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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드웨인 May 20. 2023

엄마 손은 멀다

얽매인 불행이라면 좋겠다

여름이 시작될 무렵 걷기 시작했다. 즐거움보다 고통이 기껍다. 2Km 정도 걸으면 관절이 널 뛴다. 정오의 구분 없이 고통스럽다. 잘한 건지 미친 건지 알 수 없다. 3Km를 더 걷는다. 편하고 좋은 건 자극이 없다. 부러져라 걷는다. 그제야 끼니가 익숙해진다. 삶은 그런 건가 보다.


엄마, 전화도 자주 못 드린다. 뵙는 건 더 어렵다. 당신 자리에서 그저 잘 계시길 빈다. 어제처럼 오늘처럼 별일 없으면 좋겠다. 낯선 단어를 가끔 말씀하신다. '이제 꽤 오래 살았다'라고 한다. '그만 살아도 괜찮다'라고 하신다. 말씀도 죽음도 가볍다. 노모의 언급이 두렵다. 엄마의 찌개는 한결같다. 마지막 찌개 맛은 그립지 않다. 상상하고 싶지 않은 맛이 분명하다.


엄마가 누운 침대 모서리에 눕는다. 손잡아드리고 싶지만 멀다. 당신이 없는 세상을 상상해 본다. 불가능한 상상은 서럽다. 돌아누워 엄마의 손을 잡아 본다. 깰세라 손끝만 붙인다. 어둠에, 데인 듯 놀라 울컥하다. 들킬까 숨죽였는데 닿았다. 다행이다. 그립고 행복하다.


손이 떨려 글씨가 어렵다. 멈추고 싶다. 쓰다 멈추다 이어 간다. 농담이 널 뛴다. 폭풍처럼 끓기 바랐지만 색시 같이 조용하다. 바랐지만 한계는 분명하다. 다행히 정갈하게 보인다. 엄마 손은 멀다. 끝이 닿았지만 멀다. 여전히. 깨지 않으시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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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네가 화내지 않았으면 좋겠다. 웃지도 않았으면 좋겠다. 어느 날 어느 순간 갑자기, 이 세상에 네가 없을 때에도 나는 끝까지 살아남아 네 모든 것에 어찌할 수 없도록 얽매인 불행이라면 좋겠다 - 박상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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