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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에 대하여 12

잉태의 낭만

by Moon

신물이 자꾸 역류해 가슴팍부터 목구멍이 화끈거리고 따가워서 잠들 수가 없다. 조금이라도 역류를 줄이고자 몸을 꼿꼿이 세워 앉지만 허리와 등이 결려서 몸을 세우는 게 만만치 않다. 게다가 가만히 누워만 있어도 숨이 차서 몸을 가누기가 힘이 든다. 졸려도 잘 수 없고 몸이 쑤셔도 들썩일 수 없는 채로 맞이하는 밤에 쉼이라곤 있을 수가 없다. 내 몸이 내 몸이 아니라, 내 삶이 더 이상 내 삶이 아닌 것, 만삭의 아내가 겪었던 과정이다.


옆에서 코 골며 무심히 자는 남편의 코를 잡아 비틀어 깨우는 것도 한두 번이지, 결국 그 긴긴 겨울밤을 혼자 마주하는 법을 아내는 익혔다고 한다. 거실에서 밤새 영화를 보기도 하고, 책을 읽기도 했다.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베란다에 서서 동장군 빼고는 모두가 잠든 세상을 우두커니 바라보기도 했다. 그렇게 버티고 버티다, 새벽 대여섯 시가 되면 겨우 졸음이 신물을 이겼다. 좁은 집에서 영화 소리, 음악 소리, 낡은 베란다 문 끽끽 여닫히는 소리가 조용하지는 않았을 텐데 한 번을 깨지 않는 남편 옆에 몸을 뉘였다. 침대가 출렁거리고 이불이 퍼덕거려도 남편의 세상은 고요하기만 했다.


그런 아내의 밤을 남편이 인지하는 건 아침, 서로의 부산함이 엇갈리는 지점에서였다. 좁은 집에서 머리를 감아대고, 드라이를 하고, 옷장을 여닫는 동안의 그 다양한 소리들이 민감한 아내를 일으키지 못하면 그제야 아내의 밤이 잠 외의 것들로 가득했음을 알게 됐다. 매일 밤 외롭게 벌이는 아내의 사투 아닌 사투의 상대가 남편 눈에는 다름 아니라 바로 자식인지라 가끔 아내 배에다 대고 ‘엄마 너무 괴롭히지 마라’라고 했는데, 아내는 그 말에 질색이었다. 아이가 다 알아듣는다는 것이다. 게다가 사투의 대상은 아내 자신이지 아기가 아니라 강조했다.


한가운데에 자리 잡은 2kg가 넘는 존재가 허파를 누르니 숨 쉬는 것조차 버거워지고, 그 무게가 마치 치약을 짜듯 내장을 누르는 통에 신물이 역류하는 것인데... 또 몸 전체의 균형이 그 2kg 때문에 앞으로 쏠리기 때문에 등과 허리가 고질적으로 아픈 것인데... 아내와 남편의 결론은 ‘나 자신’과 ‘너 이 자식’으로 갈리는데, 난 이해할 수가 없었다.


어쩌다 아내가 아픈 허리 때문에 몸을 숙이면 배의 공간이 그만큼 줄어들게 되고, 아이는 그럴 때마다-이제 의견을 표시할 정도로 자란 건지-뱃속에서 여지없이 다리로 펑펑 엄마를 차기도 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아픈 허리에 힘주어 몸을 펴면 배의 공간이 늘어나면서 아이는 발차기를 멈췄다. 이걸 아내는 웃으며 얘기하는데, 남편은 ‘이 고얀 놈’하며 경악했다. 그러면서 아내의 웃음을 이해하지 못했다.


이해할 수 없는 감정의 반응을 마주하는 예비 아빠는 어쩐지 제삼자가 된 듯해 외로웠다. 간호사들이 보다 보다 눈물을 쏟았을 정도로 엄청난 난산 끝에 날 낳으셨다는 엄마가 날 처음 안으셨을 때의 눈이 기억나지 않는 것이 당연한데도, 이럴 땐 그게 그렇게 궁금하다. 그때 날 어떻게 쳐다보셨을까? ‘이 고얀 놈’이라는 생각은 조금도 섞이지 않았을까?


