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이 쓰러졌다. 입원한 동생은 자각이 없다. 양말을 채 챙기지 못해 발바닥이 꺼멓다. 동생은 아버지를 닮았다. 세상과 일상에 굽히지 않는다. 가족도 없다. 다른 시선으로 세상을 산다. 까만 발처럼 인생도 더럽다. 울컥하기 싫어 얼굴을 본다. 병상 모서리에 머리를 박고 잔다. 죽을지 모르는데 죽은 듯 잔다.
돌아와 그의 작은 방에 섰다. 이 공간으로 돌아올 수 있을까. 책장의 오래된 책을 훑는다. 지갑이 보인다. 동생의 낡은 지갑을 뒤졌다. 현금은 없었다. 주민등록증도 운전면허증도 없다. 신용카드 한 장이 들어있다. 유효기간이 지났다. 너의 현실은 언제 멈춘 걸까. 증명사진이 떨어졌다. 낯선 여자 사진이다.
동생의 인생을, 나는 잘 모른다. 시나리오에 인생의 절반을 바친 놈이다. 돈도 없고 여자도 없다. 시간이 멈춘 지갑 속 사진의 여자. 숨겨둔 것일까? 누굴까? 더 깊숙이 뒤졌다. 손가락 두 마디 크기로 접힌 메모가 있다. 오래되어 바삭거린다. 부서질까 조심스레 폈다. 기억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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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은 20대부터 한결같았다. 누군가 사랑했을 텐데, 여자 얘기를 들어본 적 없다. 동생은 영화를 사랑했다. 부모를 졸라 비디오 대여점을 오픈했다. 손님은 뒷전이었다. 수천 편의 영화를 보고 또 봤다. 가게는 망했다. 가족 입장에서는 미친 놈이었다. 사랑한, 그것에게 오랫동안 학대당했다.
오래전 동생은 여자를 만났다. 고등학교 3학년 여학생. 동생은 35살이었다. 십수 년의 간격은 영화 같았다. 치열하게 사랑했나 보다. 숙대에 진학한 그녀는 똑똑하고 열정적이었다. 늦게 소식을 접한 나는 반대하지 않았다. 동생을 사랑한 그 누구라도, 나는 존경했을 테니까.
언제 헤어졌는지 모른다. 이후 소식은 듣지 못했다. 구도자처럼 동생은 세상을 떠돌았다. 나는 그를 챙기지 못했다. 2년 전 고향으로 돌아왔다. 매일 같은 시간에 카페에 가서 시나리오를 썼다. 밤새워 영화와 책을 봤다. 지닌 돈을 다 쓸 때까지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밤이 왔다. 신념과 이상과 목표를 소진했다. 아니, 숨겼다.
1년 전쯤 평창 한옥학교에 들어갔다. 이유를 묻는 위로 대신 돈을 보냈다. 대패도 사고 톱도 사고 에어타카도 사라고. 시나리오 쓰는 백수보다 목수가 된 동생이 기꺼웠다. 6개월 과정을 마치고 자격증을 땄다. 오십 넘은 동생이 대견했다. 그를 팽개친 세상을 그는 안았다. 나는 그저, 행복하길 소망했다.
전라도 한 사찰의 보수공사에 보조로 간다고 들었다. 그리고 쓰러졌다. 가혹한 지난여름의 노동 때문이었을까? 돌보지 않은 몸뚱이 때문이었을까? 병원에서 동생의 발을 봤다. 그의 공간에서 사진을 봤다. 멈춘 너의 현실을 더듬는다. 비로소 너의 고통과 사랑을 인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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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한 모든 것들을 놓지 못했다. 뇌를 터뜨려 기억을 영원히 안았다. 현실은 너의 삶 어디쯤 있을까. 너와 나의 인생이 만 광년쯤 틀어졌구나. 메울 수 없는 간격에 참았던 눈물이 쏟아진다. 형도 몹시 아프다. 내 동생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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