할아버지, 지난밤에 돌아가셨어. 지금 병원이야.

- 응? 뭐라고?

- 아빠 올 거야?     


장인의 부고를 아들이 전했다. 현기증이 났다. 어딘가 흔들리는 거 같다. 아들을 혼내야 했는데, 올 거냐는 물음을 듣지 못했다. 옷장을 열었다. 오래된 검은 양복을 꺼냈다. 작아져 입을 수가 없다. 뚱뚱해서 부끄럽다. 그래, 가지 말자.         


가야 하는 걸까 안 가도 되는 걸까. 생각이 덜컹거린다. 판단할 수 없어 인터넷에 묻는다. 장인, 아내, 조문. 단문 검색이 되지 않는다. 헤어진 아내 장인상에 가야 하나요. 비문 같은 문장을 입력한다. ‘반드시’라는 답을 찾는 걸까. 어리석어 가엾다.     


장인께 이혼한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아내의 부탁이었다. 쉽지 않았지만 받아들였다. 긴 외국 출장을 간 사위 시늉을 했다. 명절 때 짧은 전화도 드렸다. 소름 돋지만 참았다. 당신께 연락해 지랄하고 싶을 때도 있었다. 끔찍해도 견뎠다.


.


장례식장에 도착했다. 아들 주위에 놀란 얼굴들이 보인다. 모른 척 안으로 들어갔다. 두 번째 절을 하고 일어나지 못했다. 한참 엎드려 있었다. 영정사진 속 장인은 참 선하다. 끝까지 말씀드리지 않았다. 죽음이 슬픈 것인지 슬퍼하는 내가 슬픈 것인지. 알 수 없어 더 아프다.               


처제만 사실을 알고 있었다. 안부를 묻는 다른 식구들은, 여전히 나를 김 서방으로 대했다. 불편하지만 태연히 노릇을 잘했다. 밖으로 잠깐 나간 길에 입구의 현황판을 봤다. 고인과 상주 이름이 슬라이드로 지나간다. 내 이름이 없다. 부끄럽지는 않았다. 무너졌지만 부서지지 않기를. 온 힘을 다해 버틴다.


들어가 복도 의자에 앉았다. 처제는 딸이 하나 있다. 이모부를 잘 따르던 특별한 아이였다. 초등학교 6학년인데 2년 만에 본다. “별아, 잘 지냈어?” 인사를 건네며 머리를 쓰다듬었다. 눈이 마주치자 불쑥 나를 안는다. 당황했다. 묘한 지점에서 눈물이 터졌다.  


.     


현실은 느닷없다. 무시해도 들러붙는 현실이, 죽일 듯 밉다. 기억이 낱알처럼 일어선다. 머리를 갈라 주름을 만든다. 치매처럼 가멀의 순서로 기억을 죽인다. 심장에 구멍을 뚫는다. 아픔이 불순물처럼 떠 있다. 카테터를 꽂아 배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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