아내가 임신했을 당시 한국으로 유학을 온 한 무리의 학생들을 위해 홈스테이 가정을 모집해 아이들을 보내고 관리했다. 서로 다른 문화가 충돌하는 최전방 같은 현장에서 좋은 소리만 나올 수가 없었다. 대부분의 불만은 어머님들로부터 나왔다. 아이가 방에 들어가 나오질 않는다, 한국 생활이 익숙해졌는지 이제는 집에 늦게 들어와서 밥을 따로 차려줘야 한다, 방을 안 치운다, 집안일을 통 돕질 않는다, 상전을 모시고 사는 것 같다... 나로서는 학생을 돌보는 일이 처음이지만 이런 불평들이 익숙했던 건, 총각시절 어머니가 나에게 제기했던 불만들과 놀라울 정도로 흡사했기 때문이다. 분명히 우리 어머님보다 훨씬 젊은 분들인데, 어머니라는 존재가 자식에게서 바라는 것들은 세대를 초월하는 것인지 고민은 항상 거기서 거기였다.


하지만 결국에 가서 마지막 날 아이들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대문 밖에 계속 서 있는 것도 어머님들이었다. 어제도 한 아이를 눈물이 그렁그렁해 떠나보내시던 어머님은 추운 날씨에 얇은 잠바 하나 입고 홀로 끝까지 대문 밖에서 손을 흔들고 있었다. 백미러로 보이는 어머님의 빨간 외투가 결혼식장에서 날 보내시던 엄마의 붉은색 한복과 순간 겹쳤다. 결혼 전날까지 너 같은 큰 짐을 덜어서 얼마나 홀가분한지 모르겠다며 진심으로 환하게 웃으시던, 그러나 신혼여행을 떠나는 차에 그 환한 표정으로 가장 마지막까지 가까이 붙어계시던 우리 엄마.


그 어머니는 더 이상 외국인 아이 맡기가 힘들다고 하셨던 분이셨다. 다른 곳으로 보내달라고 강력히 요청하셨었다. 그런 분이 지금은 아이 이름 앞에 ‘우리’라는 말까지 붙이시며 더 함께하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하셨다. 내가 더 참을 걸, 이라는 심경의 변화를 난 이해할 수가 없었다. 백미러로 함께 비치는 아이 역시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사람으로서 양측의 불만 섞인 이야기를 중간에서 계속 들어왔음에도 난 그 어떤 감정도 공유할 수 없었다. 도대체 언제 저런 정이 쌓인 걸까. 운전을 하면서, 제삼자의 외로움이 또다시 느껴졌다.


어머님도 아이의 눈물도 모두 사라진 백미러를 잔상이라도 찾듯 힐끔힐끔 보고 있자니 문득 멀리 겨울 산이 눈에 들어왔다. 희끗한 밑동과 갈색의 앙상한 나무들은, 희어져 가는 머리를 저렴하게 염색한 엄마의 머리색을 하고 있었다. 그 색이 그렇게 추운 색이었었나. 엄마 머리는 그렇지 않던데. 저렇게나 닮은 두 개의 풍경이, 그렇게나 다른 느낌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겨울산과 같은 머리를 하고서도 어머니들은 자식 눈에 언제까지나 봄처럼 보일 수 있다는 것이 경이로웠다.


그러고 보니 아내의 외롭고 추운 겨울밤들은 이미 따듯한 봄의 시작이었다. 자기의 삶과 존재가 내장에서부터 거부당하고 도전받고 있지만 자기가 피워낼 생명에 오직 기대감만 가득한 것 말이다. 생각해 보면 홈스테이 어머님들의 불평은 다른 말로 ‘이 아이는 이미 내 자식이오’와 상통한다. 왜 몰랐을까, 그 불평 속 행간을. 아이의 행동에 대한 불편함이 곧 자식에게 느끼는 편안함과 맞닿아 있음을.


봄이 겨울과 이어져 있고, 부모의 위치와 자식의 위치가 잇닿아 있고, 죽음이 생명과 연결돼 있는 모순 투성이의 순환을 나는 더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 안에 내가 속해 있고, 그걸 내 힘으로 어찌할 수 없음은 알 수 있었다. 뭔가 아름답기 시작해 외롭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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